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하기보다 빼기가 먼저다
단순하게 살아라
현대인은 쓸데없는 절차와 일 때문에 얼마나 복잡한 삶을 살아가는가?
-이드리스 샤흐-
비움과 채움
“요즘 아파트가 평당 얼만데 이 공간에 잡동사니를 놓아두나요?” 언젠가 공간정리를 도와주는 TV 프로그램에서 나온 말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며 내 집에는 점점 짐들이 늘어갔다. 게다가 최근 들어 이사를 앞두고 넘쳐나는 짐에 스트레스를 받는 중이었다.
유명 유튜버이자 정리 정돈가로 활동 중인 썬더 대표 이지영은 이렇게 말한다. “공간을 채우기 이전에 비움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국어사전에 비움이란 ‘일정한 공간에 사람, 사물 따위를 들어 있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라 정의되어 있다. 비워야만 꼭 필요한 것들로 재배치하고 아름답고 편리하게 정리할 수 있다.
우리 일상에도 정리가 필요하다. 자기 관리가 철저한 사람들은 보통 매일 할 일을 정하고 중요도를 고려하여 순서를 결정한다. 하지만 정작 할 일은 점점 많아지고 언제나 바쁘다. 자신을 돌아볼 새 없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다. 혹자는 자신의 능력에 한계를 두지 말라 하지만 현 상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자신을 돌보지 못한 채 나는 할 수 있다는 의지에 너무 집중한다면 건강에 문제가 생기거나 자칫 번 아웃이 올 수 있다.
서랍마다 가득 들어차 있는 잡동사니처럼 혹시 필요 없는 것들이 우리 일상에 구석구석 자리 잡고있는 건 아닐까? 귀중한 시간 속에 채워둬야 하는 중요한 것들을 배치하기에 공간이 부족하다면 무언가 빼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어디부터 빼야 하는 건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여유 공간 먼저 만들기
나는 언제나 바쁘고 피곤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어떻게든 바꿔보고 싶었지만 세 아이를 챙기고 신경 쓰느라 바빴고 내게 주어진 여러 역할이 버거웠다. 바꾸기 위해 들여야 하는 에너지 또한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런 나에게 집안 정리는 피곤하고 무기력함을 깨워주는 정리법 중 하나였다. 부분부분 하루에 할 수 있는 양만큼 하다 보면 1~2주면 집안 전체가 정리되곤 했다. 참 이상했던 건 정리를 다 했다고 생각했음에도 막상 전체를 둘러보면 크게 바뀐 것이 없다는 거다. 위치를 여기서 저기로, 탁자 위에서 서랍 안으로 옮겼을 뿐 총량은 거의 바뀐 것이 없었다.
이렇게 해서는 내가 원하는 공간이 나올 리가 없다는 걸 깨달은 나는 하루에 무려 다섯 개씩 무조건 버리기로 했다. 한동안은 매일 스무 개, 서른 개씩 비울 만큼 신이 났다. 하루 5개 비우기가 어려워질 때쯤 비로소 내 눈에도 비워진 공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정리 정돈가나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사람들에 비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예전의 집과 비교해보면 뭔가 허전하다 싶을 정도로 훤해지고 정돈된 느낌을 받고 있다. 이제는 작은 소품을 진열해 두어도 눈에 들어올 만큼 여유로운 공간이 생겼고, 공간이 없어 창고에만 박혀 있던 가전 또한 배치 가능한 자리가 생겼다.
