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번 출간해본 적도 없이 오로지 동료 선배의 추천으로 시작한 브런치가 시작한 지도 1년이 다 돼 갑니다.
브런치 심사에 통과만 된다면 많은 분들이 처음 제가 다짐했던 것처럼 1년이면 자기 이름으로 책 한 권 정도는 출간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구독자 수도 늘어나면서 작가로서 네임 밸류가 상승 곡성을 탈 거라고 기대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Mind Note’에다가 큰 제목을 정하고 타이틀을 맛깔나게 할 수 있는 번뜩이는 문구도 정리하면서(지금도 이 방식은 계속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생각의 가지 치기를 이어 가면서 남는 시간은 오로지 여기에만 투자했습니다. 그래도 작가로 선정되고 나서 나와의 약속은 5개월까지는 그럭저럭 잘 지켜왔던 것 같습니다. 조회수가 생각보다 많이 안 나올 때면 ‘읽히는 글’로서는 영 아닌가 보다는 생각에도 사로잡혔다가 가끔 다음에도 노출되기도 하고 독자분들로부터 피드백 메일을 받을 때면 하락하는 자신감을 다시 끌어올리곤 했습니다.
5개월이 지나서부터는 1주일에 한 편은 아니더라도 1달에 1-2편은 반드시 업로드 하자는 다짐도 했었지만 한번 미뤄지기 시작하면 포물선을 그리던 자신감만큼 컴퓨터 앞에 앉았다가 지웠다가를 반복하고 브런치에도 잘 안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직장을 다니고 있으니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위로할 수도 있지만 직장인임에도 브런치를 하고 싶었던 나만의 솔직함이 부족했던 게 큰 이유였습니다. 더군다나 경찰은 드러내고 싶은 것보다 드러내면 안 되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혹여나 같은 동료들이 내가 쓴 글을 보게 될까 봐 걱정도 많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직장의 영업 비밀, 업계의 관행과 부조리를 브런치를 통해서 폭로해 버리겠다는 시나리오는 시작할 때부터 계산해 두지 않았습니다.
누군들 직장 생활하면서 자신에 대한 나쁜 소문을 퍼트리고 계급이 높으면 자격도 높은 줄만 아는 사람들의 민낯을 드러내서 격하게 까 내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까요? 저 또한 같은 동료들로부터 받은 상처는 지금도 가끔씩 나타나 저를 괴롭히고 아마 평생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직에 있으면서 부당함에 목소리를 높이고 부조리에 반기를 들면서 적어도 내가 근무하던 부서에서부터 아닌걸 아니다고 표현할 줄 아는 조직원이었다면 같은 조직에 있는 동료들이 제가 쓴 글을 읽더라도 떳떳하겠지만 저 또한 조직 생활에 순응하고 겸손하고 참는 게 생존기술의 정석임을 알게 되다 보니 브런치를 시작하면서부터 ‘투쟁’이라는 좌표는 설정해 두지 않았습니다.
형사로서 삶의 변화는 브런치를 시작하는 시점부터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부터 조금씩 변화가 오기 시작했고 1년 차에 접어들면서 의외로 많은 ‘삶의 변화’도 가져왔습니다. 전혀 만난 적이 없는 직장 동료로부터 ‘글 잘 보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올려 주세요.’라는 연락을 받고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어 ‘죄송합니다. 혼자 쓰는 일기 같은 내용이라 그만둘까라도 생각 중입니다.’라는 말에 ‘아닙니다. 계속해서 읽고 싶어요.’라는 답변에 내려가던 자신감이 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브런치를 보고 인터넷 도박중독에 가족 모두가 힘들다면서 도움을 받고 싶다는 연락도 오고 교육청으로부터 선생님들 대상 '청소년 사이버범죄 개입 역량 강화’라는 온라인 강의도 진행했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여름 경북 지역 라디오 방송일정이 잡혀 있어 출장을 가던 중에 출판사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을 받게 되었습니다. 출간 경험도 아예 없고 더군다나 글쓰기 수업 한 번 수강해보지 않았는데 갑자기 출판사로부터 연락을 받으니 당황스럽기도 하고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급하게 브런치를 검색해 출간 기획서를 만들고 어떤 내용으로 글을 쓸 건지를 준비해 관계자분이랑 첫 미팅이 이루어졌습니다.
출판사에서는 제가 쓴 글을 꼼꼼히 보셨고 ‘사이버범죄’에 대해서 제가 외치고 싶었던 울림을 담아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가능할까?’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것도 보통일이 아닌데 과연 해 낼 수 있을까?’
‘사이버범죄는 자기가 피해를 당하지 않는 이상 관심이 없을 건데 과연 내가 쓴 글을 볼까?’
