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장 많이 듣는 질문 답하기
남편의 귀국 일정에 맞추어 짧게 1박 2일, 양양/속초에 다녀왔다. 늘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짧게나마 보고 와서 너무 신난 데다가, 우리 가족이 밀도 높은 48시간을 보낸 소중한 여행이었다.
19년 1월에 이사해서 23년 10월에 나왔으니, 살짝 못 채운 5년을 양양에서 살았다. 나이로 치면 32살에 떠나 36살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지금 생각하니 사회 통념상 가장 열심히 일 하며 살아야 할 시기에 내 일 찾겠다며 홀연히 떠난 거였다. (물론 아직도 난 내 인생의 전성기가 40대 이후일 거라 굳게 믿고 있다.)
5년 전부터 우리 부부에게 꼬리표처럼 붙는 질문이 있는데, 요즘 또 부쩍 많이 듣는 질문이 있다.
Q : "시골이 좋나요? 도시가 좋나요?"
우리를 오래 알던 사람들도, 최근에 알게 된 사람들도 늘 묻는다. 30대 초중반 부부의 5년 귀촌 생활이, 또 다시 도시로 돌아온 것이 그리 일반적인 건 아니니 궁금할 법도 하다. 엄마아빠조차도 주기적으로 묻는다.
이 질문의 답을 9개월간 깊게 생각했다. (오늘이 이사 나온 지 딱 9개월째다.)
쉽게 답할 수도 있는 이 질문을 꽤 오랜 시간 붙잡았던 이유는,
1) 5년의 시간과 9개월의 시간을 단순 비교하기 어려웠고
2) 진짜 답이 뭔지 모르겠어서였다.
그러다 속초 다녀오던 차에서 남편과 양양에서의 삶을 반추하며 나눈 대화로 답이 정리되었다.
A : "저는 그냥 늘 지금이 좋아요."
나는 시골이라서 좋은 게 아니라, 도시라서 좋은 게 아니라, 항상 내가 살고 있는 그 순간이 좋은 거였다.
양양에 살 때는 시골이 너무 좋았다. 자연의 시간이 내 몸으로 들어오는 그 느낌은 정말이지 매력적이었다. 밤이 되면 어두워지고 상점은 일찌감치 닫는다. 그에 맞춰 나의 몸도 취침모드로 바뀐다. 아침이 되면 해가 떠오르고 나도 일찍 떠오른 해와 함께 일어난다. 이사오기 직전까지 살았던, 새벽 1시에도 대낮같이 환한 용산에서의 삶과는 너무 비교됐다.
나의 첫 차가 생겼을 땐 더 좋았다. 거의 막달까지도 난, 불뚝 나온 배에 안전벨트를 하곤 강릉 산부인과로로 진료를 보러 다녔다. 시골 생활의 단점으로 매번 올라오는 단골 주제가 의료 공백인데, 아기 낳기 전까지는 그마저도 단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7번 국도는 늘 한적했고 난 신나게 운전을 하는 임산부 드라이버였다. 뻥 뚫린 도로가 주는 해방감에서 느끼는 Driving Fun, 회사 다닐 때 줄곧 외치던 Driving Fun을 몸으로 느끼는 시간들이었다.
근데 지금은 도시가 너무 좋다. 차 없이 걸어가도 내가 사고 싶은 것들, 하고 싶은 것들을 전부 다 할 수 있다. 나의 도보 생활권 안에 마트, 카페, 백화점이 모두 들어와 있다. 탄천도 가깝고 도서관도 크고 넓고 좋다.
선호 하원 후, 날씨만 허락한다면 둘이 동네 구석구석을 걸어 다닌다. 맛있다는 케이크집에 가서 둘이 케이크도 먹고 오고, 날이 좋지 않으면 백화점으로 넘어가서 선호가 좋아하는 오렌지 착즙 주스를 사 먹는다. 6시쯤 가면 백화점 식품코너가 마감 세일을 해서 거의 50% 할인 가격으로 좋은 퀄리티의 떡, 빵, 고기, 생선들을 살 수 있다.
내가 용인에 살게 될지는 정말 몰랐고, 죽전은 더더군다나 상상조차 안 했었는데 살고 있다. 대학원 때 가끔 슬기찬이랑 데이트 오던 죽전 카페거리를 내가 내 아들과 활보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근데 이 동네가 너무 좋아서 요즘 만족도는 거의 최상이다.
_
처음 시골로 이사 갔을 때, 다들 내가 정말 편해 보인다고 했다. 365일 신던 하이힐은 벗어던지고 자연스럽게 사는 것 같다고.
다시 도시로 이사 왔을 때, 다들 내가 정말 편해 보인다고 했다. 쭉 도시에 살던 사람같이 자연스럽게 사는 것 같다고.
_
시골이 좋은지 도시가 좋은지에 대한 질문을 받고 오래 고민했지만, 역시나 쓰고 보니 나의 답은 간단하다.
나는 늘 지금이 가장 좋다. 그래서 지금은 도시가 좋고, 용인이 좋다.
그리고 나랑 슬기찬은 꿈꾼다. 다음에는 또 어디에 살아볼까. 미래의 난, 또 어디를 좋아하고 있을까.
_
번외*
선호에게도 양양이 좋은지 용인이 좋은지 물어보았다.
1초도 망설임 없던 이선호의 답은?
.
.
.
.
.
.
.
.
"둘 다 똑같이 좋아~”
(많이 귀여운 우리 이선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