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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과 May 15. 2016

인도는 정말 위험한 나라일까

어느 시골길에서 벌어진 황당한 추격전


위험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내가 인도에 간다고 했을 때 이렇게 물었다. 다들 얼굴 한가득 근심을 안은 채였다. 인도 여행을 기록한 에세이에는 늘 안전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한 인도 가이드북 작가는 필명을 ‘환타’라고 지었다. 인도에 대한 환상을 깨주겠다는 의도다. 인도는 도대체 어떤 나라일까? 인도가 결코 만만한 여행지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여기 인도에서 직접 겪은 한 가지 이야기가 있다.

       


 

 남인도 고아에서 함피로 가는 야간 버스 안에서의 일이다. 인도에 발을 디딘지 고작 1주일째였다. 아직 인도라는 나라가 낯설고 모르는 게 많았다. 더구나 야간 버스는 처음이었다.

 인도의 대중교통은 일부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열악하다. 냉난방시설은 고사하고 창문이 없는 것도 간혹 있다. 그나마 있어도 제대로 닫히지 않아 말썽을 부릴 때가 많다. 더구나 노면울퉁불퉁해 야간 버스를 타면 어지간해서는 제대로 잠을 청할 수 없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고아에서 함피는 무려 10시간이었다. 그 긴 시간을 대낮에 날려버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


 “호스펫! 함피! 호스펫! 함피!.”

정류장의 수많은 버스들 속에서 차장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내가 타야 할 버스가 도착했음을 알렸다.

 “함피로 가는 버스가 맞죠?”

 나는 몇 번이나 확인하며 미리 받아둔 티켓을 내밀었다.

 버스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몸 하나를 간신히 뉘일 좁은 공간에 형편없는 매트리스가 놓여있었지만 자리마다 커튼이 쳐져 있어 개인 공간이 확보됐다. 조금만 누워 있어도 코밑에 까만 먼지가 앉는 슬리퍼 기차보다는 나았다.

     

대부분의 야간 버스는 2층으로 되어있고 전석이 침대칸이다.


 “운이 좋으면 누워서 별을 보면서 갈 수도 있어요!” 고아의 해변에서 만났던 한 여행자의 말이 떠올랐다.

 창밖엔 정말 별이 떠있었지만 잘 보이지 않았다. 창이 워낙 더러워서 별인지 얼룩인지 구별이 안됐다. 남인도의 1월 날씨는 걷잡을 수가 없다. 한낮엔 30도까지 치솟으며 더위가 기승을 부렸지만 해가 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쌀쌀해진다. 그래도 밤하늘을 감상하고 싶어 조심스럽게 창문을 열었다.

 그때 하필, 갑자기 오줌이 마렵기 시작했다. 버스를 찾는데 급해 화장실에 다녀오는 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아직은 버틸만했다. ‘중간에 한 두 번은 서겠지’ 스스로를 달래며 아무 일 없다는 듯 먼 산만 바라봤다. 주문이 통한 걸까. 30분 정도 달리던 버스가 갑자기 멈춰 섰다. 침대 밖으로 나가 바깥 상황을 주시했다. 이미 버스에 타고 있던 여행자들 몇몇이 내려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는 확인할 것도 없이 부리나케 내려 한적한 곳을 찾았다. 인도라고 화장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런 시골에서야 아무도 화장실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화장실을 물으면 대개 웃으며 으슥한 구석을 가리키기 마련이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작은 컨테이너 건물이 있었다. 나는 건물 뒤로가 볼일을 보기 시작했다. 맑은 공기가 폐 안 가득 들어왔다.      

 

 1분이나 흘렀을까. 일을 끝낸 나는 몸과 마음이 모두 가벼워 진채로 공터로 나왔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버스가 있어야 할 자리에 버스가 없었다.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둘러봤지만 버스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잠시 내가 시공간을 초월해서 다른 공간에 온 것은 아닌가 의심했다. 하지만 내리면서 보았던 작은 상점과 몇 대의 다른 차들까지 모두 그대로 있었다. 없어진 건 내가 타고 온 버스 하나였다. 내 손엔 습관적으로 들고 나온 휴대폰 하나만 들려있었다. 

 나는 이날, 사람이 너무 놀라면 오히려 침착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잠깐 문제가 있어서 차를 뺀 것이겠지. 나는 옆에 서있던 덩치 큰 아저씨를 붙잡고 물었다.  

“버스 어디 갔어요.”

놀라는 건 그 사람이었다.

“버스? 방금 출발했는데? 너 못 탄 거야?”


