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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중현 Apr 05. 2020

도박사이트 운영자들과의 전쟁

세상에서 가장 악질적인 인간들이 모여있는 도박사이트 운영자들.

저녁 6시가 가까워지자 체포 현장에서 먼저 출발한 팀원들이 속속 사무실로 도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각 팀별로 체포한 피의자들은 모두 포승줄로 묶여 있었고 체포 현장과 도박사이트 운영장에서 압수한 컴퓨터 본체와 각종 저장장치들은 택배기사님들이 대량의 물건을 나를 때 사용하는 카트에 실려 사무실로 들어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줄줄이 포승줄에 묶여 사무실로 압송된 피의자들은 하나같이 말없이 고개를 숙인 채 바닥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체포되고 나서  한 끼도 밥을 못 멋었을건데 저녁 시간에 도착해 본격적으로 조사가 시작되면 제대로 밥 먹을 시간도 없을 것 같아 저녁을 먹고 조사를 시작할 건지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저녁 먹고 조사를 시작하시죠?”

피의자들 걱정이 되서가 아니라 팀원들이 밥을 못 먹었을 같아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중국요리를 주문해 놓고 본격적으로 조사 준비를 시작하였습니다.

각 팀별로 체포해온 피의자 4명을 다른 사무실로 데리고 가 분리시켜 나눠서 조사를 시작하고 나머지 인원은 압수한 컴퓨터와 저장장치들을 분류해 곧바로 압수창고로 입고할 물건들과 디지털 포렌식에 분석 의뢰할 물건들을 분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체포해온 피의자들 중 이번에 체포한 도박사이트 총책임자의 공범에 대한 신문을 맡기로 하고 재빨리 역할 분담에 들어갔습니다.

체포 현장에 나가지도 않은 상태에서 현장 분위기를 전혀 알 수 없었고 또한 종일 사무실에서만 대기하고 있다가 막 처음 대면하게 된 피의자를 대상으로 조서를 작성하는 게 쉽지 않지만 그만큼 사전 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나머지 팀이 현장에서 체포와 압수수색이 이루어지고 있을 때 저는 미리 이번 사건에 대한 전체적인 범죄사실과 체포 후 저녁에 사무실로 데리고 올 피의자들에 대한 각 역할별로 미리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미리 각 피의자별로 도박사이트 운영에 가담한 범죄사실을 입증하기 위한 신문조서 내용도 구상해 놓은 상황이라 크게 두려움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도박사이트 운영자들은 이미 경찰과 검찰의 조사에 도가 튼 ‘빠꿈이’들이라 신문하는 형사와의 기싸움에서 올라서는 경향이 다분합니다. 뿐만 아니라 형사들의 말투 하나하나, 행동 하나하나 심지어 옆 팀에서 조사를 하는 내용 모든 것도 놓치지 않고 저장해 놓았다가 물고 늘어지는 하이에나 같은 놈들이기에 조사하는 동안 긴장을 놓으면 안 됩니다.

한 마디로 도박사이트 운영자들은 대한민국에서 ‘인권'을 가장 잘 챙겨 먹는 법을 아는 놈들이기에 무리한 조사는 자칫 사건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도박사이트 총 설계자와 처음 만나게 된 경위. 언제 어디서 도박사이트 운영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처음 도박사이트 운영할 때 사이트는 최초 설계한 것인지 만일 최초 설계를 한 사이트라면 그 설계자는 누구인지. 기존에 사이트를 넘겨받은 것이라면 누구로부터 넘겨받은 것인지. 도박사이트 구성원은 어떻게 되는지. 구성원들은 어떤 방법으로 모집한 것인지. 도박사이트 운영자들의 근무 체계는 어떤지. 도박 사이트 수익 구조는 어떻게 되는지 등 하나의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총책임자부터 말단 직원들까지 역할별로 상세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체포된 피의자들 별로 역할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면 그 역할별로 증거들이 확보되어야 하는데 그 증거를 완성시켜주는 단계가 디지털 포렌식 수사입니다.

사이버범죄 수사에 있어서 디지털 포렌식(digital forensic:디지털 법의학)은 사건의 승패를 가리는 아주 중요한 절차로서 체포 현장에서부터 디지털 포렌식 절차를 반드시 지키면서 각 피의자들에게도 디지털 포렌식에 대한 절차를 알려 줘야만 최종적으로 증거물로 인정이 됩니다.

