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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중현 Mar 25. 2020

3급지 근무자라는 편견을 넘어서고 싶었습니다.

3급지 근무자라는 편견은 저에게 많은 스펙을 만드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혼자서 년간 100여 건 남짓 사이버범죄 사건을 처리하면서 공부도 많이 하고 사건을 통해서 겸손함도 배우고 사건을 통해서 모르면 무조건 찾아가서 물어보고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비록 한번씩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주목을 받는 도박수사전담팀, 웹 하드 카르텔 수사 전담팀과 같은 팀 단위로 일해 본 적은 없었지만 2013년부터 2016년까지 4년간 연천 사이버범죄 수사팀에서의 근무는 현재 위치에 올라설 수 있도록 값진 경험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혼자서 근무하신다고요?”

“체포 할 때는 어떻게 하시죠?”

“압수수색 같은 건 꿈도 못 꾸겠는데요?”

“피의자를 구속시킬 일은 없겠는데요?”

몇 주간 사이버범죄 수사관 집체 교육을 받으러 출장 가거나 경찰청에 출장 가게 되면 가장 많이 받았던 공통적인 질문들이었습니다.

피의자 체포와 압수 수색을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3명 이상 현장에 나가야 하는데 팀장도 없이 혼자서 근무하는 상황에 그것도 경사라는 계급으로 사이버범죄 수사 업무를 하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충분히 예상 가능한 질문 들이었습니다.

그래도 구속해야 될 피의자 체포를 위해 나갈 때는 주짓수를 취미로 배웠던 김민규 형사와 형사팀 당직팀에서 근무하기는 하지만 언제나 함께 검거 현장에 나갔던 송현택 형사가 함께했고 압수수색이 필요할 때는 지능팀장 자리에 앉아 있기는 했지만 언제나 형님처럼 지냈던 피인철 지능팀장이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3 급지 경찰서에서 사이버팀 소속도 없는 상태에서 ‘사이버범죄수사팀' 사무실 입간판 만들어 걸어놓고 혼자서 팀장 했다가 팀원도 했다가 가끔씩 서무도 하면서 년간 100여 건의 사이버 사건을 처리하면서도 사이버범죄 예방교육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서울, 경기, 인천, 강원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외쳤습니다.


"3 급지 경찰서에서 형사가 사이버범죄 예방교육이나 하러 다닐 정도로 많이 한가한가 보네?”

“예방교육은 대충 나가서 이빨만 까고 오면 되는 거 아닌가?”

“예방교육을 100명을 한다고 해서 범죄가 줄었다는 데이터 있어요?”

“박형사는 예방교육을 나갈 때 무슨 근거로 나가는 거야?"

“형사가 강사를 왜 하지? 예방교육한다는 말은 자랑이 아니니 다른 형사들 있는데서 언급하지 말아 주세요!”

주변 동료들로부터 이런 얘기가 들려올 때마다 사이버범죄 예방교육을 몇 번이고 그만두고 싶었고 계급이 낮고 실무자였던 저로서는 큰 목소리를 낼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이버범죄 예방교육을 필요로 하는 기관이나 단체들의 요청이 들어오면 비번날에 맞춰서 심지어는 주말에 예방교육 일정을 조정해서 나가고 있었고 예방교육 후 제가 느끼는 만족도는 범인 검거만큼 짜릿해 끊을래야 끊을 수가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활동은 같이 근무하는 팀원들과 팀장의 배려 없이는 불가능했지만 저하고 함께 현장에서 뒹굴었던 팀원들과 팀장은 한결같이 저의 활동을 지지하고 응원해 주었습니다.


연천 경찰서를 떠나는 그날까지 외근에 출장에 그리고 2016년도 9월부터는 대학원 공부로 야간 당직을 바꾸거나 자리를 비우는 날이 많았음에도 열심히 하라고 응원해준 이왕희 팀장과 조형섭 형사.

외근이나 예방교육으로 자리를 비울 때 대신 민원인을 상담해주고 서류도 접수해준 경제범죄수사팀 직원분들.

연천을 떠나기 직전 경찰서 창설 이후 처음으로 신입으로 들어온 안철수 연구소 출신의 사이버특채 김지후 형사.

그리고 이름만 들어도 웃음이 절로 나오는 김민규 형사, 송현택 형사, 지능범죄 수사팀 원종철 형사와 지능팀장 피인철 형님은 제가 첫 발령지에서 얻은 가장 큰 지원군들이었습니다.


다른 가슴 아픈 말들보다 실력이 뒤쳐진다는 말에 가장 상처가 커, 사이버범죄 수사기법에 대한 저만의 노하우를 만들고 싶어서 사건을 치고 나가는 동안 발견한 사실들은 정리하고 자료로 만들어 사이버범죄 예방교육으로 활용하였습니다.

특히 무인항공기 드론이라는 신세계를 접하게 되면서 몇 년간은 드론과 관련된 학회와 발표자를 찾아다니면서 수사 업무에 접목하려고 고민하던 와중에 강력팀의 산림법 위반 사건에  최초로 무인항공기 드론으로 채증한 항공 영상 자료를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컴퓨터 비전공자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너무도 듣기 싫어서 재수 끝에 2016년 9월 연세대 정보보호대학원 디지털 포렌식 학과에 입학해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수십 번 들 정도로 힘들었지만 그토록 원했던 공부를  마치고 싶어 2018년 2월 무사히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사이버범죄 수사 담당 형사가 사이버범죄 예방교육도 할 수 있다는 아이콘을 만들고 싶어 언론이나 미디어 측에서 인터뷰 요청이 오면 마다하지 않고 철저하게 준비해 앞에 나서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경찰청에서 매월 발간하는 ‘이달의 과학경찰인’에 선정되어 사이버범죄 수사와 무인항공기 드론을 수사에 접목한 인터뷰를 진행해 경찰청 내부 게시판에 발간되었던 적이 있는데 아주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경찰청 발행 간행물에 사이버범죄.드론 전문가로 선발되 인터뷰한 매거진 커버 사진과 내용. 출처:경찰청


그리고 한 종편채널에서 기획취재 형식으로 오랫동안 수사했던 두 자매 사건을 취재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습니다.