일상도 비우기
나의 하루는 이것저것 셀 수 없이 복잡했다. 철없는 세 아들들의 스케줄부터 챙겨야 할 학교 소식들, 작은 소모임들, 참여해야 하는 여러 강좌, 남편의 일과도 챙겨야 했고, 가사 일과 친정 시가 일도 빠지지 않았다. 정리가 필요했다. 그러려면 일상도 비움이 절실했다. 내가 꼭 하지 않아야 할 일들은 나에게서 비우고 가족 구성원 각자 일과에 채울 수 있도록 했다. 처음에는 나 없이 가능할까? 했던 일들도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 점점 안정화가 되어갔다. 아이들은 스스로 하는 힘을 키우고 책임도 스스로 지며 도움도 청할 줄 아는 아이들로 변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내가 통제하기 어려운 일도 있다. 남편의 일 중 내 도움이 필요한 것들이나 친정 및 시가와 관련된 이벤트는 한 주 정도 미리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참여해야 할 강좌들은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니면 대체할 수 있는 책으로 시간을 아꼈다. 그동안 당연한 듯 해오던 일과 밀려오는 주위 부탁도 내게 정말 중요한 것을 하기 위해서 부탁한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기도 하고 가끔은 도움을 받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거절하는 것과 부탁하는 것 그리고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이해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어느 날 오전 일과를 마치고 거실에 앉아 커피 한잔을 하며 묘한 느낌을 받았다. 뭔가 있었는데, 뭔가 있을 텐데. 예전 같으면 아뿔싸 또 잊었네. 큰일 났다! 하고 벌떡 일어났을 그 순간, 와. 아무것도 없네! 언제부터였을까 조금씩 나의 하루에 틈이 생기기 시작한 것을 눈치챈 순간이었다.
일상의 정리로 여유를 즐기다.
그때부터였다. 나에게 중요하고 당장 해야 하는 일, 하지만 충족되지 않은 일이 뭘까? 잘 챙기고 싶지만 지치고 힘들다는 이유로 배달 음식에 의존하고 외식을 일삼던 나는 가족 식사 준비를 비워진 시간에 넣었다. 아이들 등교와 동시에 한 시간 반, 오롯이 식료품 준비와 그날 저녁 식사 준비까지 마쳐놓으니 지난날 냉장고에 묵혀 빛을 못 보던 식료품이 언제부턴가 조리대에 올랐고 장 보는 횟수도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영양을 챙긴 다양한 메뉴와 가족들의 즐거운 식사 시간은 나의 하루를 더 풍성하게 하고 있었다.
내게 중요한 일이 충족되니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만족감이 매우 컸다. 공간도 비운데다 치울 것도 버릴 것도 줄고 시장도 적게 보니 시간은 더 여유로워지고 정리된 냉장고 공간처럼 내 머릿속도 내 일상도 깔끔하게 정리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여유로운 시간은 점점 늘어났다. 처음에는 책도 보고 블로그도 끄적여보았다.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허우적대며 참여하지 못하던 새벽 글쓰기 캠프가 다시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낮의 여유는 그대로 가지고 가자. 한낮의 여유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와 이제는 새벽 시간에 기꺼이 일어나 글을 쓰고 싶어졌다.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었으니 이 휴식 같은 시간에 글을 쓰는 것도 이제는 가능하다! 아니, 가능을 넘어 생각만 해도 즐겁다.
일상이 작품이 될 때
우리는 타인의 잣대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해도 괜찮을까?’‘남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이런 경우에 남들은 어떻게 할까?’ 이제는 이렇게 해 보자. 이건 나에게 중요해. 이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을 하기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뭘까? 이 과정에서 빼야 할 것은 과감하게 빼는 판단력과 실천하는 추진력을 발휘해보자. 주위의 도움이 필요할 땐 망설이지 않았으면 한다. 누군가의 요청에 기여하고 싶은 당신을 아끼는 사람도 생각보다 많다.
도자기를 빚기 전의 흙은 매우 거칠고 질척한 덩어리에 불과하다. 특정한 모양이 없이 균형이 맞지 않은 울퉁불퉁한 흙에 지나지 않는다. 물레에 올려 돌리는 과정에서 매끄럽게, 어떤 부분은 들어가게 또 다른 부분은 구부러지게 다듬는 과정을 거쳐 빼고 더하고를 반복하며 아름다운 곡선을 드러내는 작품으로 탄생한다. 우리의 일상도 현명하게 빼고 중요한 것을 더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다듬어 나갈 때 여유롭고 아름다운 작품으로 태어날 수 있다.
비워진 시간에 가장 나에게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을 먼저 넣고 일상생활을 해 나가보자. 스스로에게 가치 있는 일에 투자한 시간은 조금씩 조금씩 생기를 불러온다. 또한 나에게 두 배 세배의 에너지를 주는 원천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