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고마워
‘늘 고마워’ 라는 카톡을 읽었을 때 나는 인생 처음으로 덴트샵에 가는 중이었다. 출차를 하다가 회전 각을 계산을 못해서 주차장 기둥에 그대로 차를 천천히 긁어버렸고, 처음 들어보는 우그러지는 소리에 당황한 나머지 핸들을 정 반대로 돌려 또한번 차를 패이게 했다. 퇴근 후 부랴부랴 견적을 알아보고, 가족의 잔소리를 한귀로 넘기고, 나름대로 봉잡히지 않겠다고 손품을 팔아 조금 먼 거리의 덴트샵을 예약을 하고 생각보다 높은 가격에 호구 잡힌건 아닌지 걱정하며 이것 저것 따져 묻는 척도 하느라 그 날 진이 다 빠져버렸다. 그렇게 찾아간 덴트샵 주인분의 우락부락한 외형에 잔뜩 긴장 한것과는 다르게 서비스업 특유의 '라' 음으로 견적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해주는 것을 얼떨떨하게 들었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잠깐 잊었던 네 카톡에 '고마우면 이거나 먹어.' 라면서 기한이 얼마남지 않은 새콤달콤 기프티콘을 네게 전송했다. 내가 기억하는 넌 잊을만하면 그렇게 마음을 고백해오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런 마음이 쑥스러워 모른척하는 사람이었다.
첫 경험이라는 것은 그렇게 사소한 모든 순간들이 머리속에 영상처럼 남더라. 그래서 나는 정말로 너에게 가던 그 모든 순간들을 영화처럼 기억한다. 전화를 받기 전 문득 스쳐지나가던 '왜?' 라는 생각도, 불안의 실체를 확인했을때 천천히 빨라지던 심장박동도, 전화를 끊고 내 방에서 숨이 쉬어지지 않아 한바탕 바닥을 굴렀던 것도, 그와중에 기차역까지 가기 전에 시간이 남아 밥은 먹어야한다고 계란을 구워서 밥에 비벼먹었던 것도 생생하다. 기차역에서 만난 다른 친구와 말은 안했어도 이야기를 빙빙 돌렸던 것도. 서울에서 좀더 일찍 네 소식을 접한 친구의 입에서 네 이름이 나오자 마자 울음을 터뜨릴걸 말하지 않아도 알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너를 뺀 우리가 모였을때는 또 웃고 떠들면서 일상처럼 네 이야기를 했다. 마치 네가 좀 늦는 것 처럼. 곧 잠옷차림의 우리가 모여서 케이크나 퍼먹을 것 마냥.
여름 오전의 서울은 따가웠다. 햇볕이 쨍하게 내리쬐었고 구름 한점 없는 청량한 날이었다. 지하철을 두번, 버스를 한번 갈아타는 내내 조용했다. 네 남편이 잠겨있던 장례식장 문을 열어줬다. 우리는 빈소도 없는 장례식장 구석에 덩그러니 앉아시간을 죽였다. 곧 이어 네 어머니가 들어오셔서 우리에게 안부를 물어보셨고, '안녕하세요.'라는 말이 담고있는 의미를 그때 깨달아 어머니께 인사를 돌려드리지 못했다. 아무도, 아무것도 없는 장례식장이었다. 촌스럽게 커다란 상들이 드문 드문 놓여져 있었고, 그 사이에서 네가 피곤하다며 누워있을것 같다는 상상을 했다. 그럼 너는 여기가 장례식장인거 모르냐며 다른 친구가 핀잔을 주고. 너는 악의없이 또 한마디 되받아치고. 늘 그랬듯이. 너는 여기서 어디에서 앉아 모든 것을 관망하고 있을까 하는 의미없는 생각들을 이어가다가 네 동생이 들어왔다. 우리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얼굴을 구기며 문을 박차고 나가는 네 동생의 뒷모습에 내가 있으면 안될 곳에 있구나 생각했다. 네 가족들과 네 친구들은 너를 떠올리게 했다. 너의 부재를 상기시켰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네게 인사를 하겠다고 말할 수 없었다. 염치가 있어야지. 네 가족의 생살을 찢는 자리에 감히 어떻게 내가. 눈을 감고 벽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를 모른 척 하는 일분 일분이 더뎠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만약 한 사람의 상실에 대한 슬픔의 총 량이 정해져 있다면, 적어도 오늘은 그 중에 내 몫은 없어야했다. 아마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였을거다. 그래서 우리는 눈치 게임이라도 하듯이 서로 다른 타이밍에 조용히 슬픔을 삭였다. 누구는 찡긋거리며 웃고있던 영정사진을 처음 봤을 때였고, 누구는 네가 입관하던 순간이었고, 누구는 기사님이 네 관을 들때 너무 가볍다고 말하던 순간이었고, 누구는 밥을 먹다가 울음을 터뜨리는 네 동생의 등을 가만히 쓰다듬던 네 어머니를 보며, 또 누구는 전광판에 나열된 이름들 중 눈에 띄게 예쁜 네 이름을 볼때였다.
