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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중현 May 01. 2020

아프지만 상처를 품고 살아가겠습니다.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꼭 말하고 싶습니다.

"민원인분이 한 분 찾아오셨는데 통장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답니다!"

2019년 1월 금요일 오후 2시가 조금 넘은 시간 지방청 민원실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날은 2017년도부터 2년 동안 국내 잠입 중인 해커 조직원들의 중간 연결책(middle-man)을 전북에서 체포해 국내에 엄청나게 큰 조직원들을 거느리고 있는 서남아프리카 출신의 외국인들로 구성된 조직의 실체가 확인되던 수사를 마무리 지으면서 추가로 검찰에 서류를 접수하러 출발하려던 찰나였습니다.

아침 일찍 출근하자마자 검찰청에 압수수색 검증영장 청구서류 접수를 위해 머릿속에 구상해 놓은 시간 스케줄로 움직이고 있던 중 예고 없는 민원실 전화는 업무의 흐름을 끊어버렸습니다.

더군다나 압수수색 검증영장은 제가 보낸 서류를 계속해서 접수받았던 검사실에서 일과 시간 이전에만 접수하면 되지만 방대한 사건 기록을 검토하기 위해서는 늦어도 3시나 4시 이전에 접수시켜야 당일 검토가 되고 그다음 날 법원에 영장이 청구되면 어떤 방식으로 일을 처리해 나갈 건지 구상이 되어 있던 상황에 민원실 전화는 솔직히 짜증이 좀 났었습니다.

"조금 있다 검찰로 출발해야 하는데 민원인분 바로 제 사무실로 올려 보내 주세요!"

전화를 받고 사무실 시계를 쳐다보니 2시 30분이 가까워져 가고 있었고 늦어도 3시 30분 안에는 검찰청에 서류를 접수해야겠다는 시간 계산을 해 두었습니다.


대부분의 민원인들은 사는 곳에 가까운 지구대, 파출소나 경찰서를 방문하기 마련인데 여기 지방경찰청 민원실까지는 접근성이 떨어져 직접 방문하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자가용이 없으면 버스정류장에서도 한 참 걸어야 하는 거리인 데다가 경찰서는 건물로 들어서면 각 부서별 안내 표지판이라도 있지만 지방청은 건물 자체가 크고 들어오기 전부터 직원들의 통제가 심하다 보니 그렇게 쉽게 들어오기가 쉽지 않음에도 간혹 사이버범죄로 인해 방문하시는 분들과 상담한 사례가 몇 번 있었습니다.

한 번은 모자를 눌러쓴 젊은 여성분이 지방청 민원실에서 대기하고 있다는 전화를 받고 상담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힘든 일이 있으신가 봐요?"

민원실 전화를 받고 내려가 보니 모자를 눌러쓴 채 핸드폰만 만지고 앉아 있는 민원인에게 먼저 말을 걸었습니다.

"얼마 전에 옆집에 사는 분이랑 쓰레기 문제 때문에 다툰 적이 있는데 누군가 제 핸드폰에 들어와서 감시하는 것 같습니다!"

아! 핸드폰 해킹이라, 그것도 옆집에 사는 분이 핸드폰을 해킹했다는 민원에 대해서 사이버 수사 방식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이렇게 하면 됩니다.

"우선 누군가 핸드폰을 해킹하였다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줄여서 정통망법이라고 합니다.)에 정당한 권한 없이 타인의 스마트폰에 침입하는 행위도 처벌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방법으로 침입하였는가를 봐야 하는데 지금 쓰고 있는 휴대전화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인지 애플사의 ios 운영체제인지를 봐야 합니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해킹하기 위해서는. apk형식으로 되어 있는 파일 내에 악성코드가 심어져 있는 경우가 있고 아이폰은 해킹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인식이 많은데 아이폰 전용 악성코드도 많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악성코드를 어떤 방법으로 민원인에게 전달하는지를 따져봐야 하는데 랜덤채팅이나 아니면 카카오톡 대화 내용 중 전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든 민원 인분에게 악성코드가 전달되었다고 하더라도 최근 출시된 스마트폰은 악성코드가 포함된 파일들을 금방 탐지해 내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은 민원인에게는 전혀 설득력 없는 외계어일 뿐 사실은 핸드폰 해킹을 넘어선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아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았습니다.

"핸드폰 해킹이라는데 기술적으로 넘어서야 할 단계가 아주 많아서 그렇게 쉽게 해킹되지는 않습니다. 제가 휴대전화를 한번 확인해 봐도 될까요?"

