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7년 차 사이버범죄 예방교육 업무를 병행하면서 아직까지 이 질문에 대한 데이터를 결국 내놓지 못했습니다.
경찰청 통계 2017년 전체 사이버범죄 발생건수 131,734건에서 2018년 149,604건으로 그리고 2019년 누적 사이버범죄 발생건수 180,499건으로 집계되었고 2020년 상반기에만 누적 접수된 사이버범죄 건수 추이로 볼 때 2020년 전체 사이버범죄 발생건수는 2019년 대비 늘어날 것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결국 제가 이 활동을 계속 유지해야 할 내적 동기가 점점 줄어들고 있고 그렇게 함께 시작한 동료들도 무거운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본연의 업무로 돌아갔습니다.
기본적인 업무에 시간과 노력을 더 할애해 사이버범죄 예방교육에 집중한 만큼 다시 되돌려 놓으면 되지만 저에게는 이루지 못한 무언가가 남아 있었습니다.
매년 초 정기 인사 발령 직후 지방경찰청에서 '올해도 사이버범죄 예방강사를 유지할 건가요?'라는 짧은 내부 메신저를 받을 때면 분명 이 길은 경찰 조직에서 주목을 받지 못하고 무서울 정도로 차가운 시선을 받겠지만 내가 상상했던 몇 가지 일은 이루어 놓고 본연의 업무로 돌아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매년 이런 다짐을 흔들고 무너지게 하는 시련들은 꼭 한꺼번에 찾아왔습니다.
"아니 그 직원은 기본 업무를 하지도 않고 출장을 그렇게 자주 나가는 건가?"
사이버범죄 예방교육은 기본 업무도 그리고 경찰의 업무도 아니라는 지휘관의 생각을 바꿀 수 없는 위치에서는 당연히 소극적일 수밖에 없고 내년에는 그만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더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진급 시험과 승진의 전쟁에서 이미 오래전 포기를 한 상태여서 계급의 관점에서 직장 생활을 바라본 저에게는 '경찰생활은 군 복무와 같다!'라는 직업 철학이 생겼습니다.
어차피 제대하기 전까지 완장을 한 번은 차고 제대하니깐 경찰 생활도 하다 못해 팀장은 한 번 정도는 하고 퇴직하는 거 계급과 승진에 있어서는 경쟁에 뒤쳐질걸 받아들이다 보니 양보하는 데 있어서는 전혀 불편함이 없어졌습니다. 왜냐하면 계급과 승진에서 양보라는 카드를 꺼내면 가장 가까운 팀원들을 내 편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에 있어서는 적어도 비난을 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처음 군인들 앞에서 시작한 사이버범죄 예방교육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학교 선생님. 지자체 공무원. 대학교 연구기관. 복지회관. 다문화 가족. 탈북민. 기업체 임원들. 회사원들 대상으로 영역이 넓어지면서 대상에 따른 사이버범죄 예방교육의 수요도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군부대에서는 인터넷 도박과 디지털 성범죄 예방교육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 주기를 원했고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은 인터넷 명예훼손을,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에게는 인터넷 사기처럼 금융사기와 관련된 예방교육을 더 선호하였습니다.
하지만 대상별 연령대별 성별로 다양한 사이버범죄 예방교육을 요구하더라도 제가 7년간 현장에서 격은 사례를 풀어내고 그 사례 안에서 발견한 예방법에는 모두들 공감해 주었습니다.
'아! 스토리 텔링이다!'
다른 사람들과의 차별화된 무기라고 한다면 형사들의 부심 바로 '수사보고서'에 잠들어 있는 스토리 텔링을 꺼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동안 사이버범죄 예방교육을 꼭 하고 싶었던 대상이었던 '학부모'들에게 글로써 마지막 사이버범죄 예방교육을 하고 싶었습니다.
