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중현 Apr 04. 2020

토쟁이들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토사장들.

도박중독자들의 피까지 빨아먹는 벌레 같은 도박사이트 운영자들.

남녀 구분 없이 사이버 공간에서 가족 모르게, 부모님 모르게, 지인이나 친척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수시로 접속하는 사이트를 꼽으라면 도박사이트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특히 도박사이트의 문제점은 가족 중 남편이 인터넷 도박을 한다면 남편을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이 도박사이트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가 없고 또한 인터넷 도박을 하지 않기 때문에 무관심한 경우가 많고, 마찬가지로 청소년들이 인터넷 도박에 빠져들기 전에 부모님이 먼저 개입해야 하지만 이 역시 부모들이 인터넷 도박에 대한 지식이 없거나 아예 관심이 없기 때문에 최근 청소년들의 인터넷 도박과 관련된 범죄가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인터넷 도박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았지만 지방청에서 본격적으로 도박사이트 운영자들 체포를 준비하면서 도박사이트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토토란 합법적인 스포츠토토 사이트와 유사한 허가받지 않은 불법적인 도박 토토 사이트를 말하며 이 불법 사설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는 조직이나 단체를 흔히들 토사장이라고 합니다.  

도박사이트 운영자 특정을 위해서 제일 먼저 시작하는 작업이 다른 도박사이트 운영자로 구속이 되거나 체포된 관련자들을 조사하는 일입니다.

우선 과거 도박사이트 운영으로 구속되어 현재는 식당을 운영하는 사장 그리고 프로 스포츠 선수로 활동하던 중 도박사이트 운영의 유혹에 빠져 처벌받았던 전직 프로 운동선수들까지 기초조사는 광범위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조사 과정에서 인터넷 도박사이트에서 사용되는 전문 용어들이 상당히 많이 나왔습니다.  

인터넷 도박사이트 공간에서 돈을 베팅하고 결과에 따라 돈을 배당받는 선수들을 토쟁이.

이 토쟁이들은 나중에 도박중독자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토쟁이들의 돈을 빨아먹으면서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 구성원들을 도박 중독자로 만들어버리는 도박 사이트 운영자들을 토사장.

스포츠 경기 결과를 미리 예측하여 도박사이트에 돈을 걸고 경기 결과나 승률에 따라 돈을 거는 행위를 베팅.

그 외에도 언더(under), 오버(over)처럼 인터넷 도박 사이트 세계에서 유통되는 용어들이 관련자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저희 팀 모두는 도박 사이트 운영자들 못지않게 반 전문가들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도박사이트 관련자들 중에는 이미 다른 지역 경찰서 사이버범죄 수사팀에 체포되어 구속되어 있는 피의자들도 꽤 많았습니다.

실질적인 도박사이트 운영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피의자와 수사접견 날자를 정해 놓고 조사당일 수감 중인 다른 도박사이트 운영자가 수의를 입고 나타났습니다.

현재 조사 중인 도박사이트에 대한 아주 대략적인 정보를 전달하고 오늘 조사에 필요한 내용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형사님 오늘 조사하러 오신 거 제가 선임한 변호사에게는 말하고 왔어요?”

조사 시작 전 피의자는 개인 변호사에게 미리 일정을 알리고 왔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리고 도박사이트 운영자들은 언젠가는 저희들과 같은 경찰에게 체포될 가능성을 예상하고 항상 개인 변호사를 미리 선임해 두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오늘은 피의자로 조사를 하러 온 게 아니고 저희가 수사하는 다른 도박사이트 관련해서 참고인으로 조사하러 온 건데 그럼 다른 날에 다시 올까요?”

피의자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조사를 받겠다며 오늘 조사받고 나가게 되면 변호사 보고 면회 좀 와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도박사이트 홈 페이지를 설계하는 놈들은 어떤 방식으로 만나죠?"

도박사이트 홈페이지 설계자, 도메인(domain) 주소를 등록하고 웹 호스팅(web hosting) 업체에 의뢰하는 놈들에 대한 모든 정보가 필요한 상황에서 우선 이 구속된 피의자가 체포되기 전까지 도박사이트를 어떤 방식으로 인수받고 운영하는지에 대한 스케치가 필요했습니다.

