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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중현 Apr 07. 2020

직업병

도박사이트 춘추전국시대

2천여 페이지에 까까운 사건 기록물과 압수한 증거물들 그리고 잡혀온 그대로의 복장으로 양손에 수갑을 차고 줄줄이 포승줄에 묶인 채 검찰청으로 송치하는 날이 다가왔습니다.

피해자든 피의자든 법의 심판을 받기 위한 본격적인 절차인 송치한다는 안내를 받으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합니다.

"송치는 송아지 새끼인가요?”

태어나서 처음 경찰 조사를 받아보는 분들에게 조사 후 검찰로 사건 기록과 증거물들을 보내는 과정을 송치한다는 과정을 설명하면 많이 받았던 질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도박사이트 피의자들은 이미 수차례 검찰로 송치가 되었던 전력이 있는 유경험자들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담당 형사들이 완성시켜 놓은 범죄사실들을 무너뜨리고 축소시키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할 것입니다. 월 수천만 원의 수익을 벌어 들일 때는 동료들 일지 몰라도 저희들에게 체포되는 순간부터 각자 살아남는 각개전투 모드로 돌변합니다.

체포된 한 피의자는 애지중지하던 벤츠 차량을 매각이라도 해서 변호사를 선임했지만 막내로 보이던 피의자는 그나마 변호사를 선임할 여유가 없어 국선 변호인의 도움만 받을 수 있었습니다.

도박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월 수천만 원의 순 수익을 찍을 때는 벤츠를 타고 골프를 치러 다니면서 조금 더 파이팅하면 인생 폼나게 살아볼 수 있다고, x같이 일해서 뭐 하냐면서 세상 모든 허세를 떨면서 한탕을 즐겼을 것입니다.  

도박사이트로 벌어들인 돈을 어디다 사용하였는지 확인해 보니, 내연녀와 함께 마카오로 건너가 도박으로 탕진했다고 진술하였습니다. 하긴 도박으로 벌어들인 수천만 원의 돈을 저축이라도 했더라면 아파트라도 구매했을 건데 나중에 형사들이 도박 자금으로 벌어들인 수익 전부를 압수한 다는걸 워낙 잘 아는 친구들이라 그런지 몰라도 도박으로 번 돈 도박으로 탕진해 버렸습니다. 이런 피의자들은 그래도 한 가족의 가장이었고 부인은 울면서 사무실을 방문해 앞으로를 걱정하였습니다.

“형사님 담배 한 대 피울 수 있을까요?”

마지막 조사를 마치고 늦은 저녁 경찰서 유치장으로 입감 하기 전 저에게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구속되면 당분간 담배를 피우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어 연속으로 3-4개비를 피우도록 해 주었습니다.

“이번에 들어갔다 나오면 이제 도박사이트는 접겠습니다!”

남아있는 가족들 걱정하며 연속으로 담배를 피우는 피의자의 얼굴에는 일말의 반성의 기미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머릿속에는 왜 하필 체포가 되었는지 그리고 자신들을 수사기관에 제보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색출해 내기 위한 치밀한 작업을 시작할 것입니다.


변호사를 선임했던 피의자든 국선 변호인의 도움을 받았던 피의자든 모두들 공평하게 같은 경찰서 유치장에 구속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도박사이트를 운영하기 위해 뭉친 피의자들에게 법원은 공통적으로 처벌하는 양형인자 즉 다시 말해 각 피의자별로 형벌을 내리는 데 있어서 공통적으로 적용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로 하여금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용이하게 도박을 할 수 있게 하는 등 사행성을 조장하고 건전한 근로의식을 저해시켜 그로 인한 사회적 해악이 매우 큰 점. 수사 기관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다수의 차명계좌를 이용하는 등 범행이 고의적. 계획적. 전문적으로 이루어진 점’
 

이 부분이 법원에서 도박사이트 운영자들에게 공통적으로 죄질이 불량하다고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무차별적으로 도박사이트에 접속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X 나게 일할 필요 없이 뛰어난 적중률로 배당금을 받을 수 있도록 끌어들인 행위는 우리처럼 하루를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버는 사람들로 하여금 상대적으로 박탈감이 생기게 하는 사행심은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수사에 혼선을 주고자 사회 초년생들과 대학생들의 통장을 끌어모아 도박 자금을 세탁하는 데 사용한 범죄 행위를 조직범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노동의 대가를 모르고 피의자들이 부추긴 사행심에 빠져든 마을 주민들을 도박중독자로 만든 대가가 고작 아무 의미 없는 판결문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 판결문은 피의자들이 죽어서라도 무덤까지 따라갈 판결문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게 3개월 만에 도박사이트 운영자들을 소탕하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도박사이트 차단까지 마무리하면서 검찰로 송치하는 당일날 경찰서 유치장에 입감 중인 피의자들을 꺼내러 아침 일찍 출발하였습니다.

