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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ji Jeon May 15. 2016

미술관 방랑자, 미술관 여행자 5

그러나 미술관 방문객은 아닙니다

5. 거부할 수 없을걸, 혹시 제주시 탑동에 가게 된다면

<제주 아라리오 뮤지엄 탑동 시네마>


  새빨갛다. 저 너머 보이는 탑동 바닷가의 파란 빛깔이 무색할 정도로, 제주 아라리오뮤지엄 탑동시네마는 그 존재감이 멀리서도 가득하다. 우선, 이름부터 이렇게 특이할 수 없다. 천안 아라리오뮤지엄, 삼청동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에 이어서 제주도에도 자리한 분점들은 다들 현대미술관과는 어딘가 동떨어진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번에 방문하게 된 탑동시네마, 그 옆에 위치한 탑동바이크샵, 그리고 동문모텔 1과 2 총 네 곳이 그것이다. 모두 아라리오뮤지엄으로 개조되기 전의 건물 이름을 따왔다. 여기에서 쉬이 느낄 수 있듯이 각 건물은 골조 하나 바뀌지 않은 채 옛 건물(모두 제주도에서 ‘이름 좀 날렸던’ 건물들)의 느낌을 그대로 살려 간직하고 있다. 

  어릴 적 탑동시네마는 주말마다 사람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옆에 위치한 방파제 부근의 탑동 광장에서 아이들이 솜사탕을 먹으며 자전거를 탈 때, 부모님과 언니오빠들은 이곳을 찾곤 했다. 그러다 제주에도 어느 순간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자리잡게 되면서 탑동시네마는 명성을 뒤로 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내가 만난 아라리오뮤지엄은 같은 자리에서 탑동시네마의 기억을 다시금 끄집어내고 있었다. ‘축 개관’ 메시지가 박힌 거대한 거울, 작은 상영관 속 천장 부근에 자리하던 프로젝터. 그 안에서 팝콘을 깨작이거나 상영관을 향해 뻗은 거대한 계단을 뛰어올라갈 일은 더 이상 없어도, 버려진 줄로만 알았던 건물에 발을 들이며 어딘가 새로워진 어린 시절의 한 파편을 주워 올리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기쁜 일이었다. 

  금요일 오후 4시, 미술관 앞 카페에서 몇 시간을 기다리다 큐레이터 투어 시간을 딱 맞추어 입장했다. 자동문이 열림과 동시에 크리스탈 구슬이 몸 곳곳까지 덮인(곳곳에 박힌 것이 아니라, 정말 곳곳까지 완벽하게 구슬로 덮인) 밤비 가족 5마리가 관람객들을 반긴다. 일본 작가 코헤이 나와의 이 작품은 아라리오뮤지엄 제주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되었을 정도로 눈에 깊이 스며드는데, 본래 동물이 가진 질감 대신 내면의 본질적 형태를 직관적으로 드러낸다. 이곳의 공간 구성적 특징 중 하나를 꼽는다면, 아무리 좁은 층이라도 각 공간을 작가별로 구분해놓고 그 작품세계를 하나의 방으로 묶어두는 것에 있다. 전시 관람이 시작되는 1층부터 관람객들은 내부 공간이 전체적으로 코헤이 나와, 우고 론디노네 등의 작가들이 보여주는 세계를 기준으로 하여 세 개의 공간으로 나뉘었다는 사실을 쉽게 인식할 수 있다. 이 덕분에 각기 뚜렷한 작가들의 관점을 보다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1층 관람 후 5층으로 곧바로 올라가버린다면, 지하 1층의 사운드 인스톨레이션을 놓치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시야에 확 들어오는 안내표지가 없어 안타까움을 느꼈던 이곳의 구석에는 리차드 세라의 작품이 숨어있다. 그리고 건물의 꼭대기, 5층과 4층에 올라가게 되면 공간 전체를 한껏 잡아먹는 ‘거대작품’들에 홀리고 만다. 김창일 회장이 초기에 주력하던 한국 근현대미술품 컬렉션에서도 볼 수 있는 김인배, 강형구 작가의 작품과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인도 및 동남아시아 신진작가 컬렉션 내의 팔로마 바가 바이즈 작가의 작품 또한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앤디 워홀의 판화도 걸려 있는데, 치열한 진품 경쟁에서 살아남은 이 작품은 226번째, 즉 진품이라는 인증을 받았다. (계속해서 복제가 가능한 판화의 매체적 특성상 그의 작품은 250번째까지만 진품으로 인정된다고 한다.)

  그리고 하나 더, 여느 미술관과 달리 흰 바탕의 벽이 없다는 점에서 아라리오뮤지엄 탑동시네마에서는 괜스레 따스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여백을 굳이 두는 대신, 관람객이 빈틈 하나 없이 벽면을 채우는 작품들을 두 팔 벌려 안으며 그 안의 모든 감정을 흡수하기를 바라는 미술관의 의도가 다분하다. 

  아라리오뮤지엄의 전시 회전은 그다지 빠른 편이 아니다. 즉, 평면, 조각, 설치 등 장르를 불문하고 동서양까지 모두 아우르는 현대미술 컬렉션을 지금 이 글을 보는 독자들도 즐길 수 있다. 안일한 제주도민의 입장에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제주도 뮤지엄 투어가 이젠 아라리오뮤지엄 네 곳을 시작으로 성행할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http://magazine.urbanpoly.com/?p=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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