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갈비를 재우고, 봄나물을 무치며 활기차게 말했다.
"나중에 어른들 다 죽고 나면 할머니 밖에 없다. 우리 두 집, 너네집 우리집. 그냥 우리 두 집이서 왔다갔다 하면서 그렇게 사는거야. 너네들한테는 별의별거 다 줘도 하나도 아깝지가 않다. 무슨일 있거들랑 이 집으로 와. 내가 밥해주고 해줄테니까 걱정말고."
다음 날 할머니는 구급차에 실렸다. 폐에 물이 찼다고, 굉장히 위중한 상황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몇 일째 중환자실에 계신다.
할머니 연세 88세. 건강을 그리 자신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었는데 나는 할머니가 하시는 말들이 다 그럴듯했고, 할머니는 정말 그럴 것이라고 믿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살았다.
할아버지는 풍을 맞았고, 치매가 있어 누워만 계셨다. 내가 가면 반가운 눈빛을 하고 손을 뻗으셨는데 내 손을 잡는 손아귀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기저귀를 차고 계셨고 죽으로 때우는 식사도 혼자는 할 수 없었다. 동주민센터에서 요양등급을 받아 요양병원에 모시라는 말을, 할머니는 그래도 내 손으로 보낸다며 강경히 마다하셨다.
할머니가 없는 할아버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끼니때는 놓쳤고, 기저귀는 갈아주지 않아 변이 눌어붙어 씻기지 않았다. 긴급돌봄서비스라는 것이 있었지만 남자의 배변을 갈아줄 수 있는 요양보호사는 극히 드물었다.
이제 75세인 엄마는 병원에 가서 생명연장포기신청서를 작성하고 오겠다고 했다.
말만 들어도 속이 상해서 끝까지 내가 봐줄께 말은 했는데, 막상 나 스스로는 내가 먼저 가서 생명연장포기신청서를 작성하고 와야겠다 싶었다. 남은 사람들에게 재정적, 심리적 부담을 주고 정작 나 자신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세상을 산다는 게 너무 괴로울 거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엄마는, 그렇게라도 내 옆에 남아있어주면 싶다.
나의 외할머니는 약한 치매를 앓으신다고 이모와 삼촌이 바로 요양병원으로 보냈다.
일주일 후에 요양병원에서 본 할머니는 심한 치매를 아주 오래 앓은 그런 노인이 되어 있었다. 빛을 잃은 눈빛, 줄줄 흐르는 눈물, 움직이지 못하는 다리. 세상에 대한 부담을 놓으니 할머니는 거죽만 남은 사람 같았다. 보고오면 두고두고 속상한 마음에 할머니를 차마 보지 못하는 시간이 늘어났고 할머니는 그렇게 내 곁을 떠났다.
그 때 생각했다.
앞으로는 어떤 어른도 저렇게는 보내지 않겠다고.
그런데 막상 현실이 되니 나는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
나도 나이를 먹었다.
그리고 저렇게 나이를 먹어갈 것이다. 나이는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으니까.
갑자기 내가 나 스스로를 돌볼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내가 남편을, 아이들을 챙길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그때는 어떻게 해야하나.
이제, 지금 나는 무엇부터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