네 장례식이 끝나고 우리는 한명의 자취방에 모여 실컷 먹었다. 먹다가 배부르면 영화를 봤다. 자살한 친구가 귀신으로 나타나는 이야기였다. 자기가 죽기전에 처리하지 못한 자위기구들을 부모님에게 들키지 않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죽은 친구의 모습에 굳이 지금 이런걸 보나친구던 마음도 잠시 소소하게 웃었던 것 같다. 영화가 끝나고 유품을 정리 했던 친구에게 네 자위도구가 있었냐고 물어볼까 하다가 말았다. 그리고 잠깐 네가 내 꿈에 귀신으로 나온다면 무서울까 우스울까 좀 고민했다. 그리고 몇 주 뒤, 네 남편의 생일 날, 네가 내 꿈에 나왔을때는 무섭지도 우습지도 않았다. 꿈속에서 네가 남편 생일을 챙겨달라길래, 그날 아침에 잠에서 깨자 마자 적당한 가격대의 기프티콘을 전송했다. 꿈속에서 나온 긴머리의 네가 정말 너였는지가 궁금했을 뿐이다. 네가 나한테 마지막으로 직접 부탁한게 그거라면 들어줘야겠다 싶었다.
널 보낸 다음날은 오전 내내 침대에서 박혀있었다. 이대로 아무것도 안한 채 하루를 보내도 좋겠다 싶다가도, 때 맞춰 배가 고파지는게 새삼스러웠다. 택시를 타고 창밖을 보니 날씨가 여전히 좋았다. 여름 하면 생각나는 짙은 파랑의 하늘이었다. 언젠가 할아버지의 발인날 운구차에서 본 하늘도 그랬다. 좋은날 가는 것도 복이라며 엄마가 그랬었는데. 이게 네 복인구나 싶다가도 그게 무슨 소용인가 싶더라. 사람들이 참 많았고 세상은 아무 걱정없이 돌아가는 것 처럼 보였다. 날씨가 너무 좋았다. 그냥 날씨가 너무 좋아서 창밖만 계속 봤다.
도착한 멕시코식당에서는 뭘 먹을지 결정하기 귀찮아서 냅다 15만원어치를 시켰다. 음식이 가득 차 더 놓을 자리가 없을 지경이었는데 우리는 또르띠야를 추가까지 하면서 술까지 시켜 먹었다. 그 많던 게 어느 구멍으로 들어가는 건지, 4명이서 그걸 다 해치우면서도 신기했다. 식사가 끝나고는 네 남편에게 편지도 썼다. 난 네가 어디 좋은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고 생각할거라고 썼다. 네 어머니께는 차마 쓸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며칠을 겨울을 견디는 동물들처럼 뭉쳐 보냈다.
이 맘 때 쯤이면 굳이 할 필요없는 생각들이 꼬리를 문다. 첫 해에는 '그 때 이랬다면 어땠을까.' 하는 의미없는 상상을 했었고, 다음 해에는 내 모든 우울들에 네 핑계를 댔었다. 그렇게 네 탓을 하다보니까 이제 내가 네 생각을 하면 슬픈건지, 슬퍼지고 싶으면 네 생각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저 네가 남긴 '늘 고마워.'라는 말에 답장을 돌려주고 싶었다. 어떻게 쓸까 보다는 써도 되는가라는 고민은 든다. 나는 고작 너에게 친구일 뿐이어서. 너의 부재는 내 몫이 아닌 상실이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은 내 몫의 슬픔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상처럼 네 얘기를 한다. 네 생일에 모여 맛있는걸 먹고 즐거운 일을 한다. 올해 네 생일에는 너처럼 로맨스 소설도 쓰기로 했다. 창작 해본적 없는 영역의 글쓰기는 상상이상으로 민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끼리 입술을 부비는 장면을 쓰려고 노력하면서 내가 너를 많이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좋은 뮤지컬을 보면 네가 이걸 못봐서 약오르겠구나 싶고, 가끔 운동하다가 네가 가르쳐준 팁이 생각나 배꼽아래를 잔뜩 조이고 코어를 잡으려고 노력한다. 아마 내년에도 내 후년에도 이러고 살 것 같다. 그저 아쉬운 것 하나는 날씨가 좋은 오늘 같은 날 너 빼고 우리끼리 놀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 그 이유 때문에 난 네게 늘 고맙지는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