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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중현 Apr 03. 2020

경기북부지방경찰청으로 입성하다.

자유로운 영혼이 새장에 갇혀 버린 듯했습니다.

“시골에서 썩을게 아니라 지방 경찰청 같은 큰 물에서 한 번 근무해 봐야 하지 않겠어?”

지방경찰청에서 근무할 직원을 선발한다는 내부 공고문을 봤을 때 주변 동료들이 저에게 해 주었던 말이었습니다.

사실 제 주변 동료들도 지방청에서 근무해본 경험이 없는 상황이라 저마다 환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동료들이 3 급지 시골 경찰서에서 지방경찰청으로의 발령을 ‘입성’이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에 장원급제 후 한양 궁궐에 입성하는 것처럼 마치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성공이 보장되는 궁궐로 입성하게 된 마냥 기대에 많이 부풀었습니다.

한 번은 발령 직전 주말에 가족들과 의정부 재래시장에서 점심도 먹고 시장도 볼 겸 차로 외출을 나갔습니다. 차를 몰고 의정부 성모병원과 홈플러스 사거리를 지나 재래시장 방면으로 향하던 중  제가 발령받아 근무하게 될 경기북부지방경찰청 건물이 보였습니다.

“애들아 저기 오른쪽에  건물 보이지? 저기가 아빠가 일할 곳이야!”


의정부 재래시장을 가면서 보였던 경기북부지방경찰청. 출처:구글 이미지 검색


연천과는 비교할 수없을 정도의 건물 크기에 제가 근무할 사무실이 있을걸 생각하니 약간 어깨가 올라가는 기분이었습니다.

경기지방경찰청 제2청이라는 명칭에서  2016년 경기북부지방경찰청으로 독립 한 뒤 다음 해인 2017년 1월에 새롭게 근무하게 되었고 평생 연천에서만 근무하다 퇴직할 줄 알았던 저의 직장 생활 경력에 큰 변화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설 연휴 직전 그동안 연천경찰서 근무하면서 채워진 사물함을 비우고 근무복과 소지품을 모두 정리한 뒤 다음 업무를 인계받을 담당자가 이해할 수 있는 사건 인계서를 만들어 팀장님에게 인계하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연천경찰서 창설 이후 처음 후임으로 발령받은 안철수 연구소 출신의 사이버 수사 특채 김지후 형사에게 곧 지방청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저의 뒤를 이어서 연천경찰서 사이버범죄 수사업무는 김지후 형사가 맡게 되었고 그렇게 저는 12년의 연천 생활을 마무리하였습니다.

그리고 기대 반 설렘 반으로 설 연휴를 보내고 발령 당일날 지방 경찰청에 새로운 전입자들이 모두 모여 간단하게 신고식을 마친 뒤 각자 근무할 사무실로 향했습니다.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혼자 근무하면서 중고나라 사기 피의자들도 구속시키고 실력이 대단하다고 들었습니다.”

새로운 팀장님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하였습니다.

여기도 경찰서와 마찬가지로 1주일 정도 지나니 전체적인 분위기는 금방 적응이 되었습니다.

경찰서에서는 사이버범죄 피해를 당하신 분들이 신고를 하러 경찰서를 방문하지만 지방청은 사이버범죄 사건을 어떤 방식으로 처리하는지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 조금씩 답답해졌습니다.   


“여기는 날고 기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실력을 한 번 보겠어요!”

하루는 아침 전체 회의 때 한 선임이 저에게 말을 던졌습니다.

“아! 여기서도 원샷 원킬처럼 큰 사건을 터트려 줄 한방을 원하는구나!”

경찰서에서는 1년에 한 번씩 수사 과장이 바뀔 때마다 각 팀에서 보여줄 그 한방을 준비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10년 넘게 준비하다 보니 정기 발령 때마다 보여줄 한방을 나름 저축도 할 줄 아는 능력도 생겼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는 처음 근무하는 곳이고 제가 저축해서 보여줄 사건이 지방경찰청 수준에 맞는 ‘대박 사건’ 급에 맞지 않는 레벨인 것 같아 불리해졌습니다.

