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중현 Apr 18. 2020

쓰레기 같은 도박사이트 운영자들

중신에서 토사장으로 벼랑 끝 선택의 갈림길에 선 도박 중독자들

“전과가 21 범인데?”

의정부 교도소에 중고나라 사기로 구속되어 있는 피의자를 다른 지역 경찰서에서 조사를 해 달라는 ‘촉탁’ 수사 의뢰를 받고 사무실 직원과 함께 의정부 교도소 수사 접견실에서 조사를 위해 제일 먼저 전과를 확인하니 피의자의 나이는 만 19세이지만 중고나라 사기로 재판 진행 중인 전과 경력만 21건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한 명의 피의자가 저지른 중고나라 사기 범죄로 피해를 입은 전국의 피해자들이 각 지역 경찰서에 신고를 하게 되면 각 지역을 관할하는 법원으로 송치를 하지만 결국 피의자가 구속되어 있는 법원으로 사건이 모여지게 되면서 최종 판결을 받게 될 예정으로 중고나라 사기 전과로만 21범으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최종적으로 다른 법원에서 이송된 사건들이 하나의 법원으로 합쳐져서 최종 하나의 판결로 내려지겠지만 21건으로 그것도 중고 나라로만 재판이 진행 중인 피의자도 처음 보았습니다.  

“000야! 니 나이보다 전과가 많네?”

하늘색 수형복을 입은 피의자는 나이가 너무 어려 보였습니다.

“형사님! 이거 빨리 조사 끝내고 다음 주 재판이니깐 바로 검찰로 송치해 주세요!”

피의자는 다음 주부터 중고나라 사기 범죄로 정식재판인 ‘구공판’이 열릴 계획이었지만 오늘 다른 지역 경찰서에서 의뢰받은 조사서류가 정식 재판이 열리기 전까지 넘어오지 않으면 모든 사건이 취합되기 까지 재판이 연기되는 걸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형사님! 죄는 다 인정하니깐 서류는 형사님이 알아서 다 작성하시고 저는 지장만 찍겠습니다. 그리고 아직 다른 경찰서에서 넘어올 사건이 몇 개가 되는지 알아 봐 주실 수 있어요?”

지금 저 나이로는 취업을 걱정해야 하고 어떤 미래를 설계해야 할지를 걱정해야 하겠지만 이 피의자는 사이버범죄 수사팀 형사들이 어떤 내용을 물어보고 그 서류를 넘겨받은 검찰에서 어떤 절차를 거쳐 법원으로 넘어가는지 한 마디로 한국의 사법 시스템을 몸소 체험해 프로세스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습니다.

특히 이런 피의자들은 형사들의 질문에는 절대적으로 친절하게 대답하고 단 한 번의 질문에도 부인하거나 대들지도 않습니다.

“오늘 조사한 사건은 사무실로 들어가면 곧바로 의정부 지방 검찰청으로 송치할 수 있는데 다른 지역에서 얼마나 많은 사건이 더 넘어올지는 나도 몰라!”

중고나라 사기로 구속된 피의자들은 피의자 자신조차 얼마나 많은 피해자들 대상으로 범죄를 저질렀는지 모르기 때문에 구속된 후 전국의 피해자들로부터 사건이 하나의 법원으로 취합되기까지는 몇 개월이 걸릴 수도 있어 미리 알려주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피해자들 돈으로 인생을 탕진한 중고나라 사기 피의자들의 결말은 하늘색 수형복과 구속이었습니다.
 

“그래도 고등학교라도 졸업해야 나중에 어른이 되면 니 인생에 후회가 없을 건데 지금 여기 구속된 거 후회 안 해?”

“학교에서 공부하면 뭐해요? 중고나라로 조금만 사기 치면 2천만 원은 금방 땡기는데!”

자기 나이보다 많은 전과를 가지고 있는 피의자는 형기를 마치고 나오더라도 정상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런 피의자들의 마지막 선택이 바로 도박사이트 운영 구성원으로 가담하는 것입니다.

이미 중고거래 사기 범죄로 대포통장. 대포폰을 유통하는 방법을 깨우치고 중간 공급책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사이버 공간에서 자신의 신분을 세탁하는 방법을 습득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 나이보다 많은 전과자들이 습득한 기술들을 받아주는 곳은 유일무이 도박사이트 운영 조직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중고나라 범죄로 자칭 중고나라 사기의 신 ‘중신'의 길을 선택한 피의자들이 들어가는 곳이 현재 우리나라 도박사이트 운영자들의 현실이기도 했습니다.  

     



이번에 포착된 도박사이트 운영 사무실은 수원 영통구로 확인되었습니다.

