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치 리카르디 궁전
피렌체 곳곳에서는 이런 6개의 구슬이 있는 문장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15~18세기 피렌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가문이었던 메디치가의 문장입니다.
피렌체와 르네상스 그리고 메디치 가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메디치가의 이야기는 조반니 데 메디치부터 시작합니다.
그는 금융업과 무역업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메디치 은행’을 설립하게 됩니다.
그의 첫째 아들 코시모 데 메디치는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아 이끄는 한편 예술, 문화, 학문 등에 후원을 하게 됩니다. 피렌체 두오모의 돔 건축을 지원하였고,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고서적을 수집(르네상스의 중요한 배경 중 하나)하여 이를 피렌체 시민들이 모두 읽을 수 있도록 도서관을 지었습니다. 유럽 최초의 공공도서관이었습니다. 그는 피렌체의 국부로 칭송받는 인물이었습니다.
그 뒤로 코시모의 손자인 로렌초 데 메디치는 할아버지의 뜻을 함께 이어 다양한 분야에 후원을 하며
메디치가의 황금기를 이룹니다.
로렌초는 일찍이 미켈란젤로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가족처럼 함께 살게 합니다.
또한 <비너스의 탄생>의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를 후원하기도 하였습니다.
예술적 재능을 알아보고 이에 대해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그는 ‘위대한 로렌초’라고 불립니다.
이러한 메디치가에서도 고민은 있었습니다.
‘부자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성경말씀 때문이었습니다.
메디치가에서는 성당 건축에 대한 후원뿐만 아니라 레오 10세, 클레멘스 7세의 교황을 배출하게 됩니다.
교황 레오 10세(217대)는 로렌초의 차남이며, 교황 클레멘스 7세(219대)는 레오 10세와 사촌지간입니다.
오늘 방문하는 메디치 리카르디 궁(Palazzo Medici Riccardi)은 코시모 데 메디치가 1444년~1460년에 지은 저택입니다. 설계는 건축가 미켈로초 디 바르톨로메오(Michelozzo di Bartolomeo)가 맡았으며, 당시 유행이었던 르네상스 양식을 적용하였습니다.
건물의 외벽 처리가 특징적인데요.
1층은 돌의 표면을 거칠게 처리하여 방어적 느낌을 줍니다.
2층은 벽돌과 벽돌사이의 줄눈이 잘 드러납니다.
3층은 2층과 달리 줄눈이 드러나지 않게 처리하였습니다.
안뜰인 중정 또한 반원형의 아치와 기둥이 반복되는 르네상스 양식이 잘 드러납니다.
1659년에 코시모 1세가 아르노강 건너의 피티 궁전으로 거처를 옮기며, 이 저택은 리카르디 가문에 매각되었습니다. 그래서 메디치 리카르디 궁전이란 이름이 붙게 된 것이죠.
근엄한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 외관과 달리 내부는 화려한 바로크양식이 적용되었습니다.
문화, 예술, 학문과 같은 분야는 당장 먹고사는 일과는 크게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메디치가문이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에만 급급했다면, 르네상스도, 그리고 피렌체의 천재들도 우리는 만날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