출판사 관계자분과의 첫 미팅 때 ‘브런치 글을 보고 담고 싶은 얘기가 많으실 것 같다.’라는 격려에 기분은 좋았지만 ‘좀 더 자신감을 가지셔야 한다.’라는 충고도 주셨습니다.
출판사와의 미팅 이후 본격적으로 준비를 시작하면서 저에게는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변화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좀 더 솔직해져 보자!’
그동안 브런치에 연재했던 글에서 더 깊이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체포영장을 받아 가족도 몰랐던 혼자만의 공간에서 성착취 영상물을 제작 보관하고 있던 피의자를 체포하는 사례는 형사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사례가 되겠지만 체포 직후 모든 걸 체념하고 입에서 쏟아내는 진실한 자백을 들려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사건을 처리하면서 그때 느꼈던 감정과 말하고 싶었던 울림을 담는다면 저에게 부족했던 솔직함에 당당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체포 직후 잠복 차량 맨 뒷좌석에서 수갑을 차고 포승줄에 묶인 채 피의자들의 눈을 쳐다보면서 저와 나누었던 얘기들 그리고 그런 일련의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수사보고서를 바탕으로 기억을 떠올려 작품을 완성해 내야 한다는 모토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브런치에 아직 연재하지 못한 글도 많은데 브런치와 출간 작업까지 둘 다 매달리지 못하고 있고 그나마 브런치 메인 프로필에 보이는 구독자분들도 돌아서지 않을까 솔직히 걱정도 됩니다. 그만큼 브런치가 제 삶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시간을 할애해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과정, 브런치에 연재한 글에서 더 깊이 있게 들어가고자 변신을 위한 과정, 글을 쓰면서 평소보다 2배 독서량이 많아지게 된 과정 그리고 글을 쓰면서 매 순간 느끼는 내 문장은 왜 이렇게 격이 없는지에 대한 반성 등 글을 쓰면서 생겨난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연재해 보려고 합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고 싶어서 시작한 브런치 라이프 1년의 삶을 ‘변화’라는 주제부터 시작해 보고자 합니다.
새로운 시작 전 늘 변화를 줄려고 했던 직장 생활
교통사고조사, 단순 음주운전 무면허 운전 조사, 교통사고를 가장한 보험사기, 주차 차량 손괴 후 도주사고(일명 물뺑사고), 특가법 도주차량(일명 인피 뺑소니), 뺑소니 사망사고, 음주운전 교통사고까지 6년간 근무했던 교통사고조사계의 경력은 제 삶을 한층 단단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교통사고조사계를 떠난 지 10년이 되었지만 다시는 교통사고 조사계에 근무하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언제 퇴직할지는 모르지만 나이가 들고 계급도 어중간해 비록 받아주는 곳이 없다고 하더라도 교통사고조사계에는 돌아가지 않을 생각입니다.
지금은 주차 사고 차량 전담반, 뺑소니 사고 전담반(뺑반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일반 교통사고 전담반으로 세분화되어 있고 블랙박스가 대중화되면서 교통사고 원인 분석이 과거 제가 근무했던 시절과는 분명히 달라 진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음주운전자가 사람을 다치거나 사망에 이르게 하는 교통사고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하면 음주운전 차량 운전자를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과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음주사고)으로 동시에 입건하여 처리를 해야 하는지 아니면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 제5조의 11(위험운전 등 치사상)로 입건하면서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은 특가법에 흡수되는지에 대한 혼란도 많았습니다. 특별법이 시행되면 이 법에 따른 판례만 있다면야 교통사고 조사관들은 업무 처리에 혼선 없이 동일한 기준으로 적용할 수 있지만 조사관들이 바로 적용할 수 있는 판례와 지침을 기대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특히나 음주운전 사고 차량 운전자를 특가법으로 입건하기 위해서는 이 법에 음주 또는 약물의 영향으로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기준은 어떤 기준을 말하는지에 대해서도 초기에 혼선이 많았지만 지금은 여러 차례 도로교통법이 개정되면서 기준은 마련되었습니다. 도로교통법 개정에는 ‘~법(法)’과 같은 사회적 희생에 따른 국민적 여론과 공감대가 법에 많이 반영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일상생활과 밀접한 교통과 차와 연관된 도로교통법은 참 많이 개정되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워낙 많이 나오는 대사이다 보니 대한민국 헌법 제1조쯤은 법의 문외한이라고 하더라도 익숙한 구절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영화 변호인에서 송강호가 외쳤던 대한민국 헌법 제1조 대사가 아주 강렬하게 제 가슴을 파고들었던 것 같습니다.
2005년 처음 교통사고 조사계 업무를 배울 때 대한민국 헌법보다 더 많이 외우고 들여다봤던 법이 도로교통법과 교통사고 처리 특례법입니다.