민원인으로부터 넘겨받은 핸드폰으로 스마트폰에 내장되어 있던 자체 백신 프로그램을 돌려보니 아무런 이상 징후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옆 집에 사시는 분께서 제 휴대전화 통화를 엿듣고 있는 것 같아서요!"

이 민원인은 휴대전화 해킹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여자 혼자서 살고 있는 요즘 시대에 각종 사회적 이슈가 터지면서 여러 가지 불안함이 겹쳐있는 상황 같았습니다.

더 얘기를 듣고 싶었지만 그럴수록 제가 해결해 줄 수 없는 영역으로 들어갈 것 같아 휴대전화 내 의심스러운 파일을 걸러내는 몇 가지 절차를 안내해 드리고 사무실로 돌아왔었고 지방청 민원실을 방문한 대부분의 민원인들은 고소장 접수 아니면 이런 식의 상담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이번에 방문한 민원인도 그렇게 심각한 내용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30분 내로 상담을 마칠 생각이었습니다.

민원실에서 5분이면 사무실까지 올라오는데 15분이 지나도 사무실 문을 여는 민원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보통이면 현관 근무자에게 길을 물어 금방 올라올 수 있는데 왜 이렇게 오지 않을까 사무실 밖의 문을 열어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냥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간 건지 확인차 민원실에 전화를 걸려는 순간 사무실 문을 열고 20대 초반의 여성분이 들어오셨습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잔뜩 긴장한 채 조심스레 문을연 민원인은 한눈에 봐도 대학생이란 걸 알 수가 있었습니다.

"학생이시죠?"

자리에 앉아서도 바닥만 쳐다본 채 쉽게 말을 못 하는 것 같아서 사무실 믹스 커피를 타서 우선 마시라고 건네주었습니다.

"커피 식겠어요! 어서 마셔요!"

5분이 지나도록 상담 내용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한 손에 커피를 든 채 바닥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제가 방학 동안 아르바이트를 알아본다고 알바몬에 이력서를 지원했었습니다!"

한 손에 커피를 마시지 않고 여전히 들고 있는 것 같아서 우선 커피를 내려놓도록 하고 계속 대화를 이어 갔습니다.

"전단지 배포 알바 자리에도 지원하고, 아트박스 자리에도 지원했었는데 연락은 안 오고 (주)청수라는 회사에서 연락이 왔었습니다."

학생은 자신의 휴대전화를 보여주며 알바몬 애플리케이션에서 지원한 자신의 지원 상황을 보여 주었습니다.

피해자가 지원한 이력서 현황. 유일하게 (주)청수라는 곳에서 연락이 왔지만 유령 회사였습니다. 출처:박중현


"(주)청수는 뭐하는 회사라고 하던가요?"

이름만으로는 어떤 회사인지 전혀 알 수가 없어서 구체적으로 뭐하는 회사인지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게임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데 게임 아이템을 환전해 주는 회사라고 설명했습니다.(주)아이템베이, (주)아이템마니아에서 하청을 받은 회사인데 제가 일하게 되면 회사에서 고객명단을 넘겨받아서 고객 관리하고 댓글만 달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바로 일하기로 했어요?"

"네, 일하고 싶다고 하니깐 사원 등록하고 월급 통장을 회사 시스템에 등록해야 된다고 하면서 신분증하고 통장 사본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보내줬어요?"

여기서 취업이 이루어지기 전에 통장과 신분증을 요구하는 건 모두 불법이란 걸 알아야 하는데 이 학생은 전혀 의심을 하지 못했고, 만약 통장과 신분증을 퀵 배달로 보내달라고 했으면 의심했겠지만 사진을 찍어서 보내 달라는 말에 의심을 할 수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통장 하고 신분증을 찍어서 보내준 뒤 어떻게 되었어요?"

"10분 정도 지나서 모르는 사람한테도 100만 원씩 10명의 돈이 들어왔습니다. 갑자기 겁이 나서 (주)청수 회사 관계자분에게 무슨 돈이냐고 물어보니깐, 회사가 관리하는 법인 계좌로 이체를 해주면 이체해준 돈의 10%가 수수료로 저에게 지급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까지 듣는 순간 큰일이다 싶어 시계를 쳐다보니 시간은 이미 3시를 넘어가고 있어 아무래도 제시간에 맞춰 검찰청에 서류를 접수하기는 늦을 것 같아 이 학생을 본격적으로 상담해 주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혹시 돈을 이체해 주었나요?"

"네"

크게 한 숨이 나오긴 했지만 대학교 2학년생이 이게 범죄에 연루된다라는 걸 전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란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체한 후에 어떻게 되던가요?"

"(주)청수 관계자분은 전화를 안 받고 그날 저녁 갑자기 제 통장이 사고 계좌라며 지급정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1주일 뒤에 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이라는 곳에서 출석 요구서가 집으로 날라 왔습니다."