7명의 적은 인원으로 구성된 팀이기는 하지만 분명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어딜 가나 있다는 게 제가 경찰 생활을 하면서 믿고 있는 기본 공식 중의 하나입니다.

같은 팀원 중 저를 응원해주지 않고 경쟁자 내지는 승진에서 밟고 올라가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확신이 서게 되면 그 동료와는 철저하게 공과사를 구분해 버립니다.

주말에 쉬었다가 출근하면 그 사람과 어떤 일을 하고 쉬었는지와 같은 소소한 개인 일상을 공유하지 않을뿐더러 주변에서 시키는 일은 나서서 더하지만 제가 하고 있는 일은 절대 도와달라고 부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승진에 있어서 인사 평가에 있어서 저를 경쟁자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먼저 챙겨서 갈 수 있도록 저는 포기하고 뒤로 물러섭니다. 승진이나 인사 평가 시즌에 자살하는 동료를 보았고 경제팀에서  돈 때문에 죽일 듯이 달려드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고 질려 버린 것처럼 이미 계급과 인사 평가로 동료 간 벌어지는 비참한 광경을 너무 많이 목격해 이미 그 전쟁에는 참전하지 않은 채 살아왔기 때문에 공과사를 철저하게 분리해 버리는 나만의 방식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사건에 있어서는 시작한 사건은 절대적으로 시작한 사람이 마무리 짓고 그 사건이 뭔가 터질 것 같은 한방의 사건이 되면 공로는 함께 고생한 동료들과 나누더라도 그 사건의 스토리텔링은 반드시 제가 가져가야만 하는 철칙이 있었습니다.


지방청 사이버범죄 수사대는 개인사건 위주가 아닌 팀별로 사건을 배당받아 움직이게 되고 그리고 순번을 정해 개인 사건을 배당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총 7명의 팀원을 2인 1조 방식으로 움직 일 수 있도록 운영하였고 애매하게도 3개 조에서 남는 한 명은 저보다 나이가 많은 형이었습니다. “냥이 아범”이라는 애칭을 더 좋아하는 형님은 다른 조에서 지원이 필요하면 함께 지원을 나가는 방식으로 운영 방식을 만들고 저는 2조로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사건이 있으면 냥이 아범을 비롯한 7명 전체가 역할을 분담해서 사건을 처리하고 각 개별로 처리해야 할 사건은 조 단위로 움직이면서 사건을 처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막내야! 동두천 은행 담당자 만나서 확인한 자료 수사보고서 만들어야지?”

1팀 선임이 같은 팀 막내와 사건 관련 얘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팀 막내가 수사 보고 작성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있길래 사건 서류가 궁금해 제가 가져와서 검토해 보았습니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건이라 기록 페이지가 채 10장이 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0페이지 중 8장이 모두 영어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건 서류를 보는 순간 저의 마음과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이 사건 파고들면 뭔가 큰 게 나올 것 같다!’

막 시작한 서류상으로는 사건의 그림이 전혀 그려지지 않았지만 영국의 수사기관으로부터 수사를 해 달라는 요청이 포함되어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영국 수사기관 NCA로부터 접수된 사건은 2017년과 2018년 국내 잠입한 외국인 해커 조직원들과의 전쟁을 치를 수 있는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출처:구글 이미지 검색


“이 사건 제가 해보겠습니다.!”

저에게는 당시 급하게 처리할 사건이 없었기 때문에 1팀 선임에게 사건을 넘겨줄 수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오!!! 연천!! 이거 해보게? 좋아 한번 해봐!”

서류를 넘겨받고 팀장님에게 보고해 이 사건은 직접 처리하기로 했습니다. 선심 쓰듯이 사건 하나 가져왔으니깐 일 한다는 티를 내는 성격이 되지 못해 남는 시간을 활용해 조금씩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지방청으로 발령받고 몇 개월이 지나면서 생활패턴에는 금방 적응했지만 도저히 적응이 안 되는 프로세스가 하나 있었습니다.

 “00 은행에 외근 나가서 이거 확인하고 저거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팀장님 이거 결제 좀 해주세요!”

“내일 어디 확인할 거 있는데 미리 보고 드립니다!”