“누군가가 도박사이트를 인수하고 싶어 한다면 우선 전 도박사이트 운영자가 누구를 만나도록 주선해 줍니다.”

“아 그럼 실질적인 운영자는 나오지 않고 다른 사람을 보내 도박사이트 양도 양수를 하는 거네요?”

“예 그리고 현장에 나온 사람은 도박사이트가 원래 잘 만들어져 있으니 돈만 입금하면 바로 사이트를 인수해 줍니다. 아니면 원하는 형태의 도박사이트를 말해주면 그쪽에서 맞춰서 홈페이지를 설계해 줍니다.”

“그 만난 사람에 대한 정보는 있어요?”

우리 사건과는 별개였지만 그래도 알고 싶어 졌습니다.

“가명으로 만나기 때문에 이름이나 실명은 모릅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도박사이트 설계 쪽에서 꽤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수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어가면서도 또 다른 도박사이트 제보를 줄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계속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뭐 저희들한테 알려줄 정보 있어요?”

“그럼 제가 형사님한테 바로 검거할 수 있는 도박사이트 운영자 정보를 알려 드릴까요?”

도박사이트 운영으로 체포되어 구속된 피의자들은 한때는 같은 동네 선후배였던 파트너들도 팔아넘기고 경찰과 검찰의 수사 시스템을 완전히 꿰뚫고 있는 놈들이기에 거짓과 배신을 밥먹듯이 하는 놈들이란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다른 공범들과 접촉하고 증거를 없애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놈들이기 때문에 좋은 정보를 주는 것처럼 위장해 경쟁 도박사이트 업체를 무너뜨리기 위한 수법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필요한 조사는 다했고 그 얘기는 본인 변호사에게 가서 하시죠!”

더 이상 들을 가치고 없다고 판단하고 곧바로 사무실로 복귀하였습니다.




수사를 시작한 지 3개월째 접어들면서 도박사이트 운영자들에 대한 조직도가 그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도박사이트 총책임자, 사이트 홍보를 맡고 있는 홍보책, 24시간 1년 365일 돌아가는 도박사이트에 수시로 베팅하는 고객들을 관리하는 고객 관리책, 고객들의 돈을 수시로 다른 계좌로 재 이체하면서 돈을 세탁하는 자금관리책을 맡고 있는 피의자들이 어느 정도 그려지면서 조직도가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도박사이트 운영 조직도가 완성되어가던 시점에 이미 잠복근무를 통해 도박사이트 운영장소도 확보해 두었습니다.

검거 시기를 며칠 앞두고 사이버범죄 수사팀 전체가 모여서 검거일 체포 장소, 체포 후 압송하는 과정에 대한 회의가 시작되었습니다.

3개 팀이 분산해서 체포하고 검거 시간은 동시에 주거지에서 아니면 출근하는 피의자를 자연스럽게 체포하는 방식으로 회의가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한 개 팀은 도박사이트 운영장 지하 주차장에 잠복하고 있다가 출근하는 피의자를 발견하면 자연스럽게 체포해 도박사이트 운영장에 진입하는 걸로 체포계획을 구상했습니다.

그리고 체포 당일 모든 팀원들이 사무실을 비우고 나가게 되면 중간중간 보고하고 상황을 전파해 줄 사람이 필요한데 하필이면 제가 사무실에 남아 있어야 했습니다.

아쉬웠지만 체포 당일 3개의 검거팀이 동시에 체포하면서 혹시나 중간에 알려야 할 사항이 발생할 수도 있고 체포팀에서 실시간으로 상황을 공유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카카오톡방 메시지도 유심히 체크해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에 사무실에 남기로 하였습니다.


체포 당일날은 직원들이 출근하자 말자 곧바로 전날 미리 준비한 10여 개의 포승줄과 수갑들 그리고 3개의 테이져건과 체포해야 될 피의자별로 발부된 체포영장과 압수수색 검증영장들을 확인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2년 해본 사람들이 아닌 모두들 베테랑이었기 때문에 웃으면서 준비를 마치고 3대의 검은색 스타렉스에 분산해 체포 장소로 출발하였습니다.

