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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보씨 Oct 30. 2020

작은 카메라의 미덕

나의 카메라 편력기 1. 라이카 X1

“왜 찍어요?”

“어디서 나왔어?”

크고 묵직한 검은색의 DSLR에 미사일이 발사될 것만 같은 렌즈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는 나를 경계하며 사람들은 이렇게들 말했다. 처음 캐논의 디지털 똑딱이 카메라로 사진 생활을 시작했던 나는 어느덧 니콘의 플래그십 카메라인 D3를 들고 있었다. 카메라와 렌즈들로 인한 어깨 통증이 커지면 커질수록 사람들이 나를 전문가로 봐줄 거라는 유치한 생각에 내 카메라 가방 속 장비들은 점점 더 근육질의 카메라와 렌즈들로  바뀌어 갔다.



니콘 플래그십 카메라 D3 ( 사진 출처 : https://www.dpreview.com/reviews/nikond3 )






카메라 가방의 무게는 날로 늘어가고 어깨는 아파왔다. 그렇지만 정작 사진은 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사진 실력이 보잘것 없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이 크고 묵직한 카메라들로는 내가 원하는 사진을 찍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생 라자르 역 뒤에서 /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 / 1932



처음 사진을 찍기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나는 장엄한 풍경 사진이나 아름다운 초상 사진, 생동감 넘치는 조류 사진 등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나는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의 사진을 보며 감탄했고 김기찬 사진가의 골목 사진들을 동경했다. 그래서 나도 사람들의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은 스냅 사진이나 캔디드 사진을 찍고 싶었다. 하지만 커다란 DSLR 카메라와 대포같이 큰 렌즈로 사람들을 찍으려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경계하며 왜 자신들을 찍는지 캐물었다. 그들에게 촬영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촬영에 대한 동의를 얻어낸 후에도 잔뜩 경직되고 부자연스러운 모습만 찍힐 뿐이었다. 나에게는 크고 폼나 보이는 카메라가 아니라 사람들이 신경쓰지 않을 카메라가 필요했다.






골목 토크콘서트 / 2014. 06 / 라이카 X1



꽤 여러 해 동안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일을 했다. 물론 근무 시간이 평일처럼 길었던 건 아니었으나 단 서너 시간만 일을 해도 그 시간에 매여 여행이나 출사 등은 하기 어렵게 마련이다. 그 무렵 나는 주말 근무를 마치면 혼자 라이카 X1을 들고 골목 골목을 돌아다니곤 했다. 어차피 내가 찍고자하는 사진은 혼자 작은 카메라를 들고 낡은 집들 사이와 오래된 거리에서 만날 만한 모습들이었다. 그러다 이 장면과 만났다.

재개발을 앞둔 골목, 동네 아주머니들이 거리에 나와 수다를 떨고 그 모습을 방청하듯 구경하고 있는 소년. 아주 재미있는 모습에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남겼다. 라이카만의 경조흑백모드가 오래된 골목과 잘 어울렸고 만족스러운 사진을 남겨주었다. 사진을 찍고 나서 아주머니들께 사진을 보여드리고 게시하는 것에 허락을 얻기 전에는 사진에 담긴 어떤 분도 나에게 왜 사진을 찍는지, 어디에서 나온 뭐 하는 사람인지 묻지를 않았다.






라이카 X1



독일 카메라의 자존심이자 명품 카메라의 아이콘인 라이카는 많은 사진가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어 왔다. 레인지 파인더 카메라인 M 시리즈는 수동 초점의 불편함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X1은 라이카의 클래식 카메라인 바르낙의 디자인을 모티브로 하여 만든 소형 디지털 P&S 카메라이다. APS-C 타입의 센서에 24mm의 엘마릿 렌즈(환산 36mm)를 장착하고 있다. 동영상조차 지원하지 않고 사진에만 충실한다는 목적에 걸맞게 고화질의 이미지를 만들어준다. 렌즈 교환이 되지 않는 고정 화각에 최대 개방 조리개값이 2.8이라는 단점이 있으나 오히려 그런 결핍을 창조의 원천으로 삼을 수도 있지 않을까. 빛을 세심하게 살피고 몸을 조금 더 움직이는 귀찮음을 감수한다면 X1은 사진가에게 훌륭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해 준다.  내가 생각하는 X1의 유일한 단점이 라이카 프리미엄이라고 할 만한 비싼 가격이었으나 제 아무리 라이카라도 디지털 기기의 숙명을 벗어날 수는 없는 법. 출시된 지 꽤 오래 지난 지금에서는 중고 가격도 많이 떨어졌으니 부담스럽지 않게 사용해 볼 만한 카메라이다. 작고 귀여운 장난감처럼 보여도 촬영된 사진을 보면 왜 많은 사진가들이 라이카의 빨간 로고를 선망하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다만 쓸수록 X1이 이 정도인데 라이카 M 카메라들은 얼마나 좋은 걸까 호기심을 갖고 궁금해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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