제일 먼저 피해 당사자인 두 자매분의 동의가 필요한 상황이라 세상에 알릴 준비가 되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인터뷰하고 촬영하게 되면 아마 가족들이 알 수도 있는데 괜찮으세요?”

피해자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저도 촬영을 진행할 수 없다고 사전에 취재팀에게 설명을 드린 상황이었지만 피해자들은 인터뷰에 응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촬영 당일 덤덤하게 아픈 기억들을 꺼내면서 인터뷰하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고 마지막 사건 담당자인 저의 인터뷰를 마지막으로 몇 시간의 촬영을 마쳤습니다.

“내일 9시 뉴스에 방송될 예정입니다!”

기자분은 명함을 건네주면서 방송 시간도 알려 주었지만 다음날 속보로 긴급 뉴스가 편성되면서 촬영한 영상은 방송되지 못했습니다.



몇시간동안 촬영을 했지만 다음날 속보 사건이 터지면서 결국 방송되지 못했습니다. 출처:박중현


2018년 양진호의 위디스크 사건으로 국내에 웹하드 카르텔이 집중을 받게 되었고 이 사건을 계기로 전국의 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 수사대에 디지털 성폭력 전담 수사팀이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디지털 성폭력 전담팀이 창설하기 전 음란물 유포 범죄 사건도 경찰서 사이버범죄 수사팀에서 처리하던 당시에 저 역시도 토렌트(torrent) 같은 P2P 사이트에서 음란물 유포, 저작권법 위반 사건을 처리하고 있었고 경찰청에서 웹하드 업체와 불법 촬영물을 대량으로 유통하던 헤비 업로더들 간의 유착과 심각성을 알리고자 특집으로 편성된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 인터뷰를 했으면 좋겠다는 연락을 받고 주저 없이 촬영에 응했습니다.

몇 시간 동안 촬영하고 본 방송에는 나오지 못한 채 예고편에만 짧게 나오긴 했지만 음란물 헤비 업로더와 웹하드 업체 간의 유착은 음란물 유포자 수사과정에서 자주 등장하였습니다.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예고편 영상. 출처:스포트라이트


그리고 방송이든 뉴스든 인터뷰의 마지막에는 ‘대국민 사이버범죄 예방교육이 꼭 필요합니다.!”라는 메시지도 항상 강조하였습니다.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는데 생방송 출연인 것 같습니다. 보이스 피싱 범죄 사례와 예방법에 대한 패널을 찾고 있는데 방송에 나가실 수 있을까요?”

이번에도 경찰청에서 저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네 준비해서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이버범죄 수사팀에 근무하기 전 지능범죄 수사팀에서 보이스 피싱 업무도 처리한 경험도 있었고 사이버범죄 수사 업무에는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직접 보이스 피싱 사건도 접수해 수사를 진행했었기 때문에 두렵지 않았습니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작가로부터 간단한 전화 인터뷰를 마치고 방송 녹화 한 달 전 사례 중심의 시나리오를 만들어 건네주면 그 시나리오를 토대로 작가분들이 대본을 작성하고 그렇게 촬영을 마쳤습니다.

최종 시나리오가 나오기 전 제가 만든 초안 시나리오를 방송에 적합한 내용으로 여러 번 수정하는 작업이 힘들기는 했지만 생방송 촬영 당일 정말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마쳤습니다.

사이버범죄 예방교육 경험이 없었더라면 생방송 촬영은 절대 불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도 사이버 수사 업무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특히 한 번씩 생기는 이런 기회는 수사 업무를 담당하는 형사가 예방교육도 한다는 시그니처를 꼭 만들고 싶은 마음이 제일 컸습니다.

그렇게 방송이 나간 뒤 다음 해 MBC 측에서도 방송을 보고 제작진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기분 좋은 날, 신종 사기 편’에도 출연할 수 있었습니다.


좌측 KBS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우측  MBC 기분좋은날 사진. 출처:KBS.MBC


3 급지 시골 경찰서에서 혼자서 근무하는 여건에서 근무하는 사람도 3급일 거라는 편견을 깨뜨리고 싶어서 시작한 일들이 뒤처지지 않을 스펙들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이런 스펙들은 다시 사이버범죄 예방교육을 필요로 하는 곳에 가서  돌려주었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학교 선생님, 지자체 공무원, 군인, 회사원, 노인회관 그리고 같은 경찰관까지 사이버범죄 예방 교육의 대상도 점점 넓어졌습니다.

첫 초임지가 제2의 고향이 되었고 여기서 결혼해 신혼생활도 연천에서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연천의 기억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은 바로 3 급지에서 만난 소중한 동료들과의 호흡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많은 걸 배우고 떠나게 되었습니다.  


연천 떠나기 한 달 전에 경찰서 본관에 오픈한 카페 매일 평균 5잔 이상 마셨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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