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매출을 능가하는 도박 사이트
체포 직전 마지막 회식을 즐겼던 도박사이트 운영자 7명은 도박사이트 운영 사무실에서 압수된 수많은 대포통장 및 컴퓨터 등과 함께 줄줄이 포승줄에 묶인 채 경기도 수원에서 의정부 사무실로 내달렸습니다.
4시간이 넘는 압수수색과 체포영장 집행으로 모든 수사관들의 에너지가 소진되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악질적인 인간들이 모여있는 도박사이트 운영장에서 하이에나 같은 범죄자들을 구속시키기 위한 전쟁을 시작해야 합니다.
저녁 1시가 넘어서 사무실에 도착하자 말자 포승줄에 묶인 피의자를 제일 먼저 사무실로 데리고 가서 본격적인 조사를 준비하는 팀, 압수한 도박자금과 대포폰을 분류하는 팀으로 역할을 나누어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도박사이트 총책임자는 윤형사님이 조사를 맡고 각자 나머지 조직원들은 분산시켜서 조사를 시작하였습니다.
경찰. 검찰. 법원의 사법 시스템과 형사들의 신문 조사 방식과 검찰의 신문 조사 방식에도 이골이 난 피의자들에게는 그 어떤 회유나 도덕심에 호소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두들 공평하게 도박사이트 운영을 위해 각자 맡은 역할에 따라 '일직선'으로 줄 세워 공평하게 범죄사실 서류를 만들어주면 됩니다.
혼자서 근무할 때는 손도 댈 수 없었던 사건이었지만 사이버범죄수사대 전 팀원이 달라붙어서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도박사이트 운영조직원을 통으로 쓸어오는 성과물이 나왔습니다.
검거 당일 체포 장소로 출발하기 전 오후 늦게 의정부 부대찌개 거리에서 점심 겸 저녁을 먹으면서 이번 사건의 총지휘자인 윤형사님이 "오늘 체포 장소에 전부다 한꺼번에 모여 있으면 정말 좋겠다!"라는 예언이 적중하면서 그 뒤로 항상 체포 직전에는 의정부 부대찌개 음식점에서 다 같이 밥을 먹고 출발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사법 시스템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도박사이트 운영자들과 현장에서 오랫동안 몸으로 뛰면서 노하우가 축적된 형사들과의 본격적인 피의자 신문이 시작된 시간이 새벽 3시가 가까웠습니다.
그날 사무실의 분위기는 마치 영화 '나니아 연대기 1편,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에서 두 진영이 칼과 방패를 들고 충돌하기 직전처럼 일촉 즉발의 상황이었습니다.
장시간의 압수수색으로 형사들 못지않게 피의자들도 지친 상태였지만 체포 직후 각 피의자들 대상으로 작성하는 1차 조서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서로 피곤하더라도 조사는 몇 시간 동안 계속 이어졌습니다.
새벽 5시가 넘어서야 조사가 끝났고 7명의 피의자들 모두 의정부경찰서 유치장으로 입감 시켰습니다.
유치장에서 정밀 신체 수색을 마치고 각자 방으로 들어가자 말자 모두들 피곤했는지 곧바로 유치장 바닥에 쓰러져 잠이 들었습니다.
"몇 분은 집에 들어가서 잠시 쉬다 오고 몇 명은 잠깐 눈 좀 붙였다가 2차 조사 준비하시죠!"
다시 사무실로 복귀 후 수영장에 빠졌다 나온 것처럼 몸들이 무거워진 팀원들도 하나둘씩 의자에서 쓰러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사건 총책임자인 윤형사님이 공지사항을 알리자 팀원의 절반은 집으로 들어가고 저하고 몇 명은 사무실에서 눈을 붙이기로 했습니다.
하루 종일 씻지도 못한 채 조사를 하다 보니 몸에서 쉰내가 나는 것 같아 화장실에서 간단히 세수를 마치고 돌아오니 윤형사님을 포함한 전부들 의자에 머리를 기댄 채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 눈을 붙이고 나니 벌써 사무실 밖 유리창은 아침이었고 새벽 일찍 사무실을 청소하러 들어오시는 근무자분들 문 여는 소리에 모두들 잠이 깨었습니다.
잠을 제대로 잔 건지 안 잔 건지 알 수 없는 비몽사몽에 새벽에 조사한 피의자들 별로 진술 내용과 도박 사이트 운영에 가담한 역할 등을 정리한 엑셀표를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윤형사님은 항상 피의자들 조사 후 각 피의자별로 진술하는 내용들을 정리해 미리 수집한 증거물들과 쉽게 대조할 수 있도록 엑셀표를 정리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데 사건 수사에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었습니다.
각 피의자들 진술을 찾기 위해 일일이 기록을 뒤질 필요 없이 '진술 대조표'를 들여다보면 어느 페이지에 어느 증거물과 대조할 수 있는지를 쉽게 찾을 수가 있기 때문에 윤형사님과 함께 일하고 나서 저도 피의자들 진술을 엑셀로 정리하는 진술 대조표를 습관적으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월 1억대의 수익을 찍는 도박 사이트 운영 수익 표를 들여다보니 하루 열심히 일해서 월급을 받는 우리의 모습이 너무도 처량해 보였습니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먹튀 도박사이트'를 검증해 주는 것처럼 홍보를 해서 자신들이 검증한 안전한 도박 사이트를 회원들에게 홍보해 이익을 챙기고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사이버 공간은 도박사이트의 춘추전국시대가 되다 보니 안전한 사이트인 것처럼 대규모로 홍보해 회원들로부터 돈만 받고 사이트를 폐쇄하는 '먹튀'사이트가 생겨나면서 나름 먹튀 사이트를 검증해 주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홍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불법 도박사이트를 전문적으로 홍보해 주는 도박사이트 홍보 에이전시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도박 사이트를 화려하게 만들어주는 도박사이트 홈 페이지 설계자들과도 업무 협약을 체결하고 있었습니다. 불법 도박사이트가 먹튀 사이트인지 아닌지를 검증해 주는 또 다른 불법 도박사이트가 생겨나고 있었습니다.