이 학생은 오늘 발생한 일이 아니라 이미 1주일 전에 발생한 일로 인해 고민 끝에 여기를 방문한 것 같았습니다.

"어떤 상황인지는 알 것 같은데 우선 부모님한테는 이 상황을 말씀드렸어요?"

전자금융거래법 위반과 사기 범죄로 조사를 받아야 할 가능성이 커 보여 경찰서에 가서 조사받고 필요하면 검찰에도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하는 엄청난 무게를 견딜 수가 없는 듯해 부모님에게 먼저 알려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아직 부모님에게는 말씀을 못 드리고 출석요구서를 받자마자 시내에 있는 무료법률공단에 찾아갔는데 대포통장으로 처벌받고 사기의 공범으로 처벌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통장 정보를 정당한 이유 없이 타인에게 양도하게 되면 대포통장을 근절시키기 위한 전자금융거래법 위반과 더군다나 학생의 통장에 입금된 타인의 돈을 (주)청수 회사 관계자의 지시대로 다른 통장으로 이체해 버렸으니 (주)청수 관계자와 함께 사기의 공범이 되어 버린 것으로 무료 상담 변호사의 말이 맞았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학생은 전과가 없을 거고 이런 시나리오는 대포통장을 확보하기 위한 범죄자들의 치밀한 범죄 수법에 본인도 속아서 그런 거니깐 무조건 처벌이 안 될 수도 있어요. 제일 중요한 건 부모님에게 이 사실을 반드시 알려야 되고 앞으로 조사를 위해 몇 가지 서류를 준비해야 합니다."

(주)청수 관계자와 주고받은 대화 내용은 본인이 혐의가 없음을 밝히는데 굉장히 중요한 단서이니 모두 캡처.

(주)청수 관계자와 통화 녹음 파일 있으면 반드시 보관.

알바몬에 올라온 (주)청수 관계자가 올려놓은 회사 정보.

모르는 사람 돈을 이체한 뒤 통장 분실 신고등 본인이 취한 조치 있으면 은행 콜센터를 통해 확보할 것.

본인 통장에 이체된 돈을 다른 계좌로 이체하였다면 은행을 방문해 타인에게 이체한 계좌정보가 모두 나오게 경찰서 신고를 위해 필요하다고 해서 출력해 놓을 것 등 학생의 행동 하나하나를 지적하면서 왜 이런 행동이 위험한지 설명해 주었습니다.

최종적으로 혐의 없음으로 결론 날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부모님이나 가까운 친구에게 제일 먼저 연락해 경찰서 조사에 함께 동행하는 것도 도움이 될 거다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더 말하지 못한 속사정이 있는 건지 다시 바닥을 쳐다본 채 한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충분히 설명을 한 것 같긴 한데 너무 어려운 법률 용어로 알려 준 것 같아 제 책상에 있던 프린터에서 A4용지를 하나 꺼내 1시간 넘도록 설명한 내용을 정리해 어떤 서류를 준비해야 할지 적어 주었습니다.

"031-961-XXXX. 제 사무실 직통 전화번호이니깐 혹시 서류 준비하다가 어려운 거 있으면 저에게 전화해서 물어봐도 돼요."

공부만 열심히 하다 방학 때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려고 접속한 알바몬에 이런 취업을 가장한 대포통장을 모집할 광고가 뜰 거라는 걸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겁니다. 더군다나 대한민국에서 이름값이 높은 알바몬에서 보이스 피싱 조직원들이 대포통장을 구한다는 광고를 올릴 거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도박사이트 운영자들을 검거하면서 대포통장 수급이 원활하지 않자 이렇게 알바몬이나 알바천국과 같은 곳에 유한회사와 같은 유령 법인 통장을 개설해 정상적인 구인 구직 광고를 올리고 이런 방식으로 대학생들과 청소년들의 통장을 모집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알바몬과 알바천국과 같은 사이트를 범죄 방조 혐의로 처벌할 수도 없고 만약 이런 허위의 정보를 필터링하지 못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면 우리나라에서 중고나라 카페 운영자는 구속되어야 하고 네이버는 폐쇄되어야 당연합니다.

그렇게 2시간 가까운 상담을 마치고 아쉬운 듯했지만 여학생은 식어버린 커피를 가져가서 자기가 버리겠다며 들고 나갔습니다.

문을 닫고 나가는 모습을 보고 시계를 보니 그래도 검사실에 접수시킬 수 있는 여유가 남은 것 같아 곧바로 의정부 지방검찰청으로 서류를 접수시키기 위해 서류를 들고 사무실을 급하게 나왔습니다.