도박사이트 운영자들에 대한 조직 계보도가 확인된 후 사건의 주 지휘자인 윤형사님과 함께 제일 먼저 수원 영통구로 사전 답사를 나갔습니다.

도박사이트 운영 사무실은 대부분 월세 단위로 계약을 체결하고 수시로 사무실을 옮기기 때문에 1주일간 수원 일대를 구석 구석 사무실을 옮긴 곳마다 계약자 명의자와 계약금이 지불되는 통장 등 모든 서류를 취합하면서 사전 답사를 마쳤습니다.  

사전 답사후 본격적으로 체포 당일 각각의 체포 팀이 분산해서 잠복할 위치와 최종적으로 체포를 시작할 검거장소 그리고 체포 후 피의자들을 분산시켜 이송할 차량 주차위치 등을 꼼꼼하게 준비해야 했습니다.

1주일간의 도박사이트 운영장에 대한 사전 답사와 방대한 양의 통화내역, 계좌 거래내역 분석을 토대로 검거 회의가 열렸습니다.

이번 체포 작전의 메인 설계자인 윤형사님은 준비 작업만 마치면 투망을 던져 한번에 쓸어 담는 업무 스타일을 워낙 잘 알고 있어 체포 당일부터 1주일간 집에 들어가기는 어려워질 것 같아 모두들 단단히 준비를 하였습니다.

“체포 직전 잠복은 1개 팀이 주차장 입구에서 해 주시고 한 팀은 아파트 관리실에서 CCTV를 보면서 피의자들이 주차장 입구로 들어오면 함께 체포 장소로 올라가는 걸로 계획하겠습니다!”

윤형사님의 검거 회의는 워낙 철저하게 사전 분비된 상황이라 어느 누구도 의문을 가지거나 질문 없이 고개만 끄덕이고 곧바로 장비들을 챙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번에는 검거 인원이 많을 거라 예상돼 경기북부청 수사팀 전원에 디지털 포렌식 분석 요원 2명과 서무 직원들까지 모두 지원을 받아 나가야 했습니다.

저는 연천에 근무할 때부터 검거 장소에 차고 나갔던 액션캠과 수갑 포승줄을 챙기고 다른 팀원들도 현장에서 채증 할 고해상도 카메라와 서류 준비를 마쳐 총 3대의 차량에 나눠 탑승해 출발 준비를 마쳤습니다.


“점심은 의정부 부대찌개 거리 보영 식당으로 가겠습니다!”

이번 사건의 총지휘자인 사이버 수사 팀장님께서 전체 공지를 올렸습니다.

체포 직전 다 함께 먹는 부대찌개는 이루 말할 수없이 맛있었지만 정작 이번 검거 사건의 총설계자이자 지휘자인 윤형사님은 웃으면서 점심을 먹으면서도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습니다.

“오늘 체포 장소에 전부다 한꺼번에 모여 있으면 정말 좋겠다!”

윤형사님이 웃으면서 지나가는 말로 농담을 던졌지만 체포해야 될 피의자들이 분산되어 있으면 자칫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모두들 걱정하는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늦은 점심 식사를 마치고 모두들 각자의 차량에 탑승해 체포 장소인 수원으로 향해 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2시간가량 달리기 시작해 3대의 차량이 모두 지하 주차장에 분산시켜 주차시키고 피의자들의 이동 동선을 확인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시나리오대로 한 팀은 오피스텔 건물 초입에 차량을 대기시켜 피의자들이 나타나는지 잠복을 시작하고 우리 팀은 아파트 관리 사무실로 들어가 오피스텔 내  CCTV 위치를 모두 파악해 어느 방향으로 들어오는지를 확인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윤형사님 팀은 최종 체포해야 할 장소 주변에 잠복을 하고 있다가 체포가 시작되면 곧바로 밀고 들어가기로 모두 합을 맞췄습니다.

2시간가량 지나자 이미 저녁이 되어 버렸습니다.

“피의자들 들어옵니다!”

오피스텔 초입에 잠복을 하던 팀으로부터 단체 메시지가 올라왔습니다.

총 3명의 피의자들이 오피스텔 초입을 지나 건물 내부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여 아파트 관리실에 있던 저희 팀도 밖으로 나와 엘리베이터 앞에 대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오피스텔 초입에 잠복하던 팀원 2명과 아파트 관리실에서 대기하던 저희 팀 2명 그리고 피의자 3명에 오피스텔 입주자 1명까지 총 8명이 한꺼번에 엘리베이터에 탑승하였습니다.

자연스럽게 입주민처럼 엘리베이터에 탑승해 피의자들이 누른 층수 바로 위의 층수를 누르고 올라갔습니다.

