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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중현 Jan 13. 2021

수사 얼마나 했어요?

교통사고 조사는 형사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수사 몇년이나 했어요?"

"교통조사계에 6년 근무했었습니다."

"교통사고 조사계가 무슨 형사야?"


수사과로 발령받은 뒤 신입 형사가 되면서 교육을 많이 가게 되었습니다.

지방청에서 시행하는 피의자 신문 조사 기법, 수사 서류 작성 요령부터 충남 아산 지금의 경찰수사연수원에서 추적 수사 기법까지 형사로서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교육이기도 했습니다.

교육장에서 새로운 동료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어색하기 때문에 교육의 시작은 자기소개 시간입니다.

"강력 형사만 10년 넘게 근무했구요, 제가 잘하는게 강력이라 이것만 하려고 합니다."

수사 형사만 10년 이상 근무했다는 동료들을 보면 당시에는 그렇게 높아 보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 번은 연천서 수사과장으로 새로 발령받은 첫날 과장은 전 직원들을 처음 보는 자리에서 이런 인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 새로 과장으로 발령받은 000입니다. 다른 말보다는 제가 한 마디 말씀드리고 싶은 건 저는 범죄자들을 아주 잘 잡습니다. 마약 수사만 오랫동안 했기 때문에 굉장히 잘 잡습니다. 그러니깐 저만 믿고 따라오시면 됩니다."

인사말의 내면에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연천은 아무리 날고 기는 형사라 해도 대도시 출신의 과장 말에 무조건 따르면 된다라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겠지만 이렇게 수사 형사로서의 경력은 어딜 가도 통하는 프리패스 카드로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해는 다른 어느 수사과장보다 저하고 가장 많이 부딪혔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고조사계 경력은 형사로 인정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교통사고 조사계 사무실은 늘 민원실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수사과 건물은 본관에 있는데 교통사고 조사계는 별관 아니면 민원실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이곳만 그런 줄 알았는데 전국의 사고조사계 사무실이 공통적으로 별관에 있거나 민원실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사무실이 본관에 있든 별관에 있든 다 같은 업무를 처리하는 곳인데 무슨 차이가 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본관과 별관이 주는 의미는 동일하지 않다는 걸 저도 직장 생활을 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인사권을 쥐고 있는 지휘관의 시야에 들어올 수 있는 가시 반경'

이게 왜 중요한지는 늦어도 한 참 뒤늦게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 사고 조사계에서 업무를 배울 때 받아쓰기 검사라는 게 있었습니다.

교통사고 현장을 다녀오면 현장에서 촬영한 사고 현장 사진 그리고 각 차량 운전자들과 주변 목격자들의 진술을 상세하게 수사 보고서로 남겨 계장에게 결재를 올리는 과정을 받아쓰기 검사라고 합니다. 처음 현장에 출동한 담당자가 왜 이렇게 판단을 하게 되었는지와 사고 전체에 대한 의견을 작성해 1차 고객인 계장의 평가를 받고 납득이 되어야만 결재가 통과가 됩니다.

"서류 이리 가지고 와!"

권위적이고 강압적이었던 계장은 담당자의 의견에 납득이 가지 않으면 직접 서류를 확인했습니다. 물론 담당자가 현장에서 놓칠 수 있는 부분을 잡아주고 보완하는 건 언제나 환영하지만 보고서 작성 방식이 틀렸다는 이유로 자주 불려 갔습니다.

"한 문장이 다음 문장으로 내려갈 때 흐름이 끊어지지 않도록 단어가 이어지게끔 보고서를 만들어!"

가령 이런 식이었습니다.

'사고 장소는 00읍 00리 교통 신호등이 설치되어 있지 않는 편도 2차 / 로 구간인 곳이다.' (수정전)

'사고 장소는 00읍 00리 교통 신호등이 설치되어 있지 않는 편도 2차로 / 구간인 곳이다.' (수정후)

한 단어가 이어지지 않은 채 다음 문장으로 내려가면 흐름이 끊어지기 때문에' 2차로'는 한문장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신임 시절 이렇게 배우게 되면 그냥 정석으로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신임 수사관 조사관들을 위한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교통사고조사는 선배들로부터 배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경력이 많은 선배의 노하우는 후임에게는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다 한 번은 계장이 서류를 다시 가지고 오라고 지시했습니다. 분명 시키는 대로 했고 보고서를 여러 번 읽어 봐도 이상이 없는 것 같은데 이유를 몰랐습니다.

"보고서 다시 작성해!"

결제를 올린 서류를 미리 읽어 볼 수 있도록 출력한 서류를 보는대서 찢어 버렸습니다.

경찰 입문하기 전 아파트 거푸집 설계 회사에 막 입사했을 때 소장이라는 사람이 설계도와 견적서가 마음에 안 든다며 서류를 집어던진 적이 있습니다. 소장 책상에서 던져진 서류가 결재판을 비집고 나와 내 머리를 넘어 바닥에 떨어졌을 때 느꼈던 모욕감은 복수심으로 끓어 올라 반드시 돌려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대학 나와서 뽑아 놨더니 일을 이 따위로 밖에 못하나?"