저는 모두 현장으로 떠난 조용한 사무실에 혼자 앉아 급하게 연락 오면 전달할 준비를 마치고 영국 수사기관에서 요청이 들어온 사건에 대한 수사보고서를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출발 후 3시간 정도 지나자 단체 카톡방에 메시지들이 올라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 000 집 앞에 대기 중인데 나오는 대로 검거하겠습니다.”

“저희 팀도 체포 대기 중입니다.”

출발한 팀별로 각자 장소에 도착해 대기하고 있다는 메시지가 올라왔습니다.

이어서 현장에 도착 후 30분이 안돼서 한 팀으로부터 피의자 체포 메시지가 올라왔습니다.

“집 앞에서 000 체포했습니다!”

한 팀에서 체포하면 곧바로 체포 소식이 다른 피의자들에게도 전파될 수 있어 기다릴 여유 없이 곧바로 주거지로 들어가거나 체포 장소로 밀고 들어가야 합니다.

대기 중인 다른 팀에서도 동시에 체포를 하기 시작하던 중 또 한 팀에서 메시지가 올라왔습니다.

“000가 안 보입니다. 저희들이 차로 한 바퀴 돌아보겠습니다!”

10여분이 지나서 다시 메시지가 올라왔습니다.

“000가 화장품 가게에 들르는 바람에 안 보였다가 걸어가고 있는 현장에서 바로 체포했습니다!”

출발 후 5시간 정도 지나서 도박사이트 관련자들 전원 체포 소식이 올라왔습니다.

이제는 제일 중요한 도박사이트 운영장에 대한 압수수색과 컴퓨터 등의 압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압수수색과정은 체포 시간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리고 현장에서는 범죄와 관련된 대포폰이나 컴퓨터 등도 압수하면서 동시에 디지털 포렌식을 위한 디지털 증거물 압수수색에 대한 절차도 남아 있어 시간이 꽤 오래 걸릴 것 같았습니다.

피의자들 체포하면서 압수한 외제차, 골프채, 도박 자금등. 출처:박중현


“지금 000 피의자 집에 가면 도박 자금이 현금으로 있다고 하니깐 집에 갔다가 오겠습니다!”

압수수색이 한참 진행되고 있는 것 같고 아침 일찍 출발했지만 사무실에는 거의 저녁이 되어서 올 것 같아 사무실에서 잠시 틈을 이용해 다시 영국에서 요청 들어온 사건을 정리하였습니다.

제일 먼저 영국 수사기관 NCA로부터 넘겨받은 사건 개요서와 피해 사실을 번역해 서류로 만들다가 중요한 피해자 진술이 빠져 있었습니다. 피해자 진술 없이는 사건 진행이 안되기 때문에 영국인 피해자 조사가 필요했습니다.

서류에 나와 있는 영국인 피해자는 화물선 접안 시설을 만드는 기업의 최고 경영자였습니다.

인터넷에서도 검색이 될 정도로 규모가 큰 선박 접안 시설을 만드는 회사인 것 같았고 우선 피해 서류에 기재되어 있는 이메일 주소로 저의 신원과 사건 개요를 밝히고 직접적으로 연락할 수 있는 연락처도 알려 달라고 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오후 4시가 넘어서 체포를 나갔던 팀들로부터 메시지가 올라왔습니다.

“저희 팀은 다 끝났으니깐 먼저 사무실로 복귀하겠습니다!”

도박사이트 운영장에서 압수수색을 진행하던 팀은 마무리하는 데로 사무실로 복귀하고 다른 팀은 먼저 사무실로 출발한다는 메시지가 올라왔습니다.

이제부터 구속영장 청구를 위한 서류 작업과의 전쟁이 남았습니다.

각 피의자별로 어떤 역할을 나누어서 도박사이트를 운영했는지를 구증하고 도박사이트로 벌어들인 수익금 그리고 압수한 계좌와 컴퓨터와 스마트폰에서 얼마나 많은 회원들을 끌어 모았는지도 구증해야 합니다.

그러고 보니 데리고 오는 피의자가 5명이라고 했으니깐 오늘부터 밤을 새워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같은 팀원들이 있어서 재미있게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전 03화 경기북부지방경찰청으로 입성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