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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ecialA Oct 16. 2023

01 다시 막내가 되었습니다

7년 차 직장인이 막내로 살아가는 법

어느덧 10월도 둘째 주에 접어들었고, 새 보금자리에 온 지도 어언 한 달이 다 되어간다.


N번째 이직이다 보니 일이든 생활이든 나름의 노하우로 물들어가는 중인데 아직 잘하고 있는 건지, 이곳을 잘 선택한 건지 확신은 없는 것 같다.






이번 직장에서는 신기하게도 막내가 됐다. 아무래도 나이도 30대 중반인 데다 비록 중간에 이런저런 이유로 회사를 안 다녀 7년 차지만 첫 직장생활은 10년 전이었다 보니 그간 어딜 가서도 막내 포지션이 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직장경력으로는 막내가 아니지만 공공성이 짙은 이곳에서는 민간경력을 전부 인정해주지 못한다고 해서 내 경력은 반토막만 살아남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부에서도 그런 부분을 고려해서 호봉을 책정하고 직함을 달아주는 데에서는 최대한 배려해 주려고 애써주셨다. 덕분에 연봉은 3년 전으로 회귀했지만 '과장' 타이틀은 지켜낼  있었다.


직급은 과장이지만 동기  명이 전부고 밑이 없어 막내다. 사회초년생이었던 전임자로부터 실패를 맛본 이곳에서는 경력직을 뽑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들었다. 첫 회식 때 건배사로 '나이 든 막내를 예뻐해 달라'는 멘트로 포문을 열었는데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얼마 만에 막내가 된 것인지.



막내일 때 좋은 건 몸이 고생할지언정 책임의 무게에서 자유롭다는 것이라고 늘 생각했었다. 예전에 있던 한 직장은 여초지만 군기(?)가 바짝 든 곳이 있었는데 막내는 엉덩이가 가벼워야 한다고 배웠던 철칙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회의하자 하면 항상 1등으로 자리에 가서 앉아있고 점심 먹자 하면 가장 1등으로 앞장서서 나가야 했다. 조금이라도 늦을라치면 불호령이 떨어졌고 윗사수는 애들 관리 안 한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곳에서의 직장문화가 견디기 힘들어 1년을 다 채우지 않고 빠른 런을 택했지만 그때의 경험이 강렬했던지 이후로 어딜 가도 항상 1등으로 일어나 준비하는 건 나였다.


다만 이런 걸 후배들에게 강요하지는 않았다. 후배들이 먼저 빨리빨리 잘 챙겨주면 고마운 일이었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옛날사람이라



상 먼저 챙기고 소소한 잡무들을 빨리 캐치해서 손발이 되어주는 게 막내로서 가장 갖춰야 할 덕목이라 생각할 뿐이었다. 이곳에 와서도 처음에 그런 부분에서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다행인 건 그간 승진을 했다 하더라도 업무외적인 부분에서 최대한 나 스스로 해내려고 한 것이 도움이 됐다. 손님맞이라던지 이런저런 소소한 잡무를 막내를 시키기보단 모두 손수해왔다. 짐을 옮기거나 기계를 만진다던지 정수기 생수통을 가는 것도 최대한 내가 하고 안될 때만 도움을 요청했다. 그래왔던 점 때문인지 막내로서 몸으로 때우고 빠릿빠릿 움직이는 것에는 자신 있었다. 


물론 그동안 있었던 착한 막내친구들이 서포트해 줬던 부분이 그립고 감사한 순간도 간간히 있긴 했다. 하지만 지금은 여기서 내가 막내다. 내가 그런 부분을 채워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계신 분들이 내가 잘 서포트해주고 있다고 느끼실 수 있게 하는 것이 내가 잘 적응하는 길이 아닐까.






이전에 짧은 기간 동안 정말 나를 갈갈이 갈아 넣어서 빨리 과장까지 올라오려고 애썼던 막내를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자잘한 잡무보다는 큰 업무를 맡아 내 실력을 보여주고 싶다는 열의가 있었고 막내라 거래처나 클라이언트에게 무시당하고 싶지 않은 것도 있었다. 일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밀고 간다거나 의견을 낼  없는 것도 싫었다.


점차 승진을 하고 직급이 올라가니 막내를 벗어나고 싶었던 그런 이유들은 많이 사라졌고 그만큼 책임의 무게가 막중해졌다. 책임의 무게는 무거웠지만 그 외적으로 느껴지는 희열이 더 컸다. 큰 프로젝트를 맡아 이끌며 내 의견을 당당하게 제시할 수 있고 누구도 나를 어리다거나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무시하지 않았다. 날 지켜주지 않았던 상사들과 달리 내 후배들을 막아주는 방패가 될 수도 있었다.


지금에야 느끼는 것은 내가 내시절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기에 가능한 것이었다는 거다. 그때는 일할 수 있음에 감사했고 작은 일 큰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시키는 대로 할 수 있으면 일단 했다. 안되는 것을 되게하라는 미션에도 최선을 다했다. 지금에 와서야 왜그랬었지 싶을 때도 있긴 하지만.


물론 누구나와 같이 체력이 따라오지 않아 힘든 것들과 혼이 나거나 인간적으로 당하는 괴롭힘이나 무시 사이에서 간간이 찾아오는 현타로 눈물로 밤을 지새우거나 갈팡질팡할 때도 있긴 했다. 그땐 직장 내 괴롭힘 방지 같은 것도 없어서 당한 억울한 일들도 있었는데 그땐 그냥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때 겪었던 많은 일들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더 능수능란한 직장인이 되기에 좋은 토대를 만들어줬다는 걸 지금에 와서야 느끼고 있다.


최근에는 MZ막내들도 겪으면서 세상이 변해가는 걸 느꼈다. 그 와중에 내가 꽤 많이 변한 것도 느꼈다. 그래서일까, 지금은 왠 간한 일엔 무뎌졌다. "그런 것도 다 했었는데, 그런 일도 겪었는데"라는 생각이 지배적인 거 같다. 그래서 이번에 막내가 됐을 때에도 '몸이 예전같이 날래지 않지만 한번 열심히 해보자!'라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니 내 마지막 막내 시절은 5년 전이었.  5년 만에 막내로 새 직장에서의 새 삶을 시작한 지금부터 3개월 후 올 연말이면 수습기간이 끝난다. 한 달째인 지금은 미어캣처럼 하루종일 사무실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내가 해야 할 일이 없을지 두리번거리고 있다. 그러므로 이 매거진은 새 직장 적응기를 적기에시기적으로 적합할 것 같다.


앞으로 3개월 동안 새 직장에서의 적응기와 더불어 격동의 2023년을 마무리하며 느끼는 소감을 써보려고 한다.


새 매거진도 열심히 써 내려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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