 그 순간 나는 인도에 오기 전 읽었던 온갖 여행기들이 떠올랐다. 공항에서 짐이 도착하지 않아 공항 노숙을 하게 된 사연, 음료수를 건네는 척하며 약을 먹이고 배낭을 훔쳐간다는 인도의 전통적 수법, 여권과 지갑을 도난당하는 바람에 가진 물건을 하나씩 팔기 시작했다는 사람의 이야기.. 소변을 누다가 야간 버스에서 낙오된 사람의 이야기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나는 덩치 큰 아저씨가 가리킨 방향으로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뛰는 것과 동시에 아저씨가 날 붙잡았다.

“안돼, 안돼, 그건 불가능해!”

 그리고는 옆에 있던 오토바이 탄 남자에게 힌디어로 무언가를 말했다. 그러자 오토바이를 탄 남자가 내게 타라고 손짓했다.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나는 잽싸게 올라탔고 그는 곧바로 달리기 시작했다. 물론 버스는 보이지 않았다. 지금 가는 방향이 맞는지도 확신이 없었다. 혹시라도 갈림길이 나와 버스가 다른 길로 가버리면 큰일이었다.

“너 버스 찾을 수 있겠어?”

오토바이가 굉음을 내며 달리고 있었다. 남자는 말없이 계속 속도만 올렸다.

“이봐 이 길이 맞는 거야? 버스 잡을 수 있겠어?”         

그제야 그가 나를 돌아봤다.

"걱정하지 마. 괜찮아. 따라잡을 수 있어."

그는 평온해 보였지만 진지했다. 그런 그의 모습이 날 조금이나마 안심시켰다.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 근데 돈은 있어?”

내가 큰소리로 대답했다.

“어! 버스 안에 있어! 버스!”

남자는 더욱 속력을 냈다. 10분쯤 달렸을까. 멀리 버스가 보이지 시작했다. 나는 눈물을 흘릴 뻔했다. 다행히 버스는 천천히 달리고 있는 편이었다. 오토바이가 버스 바로 옆으로 붙어 클락션을 울리기 시작했다.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았다. 나는 휴대폰을 손에 꼭 쥔 채 팔을 흔들었다. 다행히 버스가 멈췄다. 나는 오토바이에서 내려 버스로 올라탔다.


 “도대체 어딜 갔던 거야? 거긴 휴게소가 아니었어!”

 차장은 혼비백산이었다. 잠을 청하던 승객들도 커튼을 젖히고 일어나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 보기 드문 광경을 구경했다.

 나는 황급히 내 자리로 가 지갑을 꺼냈다. 오토바이가 버스 문 앞에서 의기양양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고마운 마음이 앞섰다. 그가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버스로 돌아온 것이 기적 같았다. 나는 지갑에 있는 돈을 모두 줬다. 다행히 지갑에는 50루피(약 900원)밖에 없었다. 오토바이를 탄 남자는 금액을 보더니 이 정도면 됐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는 오토바이를 몰고 유유히 돌아갔다. 버스는 다시 출발했다. 자리에 앉아 놀란 마음을 진정시켰다. 배낭, 옷가지, 여권 등이 모두 제자리에 있었다. 차장은 미안했는지 괜히 나를 힐끗힐끗 쳐다봤다. 한밤중의 추격전이 그렇막을 내렸다.


오래된 시골 함피. 버스가 도착하는 시간은 대부분 새벽녁이다.

 인도는 불편하고 준비가 많이 필요한 나라다. 기차는 매번 도착시간을 넘기고 버스는 안내 방송은커녕 노선표도 찾기 힘들다. 거리 곳곳에는 소똥이 즐비하고 세발 달린 오토바이 릭샤는 싸구려 매연을 내뿜는다. 위 이야기처럼 방심했다간 큰 위기에 처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인도에서 겪은 위험은 이 사건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오히려 나는 푸근한 정을 느낄 때가 많았다. 나를 도와줬던 배 나온 아저씨와 오토바이를 탄 남자처럼, 인도인들은 도움을 청하면 늘 자기 일처럼 나섰다.


 류시화 작가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은 인도를 아름답게 묘사한 여행기 중 하나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인도 여행을 꿈꾼다. 그래서 인도에 대한 환상을 만든 주범으로 꼽히기도 한다. 작가는 최근 개정판에서 이렇게 썼다.

 

 인도를 여행하고 온 사람들은 처음 인도로 떠나는 사람들에게 많은 충고를 한다. 나 역시 '조심하라'고 자주 조언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관념과 편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물론 지나친 환상은 위험하다. 여행은 어딜 가나 낯설고 불편한 것들이 따른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녀도 괜찮은 그런 여행지는 없다. 인도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들의 이야기에 겁을 먹고 고민하기 보단 지도를 펼쳐놓고 꼼꼼하게 준비해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보다 멋진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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