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입사하고 1년이 지나고 안정화가 되어갈 즈음, 슬슬 뭔가 '기획'스러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몸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회사의 나름의 캐시카우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신규 사업을기획해 보면 어떻겠냐는 이야기가 솔솔 나오기 시작했다.
오오 이번에야말로 재미난 기획을 해볼 수 있겠구먼.
회사 임원진에서 흥미롭게 보고 있던 건CRO 사업이었다. 사실 아직 본격적으로 연구소 세팅을 진행하지 않은 터였기 때문에 그를 위해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도 여럿 있었다. 게다가 초기 자본 투자가 꽤나 많이 필요한 상황이어서 실무진 사이에서는 안될 사업이라고 내부적으로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원진에서는 한번 기획해 보자는 의견이 다수여서 일단 우리는 기획을 해보기로!
CRO사업을 하려면, 먼저 회사 소유의 연구시설이 필요하다.연구시설이 얼마나 갖춰져 있는지에 따라 실험의 단계나 규모(어느정도의 실험을 할 수 있는지) 케파에 대한 부분을 정해야한다. 이에 따라서 프로그램(상품)을 기획하고 이를 실행할 인력계획도 짜야한다. 이때 실험을 할 연구원뿐만 아니라 행정지원을 해줄 인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학교에 계신분들은 사실 학생들이 거의 이런부분을 자체적으로 많이 해결하기에 "우리 박사가 다 할 수 있어요!"라는 이야기를 하지만 그건학교 랩이나 정부산하 연구기관이나 가능한 거다.기업은 그렇게 운영해서는 안된다. 연구인력은 실험을 집중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고, 상품 기획 단계라던지 영업 관련 단계에서 조언을 하거나 어느정도의 단계에서 미팅에 참여하여 설명하는 정도의 수준으로 참여하는 것이 맞다. 관련 지식을 가지고 영업과 행정처리(각종 서류 작업 및 비용 정산 등)를 매니징 할 수 있는 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여기서 발생하는 매출은 투입되는 인력의 인건비와최소한의 재료비를 포함한 시설운영비를 반영해 목표치를 잡아야 한다. 어디서 그 매출을 발생시킬 수 있을지,영업타깃을확실히하는 것이 여기서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일 것이다.영업타깃에 따라 상품구성을 달리하는 것도 고민해야 한다.
이런 부분을 기획할 때에는 경쟁사 분석을 철저히 해야 한다. 프로그램 단가를 정한다거나 할 때 타 사 대비 비용에서 경쟁우위가 있든지, 아니면 특별한 실험을 한다던지, 비슷한 것을 할때 우리는 무언가를 더 해준다던지 등등 무엇이든 경쟁력 있는 차별성이 있어야 우리 회사를 이용할 것이 아닌가.
본격적으로 실행이 되었을 때, 매출이발생하면 해당 매출의 일부를연구에 재투자를 하는 형태로 가야 하는 포인트도 있다. 우리회사는 신약개발을 목표로 하는 회사이기 때문에후속 투자를 받을 때에도 해당 사업을 통해서 영업이익을 증가시키는 게 주목적이 아니라연구개발에 집중하기위한 운영자금을 조달하는 하나의 수단으로써 CRO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증빙해야 하므로 해당 부분도 고려해야 한다. (물론 전문 CRO회사라면 그럴 필요는 없다)
결국 우리는 이 신규 사업은 투입비용이 꽤나 크고 수익에 대한 뚜렷한 근거가 없어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
'기획'이라는 것이 비단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만 하는 것은 아니다.
무언가를 하지 않기 위해서도 기획을 한다. 사업성검토라는 것이 그에 걸맞은 용어겠지만 결국은 '기획을 해보니 안 되겠습니다'라는 결과를 도출하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오랜만에 그래도 사업기획을 하면서 꽤 재미있었다. 기획하는 일에 좀 더 많은 시간이 할애된다면 좋을 텐데.. 지금 단계에서는 사실 실무적으로 운영에 더 시간을 쏟게 되는 점이 커리어상 아쉬운 점이랄까.
요약 한 줄.
- 스타트업에서 운영자금 확보를 위해 신규사업을 고민하는 때가 많은데 이 신규사업이 본체를 갉아먹는 경우를 종종 봤다. 실패 한번 한번이 기업을 휘청거리게 하는 스타트업으로서는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