1주일 뒤, 월요일 아침이었습니다.

업무 시작을 위해 믹스 커피를 마시고 경찰 내부망을 보고 있던 중 제 자리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박중현 경사님 맞으신가요?"

50대 초반으로 느껴지는 남자의 목소리였습니다.

"네 접니다. 누구시죠?"

월요일 아침 사이버 민원인 전화인 줄 알고 전화를 받았습니다.

"혹시 000 학생 기억나시는가요?"

누구인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았고 민원인들의 대부분은 이름을 확인하지 않고 민원 상담으로만 끝내는 경우가 많아 누구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대학교 2학년생인데 아마 경사님을 찾아간 것 같네요!"

자신을 학생의 아버지라고 신원을 밝힌 남성분으로부터 외모와 인상착의 설명을 들으니 누구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저는 그 학생의 이름을 물어보지 못했고 저에게는 그냥 민원인이었습니다.

 "아! 네, 기억납니다. 그때 알바 자리 알아보던 중 통장에 문제가 생겨서 사무실로 찾아왔길래 어떤 서류가 필요한지 제가 설명해 주면서 메모지로 제 이름하고 연락처를 적어 드렸던 것 같습니다. 경찰서에서 조사는 받고 왔는가요?"

그런데 갑자기 남성분은 말없이 흐느끼면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순간 저도 등에서 식은땀이 나면서 무서운 느낌이 들어 전화기를 들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애가 그날 형사님 하고 상담하고 나서 아파트에서 뛰어내렸습니다!"

저도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목이 타는 듯했지만 침착하게 그날 자세한 상황을 설명드렸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날 제가 더 오랫동안 상담하고 더 친절하게 상담했어야 했는데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아닙니다. 친절하게 상담 해 주신 것 같은데, 장례 치르고 나서 딸애 유품 정리하다가 형사님 메모지가 발견되어서 전화드린 겁니다. 그리고 지금 제 딸애 변사 사건을 처리하고 있는 경찰서 형사팀 담당자에게 전화 줘서 상황 설명 좀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아버지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멈추지 못하고 우시면서 끝까지 감사하다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습니다.

아침 팀 회의고 뭐고 저도 나무 당황스럽고 눈물이 날 것 같아 바로 여학생의 변사 사건을 처리하고 있는 관할 경찰서 형사팀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투신 직전 저를 찾아오게 된 경위, 상담하면서 제시한 자료 등을 수사보고서로 작성할 수 있도록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상황을 정리하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은 채 아버님에게 전화를 드렸지만 고맙다는 말과 함께 짧은 통화를 마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이 학생은 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갔습니다.

"영장 접수하는 마음이 촉박해 더 친절하게 상담하지 못한 건가?"

"커피라도 마시며 더 친절하게 상담할걸 왜 그렇게 일찍 사무실을 나간 걸까?"

"사무실 전화번호 말고 힘들 때 전화하라고 핸드폰 번호라도 알려 줬어야 했는데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그날 마지막으로 상담하면서 커피잔을 손에 든 채 바닥만 쳐다보던 얼굴이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이후 전화로 걸려오거나 사무실로 방문한 민원인과의 상담이 제가 불만족스러우면 예민해지고 가족들에게 화를 내고 있었습니다.

그때 이 말을 못 해 준 것 같아 너무 후회가 됩니다.

"학생은 아무 잘못 없어!"

"이런 시나리오로 거짓말을 치는데 그 누구라도 당할 수밖에 없어!"

"처벌받아야 하는 건 학생이 아니라 그 범죄자들이야!"


제가 혼자 짊어지고 가야 할 문제이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출근하기가 싫었고 경찰을 그만두고 싶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겠지만 그때의 상처는 평생 제가 가지고 살아야 할 트라우마가 되었습니다.

"왜 항상 범죄 피해자들은 이런 게 범죄라는 걸 모르고 피해는 항상 피해자들에게만 돌아올까?"

늘 겪는 일이었지만 그날 다 전해 듣지 못한 여학생의 얼굴이 매일 떠올라 괴로웠습니다.

그래도 시간은 흘렀고 그해 저희 지방청 사이버수사대에는 대규모 조직 개편이 이루어졌고 특히 사이버범죄 예방교육 전담 부서를 만들라는 지시의 공문이 내려왔습니다.

갈수록 늘어나는 사이버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사이버범죄 수사대의 규모를 더욱 늘리고 사이버범죄 예방 교육 전담자 1명을 선발하게 되었습니다.

"2019년은 사이버범죄 예방교육에만 전념해 보자!"

그렇게 잠시 수사활동은 접고 사이버범죄 예방교육 전담 부서에 자원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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