도로교통법의 목적
이 법은 도로에서 일어나는 교통상의 모든 위험과 장해를 방지하고 제거하여 안전하고 원활한 교통을 확보함을 목적으로 한다.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이 법은 업무상 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로 교통사고를 일으킨 운전자에 관한 형사처벌 등의 특례를 정함으로써 교통사고로 인한 피해의 신속한 회복을 촉진하고 국민생활의 편익을 증진함을 목적으로 한다.
교통사고조사관이라면 이 두 개의 법만큼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보다 더 자주 들어가서 확인해야 했고 수사 서류 작성할 때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도로교통법 법 조문정도는 안 보고 외워야 했습니다.
근무한 지 1년이 넘어갈 무렵 웬만한 유형의 사고 처리 노하우도 쌓이고 만취 상태에서 중앙선을 넘어 3번 국도에서 일을 마치고 차를 운전해 퇴근하던 한 가장을 무참하게 사망하게 한 피의자를 구속도 시키면서 업무에 대한 자심 감은 생겼습니다. 자신감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는데 새로운 유형의 사건이 다가왔을 때 해쳐 나가는 자신감과 그냥 버티는 자신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한 유형의 사고를 처리하면서 축적된 업무 자신감과 그냥 하루만 버티는 ‘존버’와는 극한의 상황에 몰렸을 때 그 조사관의 문제 해결 능력과 존재감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면서 동시에 평가를 받게 됩니다.
소위 말해 이빨로만 까는 사람들은 극한의 상황에 몰리면 앞에 나서지도 않은 듯 뒤로 빠지지도 않은 듯 변두리에 서서 관망하는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문제 해결 능력이 없기 때문에 교통사고처럼 극한의 대립각을 세운 당사자들에게 함부로 뛰어들었다가는 오랜 시간 동안 비난과 원망의 화살을 맞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돌아보면 저에게는 그런 극한의 상황이 많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사이버범죄 예방교육에 전념하고 있지만 사이버범죄 수사 업무를 하고 있을 때도 이런 극한의 상황은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이런 상황이 오는 건 막을 수 없긴 하겠지만 미리 예고라도 하면 좋은데 언제나 그것도 늘 긴장이 풀렸을 때 훅 들어오니 정말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하루는 늦은 가을 저녁 관내에서 저녁 10시가 넘어가면 가로등 불빛마저도 어두움에 가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편도 1차로 S자 커브길에서 교통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는 무전을 받았습니다.
사무실에서도 40분을 들어가야 하는 사고 현장에 도착하니 배달을 마치고 귀가하던 오토바이 운전자가 반대차로 길 가장자리를 걸어가던 보행자를 충격해 운전자와 보행자 두 분 다 사망했던 사고였습니다.
두 분은 현장에서 사망한 상태여서 이미 대형병원으로 후송된 후였고 현장에는 오토바이가 넘어지면서 현장에 쓸려 있던 충격 흔적과 수거한 가락국수 국물과 몇 가닥 남지 않았던 면발 그리고 사고 충격으로 벗겨진 보행자의 신발이 전부였습니다.
그때 어두운 사고 현장에서 경찰복을 벗어 버리고 어딘가로 사라지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외로움은 잠시 3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사고 원인을 밝히는데 매달려야만 했습니다. 사고 당사자가 모두 사망한 경우에는 입증하고 검증해야 할 과정들이 엄청나게 몰려오기 때문에 사고 분석에 매달렸던 3개월은 마치 1주일간 밤을 새워서 일한 느낌이었습니다.
또 한 번은 3번 국도상에서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했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습니다.
운전자는 얼마나 빠른 속도로 질주했는지 S자 커브가 시작되는 부분에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도로를 이탈해 도로가에 있던 주택가 지붕에 차가 올라가 있었습니다. 엄청난 굉음을 내고 달리던 차량이 S자 커브구간에서 드리프트를 시도해 보다가 속도와 차량의 무게중심을 이기지 못하고 우측으로 튀어나가 주택가 지붕으로 날아간 상황이었습니다.
문제는 차 안에 운전자 포함 4명이 동승해 있었는데 사고 충격으로 차가 날아가면서 모두들 차 안에 뒤엉켜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차문을 열었더니 역시 술 냄새가 진동을 했습니다. 이런 사고는 현장에서 곧바로 운전자를 확보해야만 합니다.