이번 사건을 시작으로 한 건의 더 큰 대규모 도박 사이트 운영 조직을 쓸어오면서 도박 사이트 웹 페이지 설계자가 한 지방의 대학교 컴퓨터 공학과 시간강사로 근무하고 있는 사실도 발견하였습니다.
이제 도박사이트 운영 조직원들은 사이트 홈페이지 설계자, 운영 조직원, 홍보를 대행해 주는 에이전시, 대포통장 공급원, 대포폰 공급원 등과 함께 MOU를 체결하고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사업이 분업화되면서 도박 사이트 운영에 가담하는 조직원들이 늘어나게 되고 하나의 도박 사이트 수사는 조직원들 체포를 시작으로 검거해야 될 대상이 점점 확대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사이버범죄 수사팀에 근무하면서 근본 없이 허세만 가득하고 예의라고는 전혀 없는 젊은 친구들이 잔뜩 가오만 잡고 다니는 '겉 멋' 든 모습에만 빠져 사는 부류의 인간들을 증오하게 되었습니다.
월 억대의 수익을 찍었다고 한들 모두들 '일직선'에 나란히 포승줄에 묶인 채 2차 조사를 마치고 의정부 지방법원 8호 법정으로 들어갔습니다. 구속영장이 청구되면 영장 실질심사가 이루어지는 의정부 지방법원 8호 법정은 그 아무리 월 수억 원의 수익을 벌었다고 한들 상습 무전취식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피의자, 준 강간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피의자, 음주 교통사고로 구속 영장이 청구된 피의자들과 함께 나란히 법정에서 구속영장 발부를 위한 판사의 신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신 때문에 모두 이렇게 된 건데 보니깐 혼자서 변호사 선임 했구만 그러니깐 당신 혼자 살겠다는 건가요?"
도박사이트 총책임자를 제외한 6명은 포승줄에 묶인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주범은 변호사를 선임해서 그런지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듯 보였습니다.
"왜 본인 혼자만 변호사 선임한 거죠?"
다른 조직원들이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다시 한번 주범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이때 고개를 숙이고 있던 피의자들도 배신당한 것 같아 원망의 눈빛으로 주범을 죽일듯한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조용히 앉아있던 주범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면서 용기 있게 한마디 했습니다.
"제가 선임한 변호사 포기하겠습니다. 사실 와이프가 선임한 겁니다!"
순간 정적만 흐르던 8호 법정에서 저를 포함한 모두들 웃음을 참지 못해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름 도박사이트 운영의 총책임자로서 같은 공범들과 공평하게 법의 심판대에 서겠다는 신성한 의지로 보여질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악질적이고 '겉 멋'만 들어있는 하이에나 같은 놈들만 모여있는 소굴이 바로 도박사이트 조직입니다. 그렇게 멋지게 한 방 날린 듯했지만 이미 선임된 변호사는 먼저 8 호법 정안에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범 피의자는 변호사와 함께 영장 실질 심사를 마쳤습니다.
영장 실질 심사 후 오후 늦게 전원 구속영장이 발부되었고 각 피의자별로 총 4번의 조사를 마지막으로 모두 구속 송치되었습니다.
2017년과 2018년 동안 도박사이트 운영 조직을 수사하면서 2019년 경기북부청에는 도박사이트 전담 수사팀이 출범하게 되었고 현재도 뽑아도 뽑아도 근절되지 않는 불법 도박사이트 운영 조직원들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자청해서 가장 쓰레기 같은 조직에 들어가서 월 1억을 찍을 수 있다는 헛된 상상에 사로잡혀 무덤까지 가지고 갈 범죄 전과자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도박사이트 조직원들이 사용하던 통장을 압수해 도박 베팅한 회원들을 불러서 조사해 보면 도박 중독자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었고, 심지어 한 시골마을의 이웃주민들이 도박사이트 회원으로 가입해 도박 중독자들이 되어 버린 적도 있었습니다.
이런 회원들의 대부분이 지인의 추천으로 게임 정도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고 특히 청소년들은 도박이 아니라 게임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더욱 큰 문제는 불법 도박사이트를 구분하는 교육을 받지 못한 채 군입대를 하게 되고 2019년 4월 군부대에서 휴대전화 반입을 전면 허용하면서 군부대에서도 불법 도박으로 적발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문득 지방청에 발령받고 그만둔 사이버범죄예방교육 DNA가 꿈틀대기 시작하였습니다.
"사이버범죄 예방교육을 해야 되나?"
"하지만 예방교육이 뭘 얼마나 바꾼다고!"
그런데 한 학생이 저에게 한 말이 가슴에 남았습니다.
"친구들도 이거 다 하는데 정말 불법 도박인지 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