다른 선배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당한 굴욕감과 그 광경을 지켜보고 당연한 신고 의식쯤이라 인식했던 직원들을 보면서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건설회사가 워낙 불경기라 나가면 다른 직업을 구하기 조차 힘들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더 이상 근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경찰 시험 준비하려고 하는데 그만두겠습니다."

입사한 지 만 2년밖에 안 되는 사원이 할 수 있는 강한 모습은 이것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경기도 안 좋은데 그만두려고? 나가봐도 일자리 없을 건데 내가 알아봐 줘?"

마지막 퇴사 인사를 받아주는 소장의 태도는 반드시 돌아와서 복수하리라는 마음속 불씨를 더욱 꺼지지 않게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정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법 전공도 아니었지만 이것 아니면 안 된다는 선택밖에 없었습니다. 24시간 개방하는 대학교 도서관에서 먹고 자면서 공부한 지 7개월 만에 합격했으니 저로서는 그 회사를 향한 복수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중앙경찰학교에서 정식 발령을 받기 전 희망 근무지에서 실습을 할 수 있는데 그때 복수의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퇴직할 때 회사는 부산 서면 롯데 백화점 인근 00 공사 건물에 입주해 있었는데 다행히 이전하지 않고 그대로 있어 실습 희망지를 회사가 있는 서면 지구대로 자원했습니다.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도보 순찰 근무시간 때 회사를 방문했을 때 사무실은 변한 것 하나 없이 그대로였습니다. 다만 제가 그만둔 자리에 신입으로 보이는 젊은 직원이 앉아 있었습니다.

"아이고 정말 합격해서 왔군요. 몰라볼 정도로 변한 것 같습니다."

퇴사할 때 일자리 알아봐 준다면서 남은 자존심마저 짓밟았던 소장은 완전히 다른 사람을 대하는 듯했습니다. 하긴 그때의 사원이 아니었기에 이제는 당신한테 어려운 존재로 각인시켜 주고 싶어서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그 뒤로 몇 개월 후 제 자리를 채워 근무하던 신입 직원으로부터 문자가 왔었습니다.

"선배님! 저도 선배님이 갔던 것처럼 공무원 시험은 못할 것 같고 다른 자리 알아보려고 합니다."

이분의 문자를 받고 경찰 시험 준비에 매달려 있는 동안 후임에게 어떤 일들이 펼쳐졌을지 충분히 상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시험을 쳐서 공채로 합격한 직장에서 고심해 작성한 서류가 찢기는 경험을 하니 다시 한번 복수심이 타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여기는 계급이라는 막강한 서열이 정해지는 권력이 있다 보니 사심에 가득 찬 복수는 자칫 내가 조직에서 매장될 수 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직장 생활을 하면 할수록 비록 거대한 조직원이기도 하지만 실무자들은 소속 계장과 과장들에게 건전한 비판을 하기 어려운 구조화가 되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곳은 남의 일에는 냉정할 정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계급은 인사권을 발휘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휘관의 가시권에 벗어나는 언행과 행동은 인사권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는 생리도 알게 되었습니다.


'존버'    

경찰서에서 지방청으로 발령받고 나서 지방청 직원들과 내부망 메신저로 대화할 때면 유독 대화명이 '존버'로 설정되어 있는 직원들을 많이 봤습니다.

"존버라는 사람이 지방청에 근무하는 외국인 특채인가요?"

한 번은 존버로 설정되어 있는 지방청 직원과 대화할 일이 있었는데 직접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더럽고 힘들어도 진급 순서 기다리는 겁니다."

조직의 서열 구도에 올라서기를 완전히 포기한 나였지만 얼마나 어리석게 직장 생활을 해 왔는지 저절로 웃음이 나왔습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저렇게 버텨 내는 이유가 진급이었다니 여기도 경찰서와 마찬가지로 조직에 속해는 있지만 외톨이로 생활해야만 했습니다.

               

형사라 하면 외근 활동을 다니고 피해자들이 가져다주는 고소, 고발, 진정 그런 부류의 사건들 말고 스스로 첩보를 생산해 인지 사건을 하면서 압수수색 검증영장과 체포영장으로 인지한 피의자를 체포하는 경찰을 의미하는 것 같았습니다.

형사의 공식을 깨고 싶었고 계급의 서열에 올라서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발표 잘하는 공무원이라 함은 파워포인트를 잘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 구역질이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나만의 스토리 텔링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아무도 관심 없는 부서에서 나만의 스토리 텔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부서.

그 어떤 지휘관으로부터 사건에 대한 압력이 들어갈 수 없는 부서.(장기 사건을 빨리 빼라는 지휘관의 요구는 압력이 아니라 권한입니다.)

학창 시절 공부만 열심히 하면 제대로 된 인생을 살 수 있을 거라는 잘못된 가르침을 깨우칠 수 있는 부서.

이런 부서가 필요했습니다.

그때 저에게 눈에 띈 부서가 사이버범죄 수사 업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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