첫 잠복 근무지는 편의점이었습니다.
슬리퍼를 신은 채로 저희에게 검거되었던 대포통장 연결책은 사무실에서 조사받고 귀가 한지 2일 후에 체크카드를 찾으러 간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알려 왔습니다.
체크카드 전달 장소는 서울 00에 있는 주상복합건물 1층 내 편의점 건물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사무실로 도착해 승합차 1대 개인차량 1대로 나눠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오늘 통장을 찾으러 오는 놈을 검거하게 되면 보이스피싱 몸통으로 올라갈 수 있는 중요한 연결점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은 복잡한 유통 구조를 거쳐 최종적으로 대포통장이 수중에 들어오게 되면 피해자들이 입금하는 돈을 전국에 흩어져 있는 각 조직원들에게 돈을 찾아오도록 지시하기 때문에 대포통장의 최종 목적지는 보이스 피싱 조직원이거나 아니면 보이스 피싱 조직원과 직전 연결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목적지는 인구 유동이 많은 상가와 주택가가 밀집해 있는 곳으로 건물 뒤로는 하천을 건널 수 있는 다리가 있고 다리 뒤로는 각종 음식점이 모여 있었으며 상가 건물 앞으로는 편도 2차로 왕복 4차로 도로가 있는 도심 한복판이었습니다.
상가 건물 맞은편 도로상에 승용차량을 주차하고 건물 뒤편 주차장에 승합차를 세운 뒤 편의점으로 들어가 주간 근무자에게 신원을 밝히고 점주랑 얘기 좀 할 수 있는지 조심스레 작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주간 근무자가 점주에게 전화를 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점주는 편의점을 찾아오는 경찰관이 많은 듯 자연스럽게 상황을 물어보았습니다.
전폭적인 편의점 점주의 지원을 받아 정식 근무자처럼 편의점 직원이 입는 조끼를 걸치고 잠복근무를 시작하였습니다.
“중현이가 편의점 조끼 입고 근무자 하고 같이 서 있다가 택배 찾으러 오면 바로 연락을 줘!”
저는 편의점 직원으로 근무를 서고 나머지 직원들은 차량 안에서 나눠 대기하면서 택배를 찾으러 오면 곧바로 편의점 안으로 들어오기로 사인을 맞췄습니다.
딱히 할 일은 없었지만 편의점 안에 있던 택배 상자가 잘 있는지 수시로 쳐다보면서 물건 정리를 도와주곤 했습니다.
2시간가량 지나도 택배를 찾으러 오지 않자 팀장과 직원들이 번갈아 가면서 편의점 안으로 들어와 커피 한잔씩 사고 다시 차량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편의점 안에는 혼자 있지만 모든 직원의 눈이 편의점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 기다리다 답답해 밖에 바람 쐬러 나오면 차 안에 대기하던 직원들이 저에게 일제히 문자를 보냈습니다.
“아직 뭐 없지?”
“예”
“근대 택배 직원 복장 너한테 딱이다!”
거의 저녁을 먹어야 할 시간이 다가올 무렵 팀장이 일산에서 체포한 중간 연결책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저는 편의점 밖에서 맞은편에 대기하던 차량 안에 통화하는 지능팀장의 얼굴만 보였지만 현재까지 다른 연락은 없는지 택배 수령 장소를 다른 곳으로 바꾼다는 연락은 없었는지를 물어보는 내용이었을 겁니다.
특히 체크카드를 수령하는 조직원들은 곧바로 보이스 피싱 조직원들과 연결될 가능성이 높아 오히려 우리 팀만큼 조직원들을 먼저 보내 잠복하고 있는 저희들을 살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침 일찍 도착해 저녁이 지나서도 나타나지 않자 팀원들이 편의점 안으로 모두 들어왔습니다.
“눈치 깐 것 같으니깐 택배박스 가지고 사무실로 가자고!”
처음 잠복근무는 성공하진 못했지만 보이스 피싱 조직원들의 몸통에 거의 접근해 가고 있다는 생각에 며칠 동안 밀렸던 사이버 사건의 걱정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사무실에 도착하면 늦은 저녁이 될 것 같아 인근 고깃집에서 고기 구워 먹고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검거하지 못했던 보이스 피싱 조직원들에 대한 수사는 지능팀에서 계속하고 저는 다시 사이버 사건을 처리하면서 지원 나갈 일이 있으면 함께 출동하기로 했습니다.
얼마 전 저에게 저금리 대환 대출 피해를 당하신 초등학교 선생님의 서류를 다시 꺼내 피해자분이 최초로 대출을 받았던 00 캐피털 담당자를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피해자분은 국민은행, 농협과 같은 1 금융권에서 기존 대출이 안돼 00 캐피털과 같은 2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은 직후 대출금이 입금되자 말자 곧바로 저금리 대환 대출을 추가로 해 주겠다며 2 금융권에서 받은 대출 원금을 입금해 달라는 요구에 피해를 당한 상황이었습니다.
정학하게 말하면 피해자가 받은 00 캐피털은 2 금융권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부실한 캐피털 회사였습니다.
