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표보다 중요한 걸 배우는 중이다
본의 아니게 평가 시즌이 되었다.
12월도 아닌데 무슨 평가인가 싶었지만,
나도 남편도 나란히 성적표를 받게 생겼다.
남편은 여러 가지 일을 지나
이제 어느 정도 안정권에 들어선 듯하다.
내가 아는 그 사람을,
이제는 회사 사람들도 알아봐 주는 느낌이다.
가끔 남편 회사 분들을 만나게 될 때면,
한결같이 칭찬을 건넨다.
물론 와이프 앞이라 예의를 갖추는 말일 수도 있지만,
나도 모르게 “그쵸?” 하고 말할 뻔한다.
가족이기 전에 함께 일해본 사람으로서
알고 있는 그 모습에 대한 이야기들이니까.
남편이라고 편했을 리 없다.
갑작스러운 등장에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을 테고,
낯선 나라에서 서로 다른 문화 속 사람들과 협업하는 일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아는 크고 작은 사건만 해도 여러 개인데,
굳이 말하지 않은 사소한 일들까지 합치면 얼마나 더 많았을까.
나는 어떨까.
일단 무사히 수습 기간은 지나갔고,
이제는 일도 한결 익숙해졌다.
처음엔 버겁게 느껴졌던 두 가지 주요 업무 중 하나는 어느 정도 정리되어,
지금은 더 나은 퀄리티를 고민할 여유도 생겼다.
사람들과도 가까워졌다.
일 잘하는 사람들 옆에 있다는 건
여전히 나에게 가장 큰 자극이다.
눈빛이 살아 있는 사람들 틈에 있으면,
나도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느낀다.
스타트업 문화에도 점차 익숙해지고 있다.
“이제 너네 회사는 스타트업 아니지 않아?”라는
중식쌤의 질문에 뾰족한 답은 없었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문화는 분명하다.
Focus on Impact.
프로세스보다 임팩트.
대기업과 창업을 모두 경험해서 그런가
더 깊이 공감되기도 하고
더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는 핵심가치다.
다시, 평가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남편의 평가는 아마도 좋을 것이다.
지켜본 바로는 충분히 그럴 만했고,
그러길 바라는 마음도 크다.
나는 어떨까.
내 평가는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내 입장에선 지난 6개월이 꽤 괜찮았다고 생각하지만,
어디까지나 내 기준이니까.
결국 우리 둘 다,
낯선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잘하고 싶은 마음’을 붙들고 있다.
그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애쓰며
하루하루를 버텼고,
조용히 다잡아가며 여기까지 왔다.
결과적으론 숫자로 평가하겠지만, 이제는 안다.
낯선 환경 속에서도 끝까지 책임지려 했던 시간들.
그 자체가 나와 남편에게는
가장 정직하고 솔직한 성적표가 아닐까.
그리고 어쩌면,
잘하고 싶은 그 마음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앞으로도 충분히 괜찮게 해낼 수 있지 않을까.
갑자기 이른 육퇴에 오늘은 글을 써 보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