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속에, 우리.

나의 소중한 진미, 은영에게.

by 내 곁

수업을 땡땡이치고 같은 주제로 3시간이고 4시간이고 떠들어대던 지하철역 앞 파파이스는 이제 없어진 지 오래겠지.

메뉴에도 없는, 서비스로 주는 가느다란 떡볶이가 맛있어서 가곤 했던 술집.

계란을 얹어 볶아주던 밥이 맛있었던 정문 앞 즉석떡볶이집.

바로 튀긴 바삭함이 너무 좋아서 혓바닥을 데어가면서 먹었던 핫도그와 강의실 현관 앞에 있던 자판기 커피.

매점에서 사 온 과자를 사발면 라면국물에 찍어먹던 강의실 뒷 계단.

그리고 우리가 자주 모였던, 클래식 기타반이라고는 하지만 클래식기타 현을 튕겨보는 날은 손에 꼽았던 우리의 동아리방.


학교를 졸업하고도 꽤 오랜 기간(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시절을 잊지 못하고 사는 것은, 그 시간들 속에 너희가 있기 때문이었다.


공부만 하던(공부만 하지는 않았겠지만... 공부를 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리던) 고등학교 시절을 벗어나 허겁지겁 <자유>라는 시간 속에 무방비로 내던져지게 되었을 때, 그 <자유>를 내가 마땅하고 타당하고 예쁘게 누릴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시절들 속에 너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시작한 연애에 얼핏 손이 스친 그 작은 순간마저도, 마치 어제인 듯 사실적으로 두고두고 회상할 수 있는 것도 그때 너희들과 낱낱이 해부했던 그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겠지. 아팠던 짝사랑도, 설레는 첫사랑도 모두 너희들과 함께였기 때문에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그 시기는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쳤고 우리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벌고, 비싼 음식보다는 영파여고 앞 저렴한 떡볶이와 김밥에 열광했지만 그럼에도 그 시절이 풍요롭게 기억되는 건, 아주 작은 돈이라도 수중에 생기면 제일 먼저 친구들과 함께 탕진해 버렸던 너희들의 화끈한 방탕함 때문이었다는 것도 알지.


힘든 일도 없지 않았지만, 그 어둡고 긴 터널을 펑펑 눈물 쏟고 훌훌 털어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도 너희가 곁에 있기 때문이었다.


어른이, 이제 너무나 어른이 되어 버린 내가,

그래도 조금의 순수함이라도 유지하고 있다면,

그것은 너희들과 보낸 그때,

눈물 나게 좋았던 바로 그때,

그 시간, 그 추억, 그 기억들 때문이다.

지금도 그때의 순수함으로 나를 바라봐주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너희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해.

친구라는 이름의 진짜 의미를 마음속으로 가득 느낄 수 있게 해 준, 나의 진미, 은영.

너희들을 사랑해. 그리고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