이번 도박사이트 사건의 총책임자인 피의자와 저하고 얼굴을 마주 보고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상태였고 피의자는 평소와는 다르게 엘리베이터 안에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건지 의아해하는 표정이었지만 밖에서 술을 마시고 들어 왔는지 기분은 좋아 보였습니다.

이 엘리베이터 안에 피의자 빼고 모두를 형사라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회식은 몇 년간 교도소에 수감될걸 생각하면 마지막 회식이 될지도 모릅니다.

피의자들은 먼저 내리고 곧바로 위층에서 내린 저희 팀은 뛰어서 바로 아래층 최종 체포 장소로 뛰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다세대 복도식 오피스텔이라 그런지 한 층을 뛰어 내려가는데 의외로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체포 장소로 막 뛰어 도착하니 이미 윤형사님 팀이 주거지로 들어가는 피의자들과 자연스럽게 함께 밀고 들어가면서 체포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머리 숙이고 앉아 있어!”

10여 명의 형사들이 동시에 고함을 내 지르니 피의자들도 분위기에 압도당해 전부 바닥에 앉은 채로 머리를 숙이기 시작했습니다.

각자 지갑 속에 신분증을 꺼내 신원을 확인하고 윤형사님이 바닥에 앉아 있는 피의자들에게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현 시간부터 국민체육진흥법 위반, 도박개장으로 체포영장 집행합니다! 변호사 선임할 수 있고 불리한 진술 거부할 수 있고, 법정에서 유죄의 증거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각 피의자별로 포승줄로 묶은 뒤 다시 도망가지 못하고 줄줄이 포승줄로 연결시키고 디지털 포렌식 팀은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던 도박사이트 운영자들의 데이터를 확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팀은 내부 압수수색을 시작하면서 압수할 물건들을 진열하기 시작하고 다른 팀은 이 모든 영상을 고화질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었습니다.

수십대의 대포폰과 수십 개의 대포통장들이 쏟아져 나왔고 체포된 피의자들이 사용하던 스마트폰 모두를 압수해 디지털 포렌식을 위한 서류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도박사이트 운영자들로부터 확보한 대포폰. 대포통장. OTP카드. 출처:박중현



체포 시작 후 4시간 정도 지나자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있었습니다.

4시간가량 바닥에 앉아 벽을 바라보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피의자들 머릿속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바쁘게 돌아가고 있을 겁니다.

“너 대학생이야?”

유독 나이가 아려 보이는 피의자가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어 물어보았습니다.

“고등학교 자퇴했는데요!”

그 옆에 함께 고개를 숙이고 있는 피의자에게도 물어보았습니다.

“그쪽은 몇 살이에요?”

“직업 군인입니다!”

직업 군인이 도박사이트 운영에 가담하다니 믿기지가 않아 다시 물어보았습니다.

“현역인가요?”

“아닙니다. 전역한 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분명히 직업 군인으로 복무 당시 도박으로 인해 군에서 적발을 당했을 것입니다. 군에서 도박과 음주 품위손상으로 징계를 받으면 진급에 누락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차리 리그만 두는 게 낫겠다 싶어서 전역했을 겁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자퇴생과 직업 군인이 이렇게 도박사이트 운영에 뛰어들다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와중에 압수수색과정을 말없이 지켜보기만 하던 도박사이트 운영자는 부인에게 전화를 해야 한다고 전화를 쓰게 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가족들에게 체포 통지는 저희들이 할 겁니다!”

총책임 피의자에게 권리를 알려 주었습니다.

“와이프 보고 변호사한테 연락해 달라고 전해해야 합니다!”

이 와중에 자기만 살아 보려고 변호사를 찾고 있었습니다.


도박사이트 운영 조직은 가장 악질적인 인간들만 모여있는 곳이긴 했지만 이번에는 이렇게 고등학교 자퇴생과 직업 군인을 도박 중독자로 만들어 버리고 아예 도박 사이트 운영 조직에 가담시켜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제 눈에는 도박 사이트 총책임자는 쓰레기로 보였습니다.

결국 도박사이트 운영 조직에 들어가게 되면 같은 쓰레기가 되어 버립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자퇴생과 직업 군인이 자청해서 쓰레기가 되려고 도박사이트 조직에 가담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을 기다리는 곳은 유치장과 교도소인데 형기를 마치고 나오면 어떤 존재로 또 사회 구성원으로 숨어 살지 알 수 없는 현실입니다.

이런 쓰레기 같은 피의자들에게는 사이버범죄 예방교육은 쓸데없는 잔소리 일 뿐인 것 같습니다.  

예방교육은 그만두고 잡으러만 다녀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전 06화 직업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