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할 때면 그 나라 혹은 지역민처럼 비치나 보다. 수원이 고향인 나에게, 제주도에서 여행자들이 길을 묻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고 제주도민인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길을 묻기도 하신다. 심지어 파리에서 길을 걷는데, 나에게 길을 물어보는 외국인도 있었다.
'Excusez-moi?'
물론 프랑스인이 아닌 프랑스에서 많이 거주하는 동양인 혹은 중국인으로 본 것이겠지만은.
그만큼 익숙하고 편안한 마음 때문인지 누구든 쉽게 다가와 말을 건네고, 나도 말을 주고받다 집에 초대받아 차를 마시다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다 나왔다.
대학교에 입학하여 친구들과 함께 처음으로 4박 5일이라는 장기간 내일로 여행을 떠났다. 4일째 되던 날 고창에 도착하였다. 모텔에서 숙박하려고 길을 묻다 한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노인정에 계시는 할머니들에게 허락을 받고 숙박하게 되었다. 밥은 바깥에서 먹으려 하였지만 할머니들이 '손녀 생각이 나네~' 구성진 말과 함께 푸짐한 밥을 얻어먹었다.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오신 할머니는 여행길에 배고프지 않게 떡을 먹으라며 가래떡을 챙겨주셨다. 반찬이 든 통과 가래떡, 쌀밥을 가방에 담고 도움을 받았던 아저씨는 고창 여행을 걱정하시면서 차를 태워주시면서 가이드를 해주셨다. 덕분에 가고 싶었던 벽화마을과 검색으로는 나오지 않았던 고인돌을 함께 보며 고창 역사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여행길에서 운처럼 만났던 고창에서의 일은 친구들과 만날 때면 즐겁게 회자되었다. 단지 그때의 운이었구나 생각할 때 즈음. 직장인 1년 차 홀로 군산 여행을 떠났다. 열심히 길을 걷다 '홍차와 국화'찻집 앉아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책을 읽었다. 특별히 계획 없었던 여행길이었기에 한참을 홀로 책을 읽었고, 찻값을 치르던 중 주인분께 책을 두 권 선물을 받았다. 책으로 무거워진 가방을 메고 군산 여행 계획을 물어보시는 주인분의 이야기에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새로 생긴 임피역 가볼래요?'라고 물으셨다. 시간이 많아 '네'라고 대답하였고 공원 한 바퀴를 둘러보고 카페가 마감하는 시간에 다시 앞으로 돌아와 차를 타고 임피역을 둘러보았다. 볼 것 많지 않은 임피역에서 기념사진을 찍어주셨고, 밥을 먹자라고 말하시며 군산 맛집이라 하는 체인점 생선구이집에서 소주 한 병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동백숲을 보러 선흘리에서 내렸다. 사람이 잘 오지 않는 선흘리로 발걸음 하는 나와 내 친구를 보고 '어디를 가니?'라고 물으셨다. '동백숲 보러 가요'라고 말하자 길을 알려주셨고, '커피 한 잔 먹고 가' 할머니 말에 '네'라고 대답하였다. 집으로 들어가자 할머니는 무거운 이불을 빨랫줄에 걸어달라 부탁하셨고, 친구와 함께 물을 먹어 묵직한 이불을 빨랫줄에 걸었다. 그리고 밥과 커피를 얻어먹고 '건강히 지내세요'인사하며 집을 나왔다. 건강히 잘 지내세요?라고 글을 쓰는 지금도. 잘 지내시는지 궁금하다.
여행지에서 그 날의 특별한 일이라기에는 꽤 반복되었던 초대에 시간은 여행은 특별한 날로 만들었고, 도시에서 움츠렸던 마음을 여행지에서는 한 없이 늘렸다.
여행지에 돌아온 후, 열심히 취업을 준비하였다. 며칠 동안 노트북 속 자기소개서란을 바라보면서 자소설을 써 내려갔다. 진실을 써도 자소설을 써도 서류전형과 면접 사이에서 미끄러지는 날들이었다. 5개월 동안 바닥을 걸었던 나를 수면 위로 던져 열심히 준비하였지만 그 마저 면접에서 탈락했다. 면접 탈락 통보와 함께 제주도 비행기를 예약하였다.
