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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보씨 Mar 08. 2021

아담한 카메라와 렌즈로 담은 큰 웃음

나의 카메라 편력기 4. 라이카 M6

"가장 예뻐 보이는 걸로 골라."

카메라 추천을 요청한 후배에게 내가 해 준 조언이다. 비단 그 후배뿐만 아니라 대체로 나에게 추천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했던가. 예뻐 보이는 물건에 마음이 끌리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물론 사진을 찍으려는 이가 주로 찍고자 하는 사진에 따라서 특정한 카메라나 렌즈가 더 효율적이고 잘 어울리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무조건 예쁜 걸 추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카메라로도 좋은 사진을 만들 수 있는 시대에 카메라의 성능이 달려서 못 찍는 사진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면 외양이 예쁜 카메라가 더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은 자명할 게 아닌가.




사진 장비의 명품이라고 한다면 사진을 좀 찍어본 이들은 누구나 라이카를 떠올릴 것이다. 1954년 M3부터 시작된 라이카의 전설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필름 장착과 장전, 초점 맞추기와 조리개, 셔터 속도 조정까지 모든 걸 다 손으로 해야 하는 카메라, 심지어 노출도 뜨지 않는 수동 카메라가 지금도 100만 원이 훌쩍 넘는 고가에 판매되고 있다.


라이카 M3



사용자 편의성이 높은 디지털 카메라들이 수두룩한 오늘날에도 불편하기 짝이 없는 라이카 M3가 인기 있는 이유는 뭘까? 등배율 파인더의 시원함, 기계적 구동의 신뢰성, 렌즈의 우수한 광학 성능, 만족스러운 조작감 등 여러 이유를 붙일 수는 있겠지만 극히 주관적인 이유로는 예쁘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M3를 선택하는 데 기계 공학의 예술품이라고 불려도 손색 없을 아름다운 자태 외 다른 이유가 필요하지 않았다.

한동안 M3로 즐거운 사진 생활을 했다. 그러나 이미 자동 초점과 자동 노출에 더럽혀진(?) 몸으로 M3에 적응하기는 만만치 않았다. 최소한 노출이라도 떴으면 싶었다. 매번 노출계를 가지고 다니면서 노출을 측정하기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기에. 그래서 선택한 카메라가 라이카 M6였다.


라이카 M6


M6는 라이카가 M5의 실패 이후에 절치부심하고 만든 카메라이자 라이카 M 시리즈 카메라의 스테디 셀러이다. 라이카는 M3의 성공 이후 M2, M4까지 사진가들에게 열광을 받았다. 그에 자신감을 얻고 최초로 노출계를 장착한 M5를 출시하였으나 시장의 반응은 그 이전 카메라들과 180도 바뀌었다. 카메라의 대세는 일본 광학회사들이 만들어내는 일안 리플렉스(SLR) 카메라로 바뀌었다. 렌즈로 보이는 장면과 파인더의 장면이 다른 라이카의 레인지 파인더(RF) 카메라보다 직관적이고 다양한 렌즈의 사용이 가능한 SLR 카메라의 장점이 당시 사진사들에게 더 매력적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기존 라이카 M 바디보다 크고 무겁고 투박한 M5는 라이카 카메라가 주는 감성적인 만족감을 주기 어려웠다. M5의 실패를 딛고 개발된 M6는 아름답고 클래식한 외관으로 지금까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카메라가 되었다. 






라이카의 M6는 많은 단점이 있다. 자동 초점이 없어서 사진사가 파인더를 들여다보며 일일이 초점을 수동으로 맞춰야 한다. 많은 사진사들이 사용하는 조리개 우선 노출 모드도 없어서 조리개와 셔터 속도 모두를 사진사가 직접 설정해야 한다. 필름 장착이 M3나 M2 혹은 그 이전의 라이카 바르낙 카메라에 비해 쉬워졌다고는 해도 필름 SLR 카메라들에 비해 불편하다. 빛 방향에 따라 파인더의 이중상이 보이지 않는 경우도 왕왕 발생한다. 이 많은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많은 이들이 M6를 사용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심미적 만족감일 것이다.

내가 라이카 카메라를 선망하게 된 가장 큰 이유도 위에서 말한 심미적 만족감이지만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카메라와 렌즈의 크기가 거대한 SLR 카메라에 비해 피사체에게 부담을 덜 줄 수 있어서 좀 더 자연스러운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사진을 찍는다는 뜻의 영어 단어인 'shoot'에는 '사격하다'의 뜻도 있다. 사진을 찍는 행위와 총을 쏘는 행위를 같은 선상에 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 전문적인 모델이 아닌 피사체가 사진을 찍힐 때 받는 부담감을 고려하면 이보다 적절한 단어가 있을까. 늘 피사체가 사진사를 의식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사진을 찍고 싶었던 나에게는 라이카의 RF 카메라가 최적의 카메라였다.


 




@ 장흥 풍물시장


전통 시장을 완보하며 여기저기 셔터를 누르던 나에게 할머니 두 분이 말을 걸었다. 

"뭘 그리 찍어쌓소? 뭐 볼 거 있다고?"

"그냥 시장 모습을 남기고 싶어서요. 할머니들도 찍어드릴까요? 사이 좋아 보이시는데."

"다 늙은이들 찍어서 뭐 한다고?"

"에이, 늙긴요. 미스코리아 나가셔도 되겠는데."

두 분의 웃음이 세상을 다 밝히는 듯한 착각을 느낀 순간 나는 셔터를 눌렀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사진으로 남길 수 있었던 그 날, 나는 카메라 외관의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M6의 진정한 매력을 깨닫게 되었다, 사진을 'shooting'하기 보다 'taking'할 수 있는 카메라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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