체포 현장에서 압수수색. 인권 수호. 디지털 포렌식 절차 준수 거기다 요즘 피의자들은 친절함까지 원하는 서비스를 요구하다 보니 하나하나 다 지켜주면서 최종 결과는 ‘구속’이 될 수 있도록 유기적으로 사건을 완성시켜야 합니다. 여기서 하나라도 어긋나기 시작하면 사건 전체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각 팀별로 역할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도박사이트 운영 사무실에서 압수한 물건들. 디지털 포렌식을 통해 수만 건의 입금 내역이 발견되었습니다. 출처:박중현


지역 부동산 사무실을 운영하던 피의자는 옆 사무실에서 다른 부동산을 운영하던 총책임자가 접근하면서 제안을 하였다고 합니다.

“야! 부동산으로 푼돈 벌어봐야 얼마나 버는데? 나하고 함께 사업이나 하자!”  

당시 부동산 사무실 운영에 대한 회의가 들 무렵이라 총책임자의 제안대로 부동산을 접고 인근 오피스텔을 임대해 컴퓨터와 모니터 등을 들여 처음 도박사이트 운영을 시작하게 됩니다.

“누군가 운영하던 도박 사이트를 넘겨받았는데 회원들도 함께 넘겨받아 어느 정도 수입은 있었습니다.”

느정도 수입은 있었지만 화원들을 더 모으기 위해 마을 지인들을 시작으로 추가로 회원을 모집하고 도박 전문 홍보사이트에도 광고를 띄우면서 사업을 확장하게 되고 추가 근무자들도 모집하게 됩니다.

그렇게 사업이 커지면서 오피스텔에서 월 250만 원의 대형 아파트 펜트하우스로 도박사이트 사무실을 확장 이전하고 운영자들은 벤츠를 몰면서 골프를 즐기는 일명 한탕주의 삶을 즐기게 됩니다.

팀원들이 체포한 현장에서는 많은 현금 뭉치와 해외 달러들이 상당히 발견되었고 전부 압수를 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활이 영원히 유지될 거라고는 착각한 건 아니죠? 언젠가는 형사들과 만나게 될 거라고는 예상이 안되던가요?”

새벽 시간이 다 되어서야 1차 조사 마무리 후 피의자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예 처음에는 월 수입 5천을 찍은 적도 있는데 요즘에는 도박 사이트가 많이 생겨서 수입도 줄었고, 안 그래도 늘 불안한 생활이라 접으려고 했었습니다.”

접으려면 진작에 접었겠지만 4년 동안 도박사이트를 운영하다 저희 팀에게 체포된 점으로 볼 때 접으려고 했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습니다.


새벽 1시가 넘어서 다른 팀에서도 모두 조사를 마치고 경찰서 유치장에 모두 입감 시켜 놓은 뒤에야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였습니다.

“내일은 구속영장 청구 서류 만들어야 하니깐 잠깐 눈만 붙이고 다시 보자고!”

정말 집에서 잠깐 눈만 붙이고 출근한 팀원들은 아침 커피도 마실 시간 없이 어제 조사한 서류들을 한 곳으로 취합해  각 피의자별로 구속시켜야 할 서류들을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한 명은 구속영장 서류를 만들고, 한 명은 서류를 취합하고, 한 명은 도박사이트 운영기간 동안 벌어들인 수익을 계산하고 그리고 저는 체포된 피의자들의 역할을 정리하였습니다.

연천에 있을 때는 손도 댈 수 없었던 사건을 하루 만에 도박사이트 운영자들을 구속시키기 위한 서류를 완성시키고 있었습니다.

구속영장 서류 준비로 정신없는 가운데 사무실로 구속된 피의자의 부인이 예고 없이 방문하였습니다.

“지금 000 피의자는 경찰서 유치장에 입감 되어 있는데 만나려면 그쪽 경찰서로 가 보셔야 합니다!”

피의자의 부인은 혼자 오기가 두려웠는지 지인과 함께 사무실을 방문하였습니다.

“변호사는 선임하셨는가요?”

얼굴에 걱정이 많아 보여 잠시 상황을 설명드릴 것 같아 팀장님이 대신 피의자의 부인을 상담하였습니다.  

“예 벤츠 차량을 바로 팔라고 해서 어떻게 돈을 마련해 선임하였습니다.”

도박사이트 운영하면서 월 수입 몇천만 원을 찍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벤츠를 몰고 온갖 허세를 다 떨었겠지만 결과는 벤츠를 매각한 돈으로 변호사를 선임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사건을 시작으로 몇 차례 더 큰 규모의 도박사이트 조직원들을 체포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많은 도박사이트 운영자들이 결혼을 해서 자녀들까지 두고 있는 한 가족의 가장이 많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가족이 있음에도 도박사이트 운영자들은 ‘내연녀’들과 함께 도박으로 벌어들인 돈을 마카오로 함께 넘어가 도박으로 벌어들은 돈을 도박으로 탕진하는 말 그대로 제대로 된 인생한방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이 피의자들의 인생은 비참해 질대로 비참해질 일만 남았습니다. 사회는 이 피의자들을 더 이상 받아 줄 곳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도박사이트 세계에 맛을 들인 피의자들은 필리핀. 태국. 베트남으로 넘어가 해외에서 도박 사이트 조직을 차리거나 가담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놀라운 건 도박사이트 조직원들의 나이가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대의 한참 젊은 친구들이었습니다.   