몇 년간을 사무실을 혼자 사용하면서 혼자서 팀장 하고, 혼자서 팀원 하고, 혼자서 서무도 하는 혼자만의 생활에 익숙해진 상황에서 하루를 보고로 시작해서 보고로 마무리하는 생활 패턴으로 인해 제 몸이 고장 나기 시작했습니다.

나가고 싶을 때 나가서 확인하고 돌아와야 하는데 보고를 먼저 하고 승인이 나면 나갔다 와야 하는 상황이 싫어서 한 번은 옆팀 막내에게 “이렇다가 똥 누는 시간까지 보고하고 화장실 갔다 와야 되는 거 아니가?”라고 자주 말한 적이 있습니다.

시골에서 얼마나 날고 기는 실력을 가지고 있는 줄 모르겠지만 여기는 선수들이 뛰는 무대라며 아직 저에 대한 검증이 완료되지 않아 신뢰할 수 없는 분위기였습니다.

하루는 출근했는데 새장에 갇혀버린 생활이 익숙하지 않아 몸에서 몸살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팔다리에 침을 놓은 것처럼 아프고 열이 나기 시작해 팀장님에게는 외근 나간다고 말씀드리고 병원에 다녀온 적도 있습니다.

출근은 했지만 완전한 팀에 속하지 못한 것 같은 몸 상태를 원래대로 회복시켜 줄 수 있는 도구가 바로 제대로 된 사건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눈에 들어온 사건은 바로 다른 팀에서 막 시작하려다가 제가 가져온 정체불명의 사건이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사건을 치고 나가려고 준비하던 와중에 지방청 사이버 수사대를 총괄하는 사이버 수사대장으로부터 급한 팀 회의가 열렸습니다.

“인터넷 도박 사이트 사건인 것 같은데 좀 규모가 되는 것 같습니다. 우선 모든 조원이 팀으로 이 사건 맡아서 진행해 보시죠!”

모 지역에서 도박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드디어 처음으로 인터넷 도박사이트 운영자들과 전쟁을 치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도박사이트 운영자들을 특정하기 위한 수사를 제일 먼저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각 조별로 계좌 분석과 통신분석등을 나누어서 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1팀에서 가져온 외국 사건은 도박사이트 사건으로 인해 조별로 맡은 임무를 제일 먼저 처리하고 저녁에 혼자 남아서 조금씩 정리하였습니다.

도박사이트 수사를 시작한 지 1개월 정도 되면서 도박사이트 운영자들이 하나씩 수면 위로 떠 올랐습니다.

연천처럼 혼자서 했더라면 시작도 못할 사건을 팀 단위로 역할을 분담하니 사건 처리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습니다.

도박사이트 운영자들은 불구속이 아닌 구속을 목표로 수사를 시작하기 때문에 체포시점과 체포 후 발견되는 공범들을 어떤 식으로 쳐 나가면서 확대시킬지가 관건이기 때문에 신속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사기 전과 10범 이상의 범죄자들이 최종 목적지로 도박 사이트 운영에 뛰어들기 때문에 경찰과 검찰의 조사 시스템을 간파하고 있고 특히 주변에서 하나가 체포되기 시작하면 동시에 사라져 버리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 10명이든 20명이든 한 번에 쓸어와야 합니다.


“장소가 하나 특정되었는데 도박 사이트 운영장소인지 잠복을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최종 검거일을 계획하기 전 며칠간의 교대 잠복으로 도박사이트 운영장이 맞는지 확인하기로 했습니다.

1팀에서 출근하자 말자 매일 도박사이트 운영장이 맞는지 확인하고 제가 속한 2팀은 체포에 필요한 서류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나머지 팀원들은 자기 팀 사건을 처리하면서 지원이 필요하면 함께 붙어서 사건을 밀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압수수색 검증영장을 의정부 지방검찰청에 접수한 당일은 잠시 여유가 생겨 제가 가져온 외국 사건 서류를 만들었습니다.


‘이 사건 분명히 뭔가 있어!’

비록 지방청에는 처음 근무할지 몰라도 사건을 접하는 제 느낌은 분명했습니다.  


이전 02화 3급지 근무자라는 편견을 넘어서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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