문제는 사건만 잘 풀리면 글자크기 12에 신명조체로 하루에도 수십 장씩 쳐내던 '수사보고서'와 달리 읽히는 글의 조건은 냉정할 정도로 차가웠습니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사이버범죄 예방교육이라고 생각하니 주말에 쉬는 날에 늘어져서 티브이만 보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해 보여 글을 써야 하는 동기를 줄 누군가가 필요했습니다. 모르면 무조건 찾아가서 물어보는 업무 습관 때문에 작가로서 성공한 사람들을 찾아가서 물어보려고 하던 중에 마침 2019.10.12 - 10.13일간 신촌에서 스타트업 거리축제 IF 2019 페스티벌에서 다음카카오 브런치 작가들과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신촌에서 열린 스타트업 거리축제 IF 2019 행사중 다음 카카오 브런치 행사 참관 당시
처음 강연자로 팔리는 나를 만들어 드립니다의 작가 박창선씨와 두번째 강연자로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의 저자 서매리씨가 나왔습니다.
그날 두 브런치 작가를 처음 보게 되었지만 강연이 끝나고 차마 두 작가분들에게 질문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브런치에서 엄청난 스타 작가들인 줄은 나중에 알게 되었고 그날 두 사람이 알려주는 글 쓰기의 노하우는 어떻게 흉내도 내기 어려울 정도의 내공이 쌓여야만 글로써 담아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냥 깔끔하게 포기!"
그렇게 형사는 작가가 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며칠을 보내다가 작가의 자격에 대해 고민해 보았습니다.
결정적으로 하나의 사건을 처리할 때마다 사이버범죄 예방교육을 위해 만들어놓은 사건 서류들에 숨어있던 저의 부심이 글을 쓰면 어느 정도 차별화된 브랜드는 되어 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좌측)체포영장 피의자로부터 압수한 증거물(총 20TB)과 1년간 수사기록(우측)
매 사건마다 발견되는 수십테라바이트의 증거물을 분석하면서 작성한 수사보고서 그리고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2년 넘게 사이버 공간에서 신분을 세탁해 숨어있던 피의자들을 체포하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수집하고 기록한 수사보고서에 스토리 텔링을 더해 글을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고 사이버범죄 예방 교육을 그만두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기에는 그동안 쏟아부은 저의 인생이 그냥 평범하게 끝날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사이버범죄 예방교육이 왜 필요한지를 알리기 위해 글을 연재하기 시작하면서 응답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확실히 한 편의 글이 아니라 머릿속에 그렸던 순간의 기억들을 수사보고서와 함께 스토리 텔링으로 풀어내니 제 글에서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울림이 전해졌던 것 같습니다.
다음 브런치에 노출된 경찰서에서의 마지막 사이버범죄 예방교육(좌측), 글 당일날 순간 조회수 3만 회를 돌파한 검거한 중신은 이번에도 2대였습니다(중간), 브런치 북에도 소개된 사이버범죄의 메타데이터. 중독 편(우측)
사실 정말 친한 동료들과 금요일 저녁 술자리에서 했던 것처럼 더 많은 얘기를 담아내고 싶었지만 형사는 수사 기법을 노출해서는 안되고 피의사실을 공표해서는 더더욱 안 되기 때문에 최대한 절제하면서 당시 사건을 처리할 때의 기억을 수사보고서로 떠올리면서 연재하고 있습니다.
그 울림이 컸는지 이번에 전혀 색다른 기회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오로지 브런치에서 시작해서 브런치를 통해서 만들어진 기회다 보니 알려야 할 것 같아 이렇게 연재하던 주제에서 벗어나 나에게 주는 동기부여의 페이지로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사이버범죄라는 주제로 책을 출간한다면 수사보고서와 머릿속에만 그려 놓았던 주제들과 내용들을 끄집어낼 수 있는 기회가 온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을 쪼개어 쓰고 더 많이 고민해야겠지만 2014년 이메일 주소 하나만 가지고 458일째 사건을 파고들었던 그때의 마음으로 돌아가 보려고 합니다.
정말 외롭고 힘들었던 시간이었지만 혼자서 파고드는 걸 워낙 좋아하고 몸에 익숙해지다 보니 스스로 만족할만한 결과물로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아동 성착취 영상물 100일간의 집중 단속 기간 중 발견한 사실과 2017년과 2018년 2년 동안 매달린 국내 잠입 중인 해커 조직원들을 체포하면서 발견한 사이버범죄의 메타데이터:디지털 성. 익명(anonymous)에 대한 글도 틈틈이 연재해 저의 사이버범죄 예방교육을 이어 가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