신속하게 완성된 서류 접수를 위해 의정부 지방검찰청 사건과로 서류 뭉치를 들고 향했습니다. 연천에 있을 때는 편도 1시간 거리를 그것도 혼자 서류를 들고 차를 내리밟아야 했지만 이제는 채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팀원들과 함께 구속영장 서류를 접수하러 가는 길은 말 그대로 드라이브를 즐기는 수준이었습니다.

구속영장 접수 후 다시 사무실로 복귀하면서 항상 들르는 맥 드라이브로 차를 돌려 시원한 음료수 한잔씩 마셨습니다.

지방청에 와서 아침 일찍 체포하러 나갈 때는 맥모닝으로 아침을 때우고 오후에 나갈 때는 청포도 칠러를 한잔씩 들고 갑니다.

그리고 구속영장 서류 접수 후나 체포 직전에는 꼭 부대찌개를 먹어줘야 일이 잘 풀리는 의도하지 않은 습관이 생겼습니다.

구속영장 접수 후 늦은 저녁 의정부 지방검찰청으로부터 체포한 피의자들 전원에 대한 구속영장 실질심사가 잡혔습니다.

평일은 오전 10시 30에 의정부 지방법원에서 구속영장 실질 심사가 진행되기에 다음날 일찍 출근해 유치장에 입감 되어 있던 피의자들을 모두 꺼내 승합차에 탑승시키고 의정부 지방법원으로 출발하였습니다.

개인별로 포승줄을 묶고 또 한 명 한 명씩 도주 방지를 위해 단체로 포승줄로 줄줄이 묶어 법정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영장 실질심사를 마친 당일 저녁 5시경이 되어서 전원 구속영장이 발부가 되었습니다.

팀 단위로 시작한 도박사이트 운영자들에 대한 수사는 3개월 만에 조직원 전부를 소탕하였습니다.

도박사이트를 단속하고 나면 반드시 국민들에게 메시지를 알려 드려야 하기 때문에 보도자료도 만들어서 전국의 방송사에게 배포하였습니다.


도박사이트 운영자들 구속 후 국민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발표된 보도자료. 이 보도자료 편집도 며칠이 걸리는 힘든 작업입니다.  출처:연합뉴스


이제 도박사이트 운영자들을 체포하면서 확보한 도박계좌에서 발견된 수만 건의 계좌 거래내역 분석에 들어갔습니다.

불법 사설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는 계좌에 돈을 입금해서 스포츠 경기 결과와 승률에 따라 돈을 환전받는 행위 자체도 불법이기 때문에 도박을 베팅한 회원들 중 ‘도박’으로 입건해서 조사를 해야 될 피의자들에 대하여 출석 요구서를 발송하였습니다. 출석 요구서 발송 후 4일가량 지나자 사무실로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무슨 이유 때문에 출석요구서 날아간 거 아시죠? 사무실에 조사받으러 오셔야 합니다.”

일자를 정해 사무실로 출석한 회원들 중에는 자영업자. 회사원들이 많았고 대학생들도 있었으며 심지어 고등학생들도 나왔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건 체포한 피의자들의 같은 동네 친구들도 꽤 많았습니다.

한 피의자의 친구는 4년 동안 베팅한 거래 내역이 발견되어 물어보았습니다.

“지금 본인의 상태가 도박 중독으로 보이는데 맞는가요?”

몇 년 동안 베팅하면서 도박 입금 금액도 점점 증가하는 현상으로 볼 때 도박 중독이 확실했습니다.

“네 제가 생각해도 도박중독입니다!”

구속된 피의자들은 벤츠 차량을 위해 같은 회원으로 끌어들인 친구들을 도박 중독자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출석요구서를 받은 한 대학생은 저에게 오히려 물어보았습니다.

“저도 그렇고 제 친구들도 그렇고 많이들 하는데 이게 불법인가요?”

“그럼 이 사이트가 불법 사이트인 줄 몰랐다는 말이네요?”

“네 친구들도 다 게임사이트로 알고 있었습니다."

현실은 도박을 게임으로 알고 있다는 게 너무 놀라웠습니다.

연천이었다면 당장 사이버범죄 예방교육을 나갔을 건데 여기서는 예방교육 따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잡아 족치는 게 더 중요합니다.


이전 04화 토쟁이들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토사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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