체포될 때의 모습 그대로 양손에 수갑을 차고 줄줄이 포승줄에 묶인 채 그렇게 경찰서 유치장을 나왔습니다. 달라진 모습이라면 유치장에 입감 되어 있는 동안 면도를 하지 못해 모두들 얼굴에 수염들이 가득했고 제대로 씻지 못해 몸에서는 제대로 된 쉰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유치장을 나와 대기 중인 승합차에 한 명씩 탑승하는데 경찰서 주차장 내 맞은편 흰색 승용차량 안에서 젊은 여성 2명이 여기를 향해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2명의 얼굴 표정은 마치 길거리를 걸어가다 유명 연예인을 본 것처럼 즐거운 표정이었습니다.

“누구시죠? 사진을 왜 촬영하는 거죠?”

다가가서 차 안에 있는 두 사람을 쳐다보며 물어보았습니다.

“저기 000 친구인데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습니다. 휴대전화를 가져오라고 해서 눈 앞에서 바닥에 내리쳐 발로 밟아 부셔버리고 싶었지만 인권을 제대로 챙겨 먹는 법을 아는 놈들의 친구들이라 차 안에서 웃으면서 사진 찍는 분위기를 망쳐버리는 것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유치장에 나오는 모습을 간직하고 싶어 마치 그들만의 핵인싸가 된 것처럼 웃으면서 사진을 촬영하는 두 여성의 모습을 보고 서로 할 말을 잃었습니다.

“남자 친구들을 체포한 형사들을 저 여자들의 눈에는 뭘로 보일까?”

검찰로 출발하는 차 안에서 뒤돌아보는 피의자를 보고 있으니 형을 다 살고 만기 출소하면 베트남과 필리핀으로 넘어가 도박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피의자들은 송치하였지만 사건은 마무리되지 않았습니다.

하나의 도박사이트를 운영하면서 또 다른 도박사이트가 시야에 포착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월 몇 천씩 찍었는데 지금은 도박 사이트가 많이 생기면서 수입도 줄었습니다!”

이번에 체포한 피의자들도 그렇고 전 도박사이트 운영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도 공통적으로 언급되었던 부분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사이버 공간은 도박사이트의 춘추전국시대였습니다.

고등학교 자퇴생들끼리 모여서 도박사이트를 만들고 맞춤형 도박사이트 웹 페이지를 설계해 주는 대행업체까지 등장하는 등 도박사이트를 위한 주문형 플랫폼까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팀에서 막 도박사이트 운영자들의 송치가 마무리되자 옆 팀에서 수사를 하고 있던 운영자들의 조직도가 완성되고 있었습니다.

‘먹튀 검증 사이트’

도박사이트가 판을 치게 되면서 회원들의 돈을 입금받고 사이트를 닫아버리는 일명 먹튀 사이트들도 등장하게 되자 먹고 튀는 도박사이트인지 아닌지를 검증해 준다고 홍보를 하고 있었습니다.

불법 도박사이트가 먹고 튀는 사이트인지 아닌지를 검증해 준다는 또 다른 불법 도박사이트가 생겨나고 있었습니다.


불법 도박사이트를 검증해주는 또 다른 불법 도박사이트. 출처:박중현


옆 팀이라 하더라도 도박 사이트는 팀 전체가 달라붙어야 하기 때문에 운영 조직도가 완성되면 지체 없이 체포에 들어가야 하고 이번에는 저희 팀에서 수사했던 조직원들의 2배가 넘었습니다.

도박사이트 총책임자를 비롯해 전반적인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운영책, 홍보를 담당하는 홍보책, 대포통장 공급책과 특히 이번에는 도박사이트를 설계해 주는 프로그래머까지 확보된 상태였습니다.

이번 사건의 주 책임자이자 저보다 한 살 많은 형이기도 한 윤형사님은 평소 조금씩 준비하다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 투망을 던지듯이 쓸어 담는 추진력이 있는 형이라 당분간 집에 못 들어갈걸 각오해야 했습니다.

각 팀별로 역할을 분담하고 며칠 뒤 체포 일자를 정해 놓은 뒤 하루는 늦은 저녁에 집으로 퇴근하다 기름을 채우려고 인근 주유소에 들렀습니다.

저녁 12시가 다 되어서 셀프주유소다 보니 기름을 채우는 차는 저 혼자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 옆으로 정말 시끄러운 힙합 음악소리와 함께 뚜껑이 열려있는 BMW 차량이 들어왔습니다.

운전자는 20대 초반의 젊은 친구와 그 옆자리에는 같은 또래의 여자가 동승하고 있었습니다.

운전자는 침을 뱉으면서 간지 나게 주유를 하고 그 옆에 여자는 한쪽 발을 올린 채 누가 봐도 아주 거만한 자세로 핸드폰을 하면서 웃고 있었습니다.

“야 시발  x나 웃겨! 이거 봤어?"

남자 친구를 향해 스마트폰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이때 제 머릿속에는 두 가지의 가능성이 떠 올랐습니다.

하나는 정말 능력 있는 부모님 덕에 좋은 차를 구매할 수 있는 기회를 받은 것이고 아니면 확인할 방법이 있습니다.

직접 저 허세 가득하고 예의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의 통장을 까보면 됩니다.

“너 토사장이지?”

 남들을 배려하지 않고 예의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데다가 인생한방을 위해서 허세를 목숨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 저는 토사장만 떠오릅니다.     

아무래도 직업병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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