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어떻게 괜찮아?
내 인생 처음으로 본 타인의 장례식은 중학교 친구의 아버지의 장례식이었다. 부모님 중 한 분을 내 나이 때 여의었다는 게 적잖이 충격이었던 것 같다. 친구 아버지께서 오랫동안 병을 앓고 계신 것도 몰랐고 얼굴을 뵌 건 영정 사진이 처음이었는데... 누가 보면 내가 딸인줄 알 정도로 영정사진 앞에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걸 지켜보던 엄마가 민망해서 부의금을 계획보다 조금 더 넣었다고 말해준 건 나중의 일이다.
몇 번 뵀던 친구의 어머니께서 나를 친구가 있는 뒷방으로 들여 보내주셨다. 가구라고 할만한 것이 없는 방에 상복을 입고 퉁퉁 부은 얼굴로 앉아 있는 친구를 마주하는 건 가슴이 조이는 일이었다. 곱슬이 심해서 늘 머리가 삼각형 모양인 걸 놀리고는 했었는데, 그 푸석푸석한 삼각형 머리채를 누르듯 올라 앉은 흰색 리본이 생경했다. 저 조그만 게 무슨 의미씩이나 있다고 어울리지 않는 리본을 달아야 하지?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우선 손부터 잡았다. 그 때는 더욱 내 감정을 누르는 게 서툴러서 친구의 얼굴을 보자마자 또 눈물부터 펑펑 쏟았다. “괜찮아?” 하는 질문에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냥 그러고 끝냈어야 했는데 습관처럼 “괜찮을거야.”하고 덧붙였다. 그 때 까지 멍하니 앉아만 있던 애가 울기 시작했다. “이게 어떻게 괜찮아?”라고 되묻는 말에는 슬픔보다는 화가 느껴졌다. 그제서야 내가 크게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는지 철없이 흐르던 눈물이 쏙 들어갔다. 눈을 마주치기 힘들어서 머리에 달린 하얀 리본을 오래 응시했다.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변명하다가 수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겨우 미안하다고 덧붙였던 것 같은데 그 이후에는 어떻게 장례식장을 나왔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14살의 나는 ‘타인이 날 위해 마음 아파해주고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줄 때 내가 위로를 받는 것 처럼 타인도 내가 그렇게 해주면 위로 받을 것이다.’라는 전제가 당연했다. 나에게 말이란 건 마음을 모양 그대로 담아내는 비닐봉지였다. 그 모양대로 늘어지고, 가끔은 봉지가 터져버려 주변이 질척거리기도 했다. 없는 말주변을 끌어모아서라도 진심만을 말해야 할 것 같았고, 그러면서 혹시나 내 진심이 곡해되지는 않을까, 이것저것 쿠션을 덧대였다. ‘이럴거면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말지.’ 하면서 후회하고, 또 다음 순간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어떨 때는 ‘어차피 이렇게 된거, 내가 느끼는 감정을 최대한 말해보자.’ 하면서 또 아무 말이나 토해 내 오해를 사기도 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격식 있는 말 속에 담긴 마음을 이 글을 쓰는 이제야 실감한다. 이 글을 쓰면서 그 때를 되돌아보기 전까지 나는 ‘명복을 빕니다.’라는 말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 딱딱한 말이 상실을 경험한 사람에게 대체 어떤 위안을 줄 수 있는 건지, 같잖다고도 느꼈다. 하지만 삶은 복잡해서 내 몫이 아닌 슬픔도 있고, 가 닿지 않는 위로도 있다. 시간이 지나야만 겨우 달래지는 마음도 있고, 감히 괜찮냐고 물어볼 수 없는 순간도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이제 누군가의 슬픔 앞에서 꼭 무언가를 말하려 애쓰지 않으려 한다. 내 것이 아닌 몇 번의 상실의 순간을 더 겪어내며 겨우 남 부끄럽지 않게 격식 있는 말을 건넬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열 두개의 글자가 내가 느끼는 진심을 담기엔 너무 작지 않다는 것도. 그리고 언젠가 닥칠 나의 상실의 순간에 나 역시 그 말로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