2 등급의 캐피털이라는 등급도 매길 수 없을 정도의 쓰레기 같은 저급한 캐피털 회사들이 보이스 피싱 조직과 업무협약을 맺고 사업을 확장하는 정황이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00 캐피털에서 대출금액이 입금되자 말자 대환대출을 해 주겠다는 보이스 피싱 조직원들의 전화가 왔다는 말은 00 캐피털과 보이스 피싱 조직원들의 연결점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화로 대출 담당자를 부르면 당연히 증거고 뭐고 다 없애 버릴 가능성이 높고 또 대출 담당자를 체포영장 받아서 체포할려니 대출 금액은 입금된 상황이라 딱히 연결점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이럴 때는 두발로 뛰면 답이 나올 것 같아 지능팀 직원과 함께 서울 강서구 사무실로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1시간 30분 정도 차로 달려 목적지에 도착해 목적지 맞은편 건물에 있던 커피숍에서 커피 한잔씩 마시고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카라멜 마끼야또’
더울 때는 아이스로 추울 때는 따뜻한 걸로 제가 가장 많이 마시는 커피입니다.
한잔씩 가볍게 마시고 목적지 건물로 올라갔습니다.
오피스텔 건물에 그날 더운 여름이라 건물에 입점해 있는 사무실이 전부 블라인드를 젖히고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무인항공기 드론이라도 들고 왔으면 밖에서 드론을 띄워 5층 사무실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었을 건데 가져올걸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습니다.
확인만 하고 필요하면 경찰서로 불러 조사를 하면 될 거라는 시나리오에 부담 없이 내방객처럼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건물 입구에 도착하자 00 캐피털 간판이 보였고 출입문을 열자 말자 순간 당황해서 놀랐습니다.
사무실은 통유리 건물로 내부를 다 들여다볼 수 있었으나 블라인드가 쳐져 있었고 내부는 2곳으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2곳으로 나누어져 있는 사무실 안에는 1인용 책상과 의자가 하나씩 놓여 있었고 책상 위에는 아무것도 없이 달랑 전화가 한대만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약 20여 명 정도 되는 아주머니들이 책상 위에는 개인 핸드백과 A4용지 하나만 놓여 있었고 전부 전화통만 잡고 통화하느라 바빴습니다.
순간 등에서 식은땀이 나면서 저하고 함께 따라온 동생도 겁을 먹었습니다.
“연천경찰서 지능팀에서 왔으니깐 전화기 내려놓고 전부 가만히 있으세요!!!”
전화를 하시던 아주머니들 전화 통화 넘어 소리가 다 들릴만큼 거의 고함치듯이 내 지르고 곧바로 옆에 있던 나머지 사무실로 들어갔습니다.
“000 누구시죠?”
초등학교 선생님에게 대출을 해 주었던 담당자를 찾았고 제가 찾을 때 서류를 어디론가 웹팩스로 보내고 있었습니다.
옆 사무실에서는 20여 명의 아주머니들이 전화를 하고 있고 바로 옆 사무실에서는 행정 업무를 보는 직원들이 어디론가 서류를 취합해 웹 팩스로 보내고 있는 모습이 바로 2.5 내지는 3등급의 저급한 캐피털회사의 실체였습니다.
대출 담당자들이랑 잠시 얘기하는 사이 옆 사무실 아주머니들이 가방을 들고 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책상에 다른 용품 없이 개인 가방만 있는 게 언제든지 이런 상황이 오면 튀어 버릴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겁니다.
사실 체포영장도 없이 온 상황이라 튀는 모습을 보고도 잡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아줌마들은 1분도 안돼서 동시에 튀어 버렸습니다.
초등학교 선생님 피해자 서류를 꺼내도록 해서 하나씩 추궁했습니다.
사무실 모습을 보고 놀라긴 했지만 여기서 당황하면 캐피털 직원들은 다음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어 오히려 저희가 역공을 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피해자가 대출받고 나서 곧바로 저금리 대환 대출해 주겠다는 보이스 피싱 조직원들 전화를 받았는데 여기 회사에서 고객명단 다 넘겨준 거 맞죠?”
곧바로 둘러대지 않고 핵심을 찔렀습니다. 그리고 처음 20여 명의 아주머니들에게 했던 목소리 톤 그대로 아주 높은 톤으로 내 질렀습니다.
“저는 서류만 취합해 대출이 일어나도록 처리해 주었습니다.”
당연히 예상 시나리오대로 움직이는 것 같아 직원들 모두 그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했습니다.
모두 신분증을 꺼내도록 해 신원을 확인하고 앉아있던 사무실 직원들에게 제가 요구하는 서류 모두 들고 다음날 순차적으로 연천 경찰서 사무실로 출석하라고 고지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자로 모두 주소지에 출석 요구서 우편으로 발송할 거니깐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하지 않으면 체포영장을 받아 체포영장 집행하러 다시 오겠다고 고지하였습니다.
조사에 필요한 기본 서류는 복사본으로 제출받은 뒤에 동생이랑 건물을 나왔다가 순간 긴장이 풀려 처음 왔던 커피숍으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갑자기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 놀랬다며 시원한 커피 한잔씩 더 마시고 다시 사무실로 향했습니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경찰청에서 사이버범죄 예방 전문강사 인증서와 강의 때 사용하라는 노트북이 도착해 있었습니다.
제가 경찰청에 애플사의 맥북에어 노트북을 지급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했더니 경찰청에서 구매를 해 주었습니다.
“반갑다 애플. 사랑해 맥북에어. 그리고 평생 나하고 함께 가자!”
맥북에어를 싸고 있던 얇은 비닐을 뜯지 않고 이리저리 둘러보며 만지고 감싸 안고 얼굴에 비비고 정말 행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