산에 올라가 탁 트인 곳들을 바라보고 싶어 종달 오름을 오르기로 하였다. 버스를 타고 기사님께 인사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너무나도 제주 도민스러워 보이는 할아버지가 무언가 물으시려다.. 잠시 멈추고 도민인지를 물으신다. '아니요'라고 웃으며 대답하자 할아버지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시며 자리에 앉으신다. 할아버지 반응에 익숙히 웃으며 종달초등학교에서 내렸다. 따뜻한 햇볕에 지그시 눈 감으며 걸어가는 중 할머니가 이야기를 건네신다. '어디 가나?'묻는 할머니 물음에 '종달 오름이요'라고 말하자 저쪽이 가까운데 왜 여기서 내렸다는 할머니 물음에 웃으며 '좀 더 걷고 싶어서요'라고 말하였다. 할머니는 무거운 짐을 보이시면서 '좀 들어주면 안 될까?'라는 말과 동시에 들었더니 묵직하였다. 할머니는 미안하신지 '종이 접기를 하는데.. 책 5권을 받아서'라고 하시며 작게 웃으셨다. 나는 그 웃음이 너무 좋아서 함께 웃으며 짐을 들었다. 그러던 중 할머니는 내가 들고 있던 짐을 드시면서 '저쪽이 지미 오름이야. 가봐'라고 하셨고 '감사합니다'인사와 함께 길을 가려는 중 할머니께서 '차 한 잔 마시고 갈래?'라고 하셨다. 시간이 많은 나는 '네'라고 대답하며 다시 걸음을 바꿔 할머니 집으로 걸어갔다. 할머니는 짐을 들어줘서 고맙다 다시 한 번 인사하셨고, 나는 웃으며 '괜찮아요. 안 무거웠어요'라고 말하였다. 할머니는 '커피? 차?'라고 물으셨고. 나는 '커피 마실게요'라고 말하였다. 할머니는 부엌으로 들어가셨고 유리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쪼르르 무언가 담기는 소리와 함께 할머니는 컵을 건네주셨다. 직접 캐온 칡, 계피를 함께 우린 물이라며 건강에 좋으니 마시라고 하셨다. 달지 않은 수정과 같은 맛에 할머니를 바라보며 '맛있어요'라고 말하니 할머니는 웃으면서 '그렇지?'라고 말하셨고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시면서 '감자 먹을래?'라고 말하셨고 '네'라고 말하자 할머니는 삶아놓은 감자와 고구마를 데우셨다. 옆에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는 나를 보시더니 '먹어'라고 말하시며 색색깔 사탕을 주셨다. 할머니는 쟁반 위에 가지런히 고구마와 감자를 가져오셨고, 옆에 놓인 설탕을 가리키며 '같이 찍어먹어. 맛있어~ 산에 올라가니 많이 먹어'라고 하셨다. 할머니께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감사합니다' 인사를 드리면서 집 주변을 바라보았다. 작게 놓인 종이 접기들이 예쁘게 자리마다 장식되었고, 무엇인지 물었더니 할머니는 일본에서 지냈을 때 배운 것이라 하면서 전단지를 잘라서 만드신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나의 반응에 즐거우신지 다시 일어나 부엌에서 칼을 가시고 오셔서 만드는 법을 보여주셨다. 할머니는 만드시면서 즐거운 미소를 지으셨고,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시더니 만드신 것을 주시면서 가져가라 손짓하셨다. 예상치 못한 선물에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렸더니, 할아버지가 알면 안 된다고 하시는 사인을 보내시며 얼른 내 가방 안에 넣어주셨다. 길을 가다 웃음 지으며 가방을 들어드린 것인데. 주신 것들에 고마움이 한 껏 들어 종이와 펜을 꺼내어 할머니 할아버지 얼굴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무언가 드리고 싶은 마음에 부족한 그림으로 쓰슥 그렸더니 할머니는 부끄러워하시면서 좋아하셨다. 부끄러우신지 일어나 자리를 옮기시면서 궁금한 마음으로 그림을 흘끗 바라보셨다. 완성된 그림을 보신 할아버지는 '이거 영정사진으로 써도 되겠네~'라고 말하셨다. 나는 할머니 그림이 외로울까 봐 할아버지 얼굴도 그리고 싶다하시니 쓰고 있던 안경을 벗으시고 한 껏 진지하면서도 긴장된 표정을 지으셨다. 할아버지의 기대만 한 그림이 되지 못했지만. 완성된 후 성함을 물어 이름을 써드리니 한 동안 말없이 보시면서 기뻐하셨다. 할머니는 기쁘신 마음을 '밥 먹고 가'로 표현하셨고 이번엔 약속이 있었기에 할머니와 할아버지께 '건강히 잘 지내세요' 인사드리며 아쉬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할머니가 주신 칡들이 마당에 말려있는 것이 보였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마음에 고마운 마음을 느끼며 종달 오름으로 발걸음 하였다. 종달 오름에 도착하니 초등학생들이 소풍을 나와있었고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나에게. 교장선생님으로 보이는 분은 '밥 먹고 가세요'라고 말하셨다.
마음이 저절로 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