견인차와 구급차가 뒤 섞여 현장 조치에 매달려 있는 동안 차 안에서 레슬링 하듯이 엉켜 있는 동승자들 한 명 한 명 상대로 운전 여부를 확인하고 차량 운전석과 핸들 상태, 안전띠를 맸는지 그리고 차량에서 꺼내기 직전 모습 그대로를 촬영해 두어야만 합니다. 이런 사건은 사고 직후 증거만 탄탄하게 확보해 두면 제 아무리 운전자를 바꿔치기하더라도 금방 들통나기 때문에 초반에 사건에 집중하면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이런 극한의 상황에서 혼자서 해치고 나갔던 사고 조사 근력은 한건 한건 누적될 때마다 키울 수 있는데 항상 전문 사고 조사 교육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복잡한 시내 신호등 없는 사거리는 늘 교통사고가 반복적으로 발생합니다.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 차종으로 발생한 사고라면 기존 노하우가 있으니 정형화된 방식으로 처리할 수도 있겠지만 운전자마다 운전 습관이 다르기 때문에 매번 사고 원인은 다양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교육이 정말 필요하다는 걸 느꼈지만 제대로 된 교육은 받을 수 없었고 오로지 선임 선배들의 말이 절대적이었습니다. 경험이 많은 선임 선배들의 노하우는 신임 수사관들에게는 거의 절대적이기 때문에 저 또한 선배들로부터 배우고 사고 처리 방향을 잡아 나갔습니다.
현장에서 배운 경험과 선배들로부터 전수받은 노하우를 기본으로 해쳐 나갔던 초임 시절 사고 현장은 정말 다양했던 것 같습니다.
교통조사 업무를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차량에 블랙박스가 대중화되기 전 시절이라 신호위반 사고에서 양 차량 운전자가 부인하면 사고 장소에 플랫카드를 걸어 목격자를 찾아야 했고 거짓말 탐지 검사까지 불사하면서 누가 신호위반을 했는지를 밝혀야 했습니다.
교통사고 조사는 일반 수사 업무와는 달리 공학적 분석에 많은 비중을 두고 차량 간 충격지점과 사고 직전 운전자는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확인해 결과적으로 어느 차량 운전자의 부주의로 사고가 발생하게 되었는지를 확인해야 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을 받지 못한 신임들에게 선배들의 노하우는 절대적입니다.
그리고 교통사고 원인 중 신호위반, 중앙선 침범, 제한 속도보다 20km 초과하여 과속, 앞지르기 방법. 금지시기. 금지장소 또는 끼어들기의 금지를 위반하여 발생한 사고, 철길 건널목 통과 방법 위반, 횡단보도에서의 보행자 보호의무 위반, 무면허 운전, 음주운전, 보도를 침범, 승객 추락 방지 의무 위반, 어린이 보호구역 안전운전 의무 위반, 자동차 화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고 운전 중 발생한 교통사고와 같이 12가지 항목을 위반한 운전자는 종합보험에 가입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형사 처벌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12개를 제외한 교통사고는 종합보험에 가입되어 있으면 형사 처벌을 할 수 없는 불기소(공소권 없음) 사고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12대 중과실 사고보다는 불기소 교통사고가 월등히 높은 비중을 차지하였습니다.
이런 불기소로 처리되는 교통사고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다 보니 누가 잘못이 크고 작은 지를 구분해야 하는 과정에서 공학적인 지식이 또 필요합니다. 지금은 블랙박스에 촬영된 영상만으로 사고 원인을 입증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공학적인 분석은 반드시 사고 원인을 밝혀내는데 필수적으로 따라가야 합니다.
저는 이 공학적인 분석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충격 흔적과 충돌 지점으로 사고 차량이 어떤 차종인지 제원을 대입해 사고 원인을 입증하고 운전자는 사고 직전 어떤 행태로 운전을 했는지를 더해 밝혀내는 과정에 매료되어 도로교통공단을 찾아가서 교육을 배우고 확신이 서지 않았던 사고는 공단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직접 원인 조사를 의뢰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의욕보다는 조직의 시스템에 많은 실망을 느끼고 일개 조사관은 이 시스템을 바꿀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니 사고조사계 업무에서 마음이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왜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는 책을 통해서 그 당시의 심정을 적었는데 최종적으로 실릴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그동안 배웠던 지식을 객관적으로 인정해 줄 수 있는 카드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주말에 당시에는 홍대 앞에 하나 있던 손해사정인 3급 대인 자격증을 공부하면서 도로교통사고 감정사 자격증도 취득했습니다. 감정사 자격증 취득 이후 이 기세로 밀어붙여 손해 사정인 필기시험을 앞두고 있었지만 예고 없이 사고 조사계를 떠나면서 손해사정인 자격증은 물 건너 가버렸습니다.
6년간 사고 조사계 직원들에게 주어졌던 ‘조사관’ 칭호에서 ‘형사’라는 칭호를 부여받을 수 있는 수사과는 저에게 큰 도전이자 변화의 시작점이었습니다.
그렇게 6년 동안 사고 조사계에서 겪었던 많은 사고를 뒤로하고 수사과에서 형사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