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평생 처음으로 아이들 성화에 못 이겨 볼링이란 걸 해봤다.
그동안 아이들과 남편의 볼링게임을 응원해보기만 했지 막상 참여해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매번 엄마도 같이 하자고 졸라대는 아이들에게 괜찮다며 손사래 치기 바빴다.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스포츠를 오픈되어 있는 곳에서 그것도 멋진 자세를 잡으며 즐기는 어른 사람들 틈에서 시도해 볼 용기가 나질 않았다. 남편은 결혼 전부터 볼링 경험이 많았고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친절히 가르쳐줬다. 뭐든 빨리 배우고 무엇보다 타인의 시선보다 내 즐거움이 우선인 아이들은 ‘폼’ 따윈 중요치 않았다.
제법 묵직한 공을 들어 올린 것만으로도 그리고 힘차게 굴려 스핀 하나만 맞춰도 제대로 된 ‘성공’이었다. 나보다 낫다 싶은 아이들을 보며 또 한 번 아이들에게 배우는 순간이었다.
몇 게임을 힘들다는 내색 없이 온전히 마친 아이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주곤 했었다.
다시 찾아온 연휴를 맞아 아이들은 볼링장에 가자고 노래를 불러댔다.
깊어가는 가을 곳곳에서 축제가 한창인데 볼링장이라니... 우리 지역에서 하는 축제는 왠지 가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강박관념이 있는 건지 아님 내가 나이가 든 건지 여하튼 혼란스웠다. 축제에 가서 꽃도 보고 사진도 찍고 바가지 음식도 한두 개쯤 사 먹고 하려면 바삐 움직여만 했다. 당연히 이번 주말은 축제장 돌기에 바쁠 거라 생각했는데 갑작스러운 볼링장 추진(?)에 짜증이 났다.
결국 우리가 도착한 곳은 볼링장이었다. 이번에는 최신곡까지 울려 퍼지는 그래서 더 내겐 낯선 ‘락 볼링장’. 아이들은 최신곡에 맞춰 몸을 들썩이며 볼링화로 갈아 신었고 각자 취향에 맞춰 공을 골랐다. 그 자연스러움이 어느덧 제법 베테랑 같았다.
나도 무슨 오기가 발동했는지 그렇게도 오기 싫었던 곳인데 아이들과 함께 볼링화로 갈아 신고 내가 좋아하는 노란색 공까지 준비했다. 그리고 최대한 다른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최대한 초짜가 아닌 듯 자연스러운 척을 하기 바빴다. 불필요한 바쁜 척을 하느라 아이들과 남편에게 박수 쳐주기도 쉽지 않았다.
드디어 나도 한번 남편이 알려준 대로 자세를 잡고 힘껏 공을 들어 올려 라인에 맞춰 반듯하게 굴려 보냈다. 결과는 라인 밖으로 아웃! 예상했던 결과였지만 생각만큼 창피하지는 않았다. 가족들은 나의 첫 도전에 박수를 보내줬고 나도 내가 기특한 생각마저 들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내 차례가 올 때마다 조금씩 자세며 공의 각도 등을 스스로 만들다 보니 재밌는 게 아닌가. 그렇게 몇 번을 시도하다 아뿔싸, 스트라이크다! 내 볼링 인생 1일 차에 만난 스트라이크다!
가볍게 시작했는데 재미를 느꼈고 ‘스트라이크’ 맛까지 보다니. 지금껏 내가 살아온 인생에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나는 매사에 늘 고민했고 진지해야 했고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재미를 추구하거나 가벼운 선택은 곧 죄책감을 동반했다. 집을 돌보거나 아이들을 돌볼 때도 게으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늘 바쁘게 움직였고 뭐든 해야만 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기였다. 무겁고 깊었다. 그래서 버거운 순간이 많았던 건 아닐까 글로 정리하다 보니 이유가 간결해진다. 그게 지금껏 나의 라이프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볼링장에서의 스트라이크가 내겐 생경한 경험이었고 나를 환기시켜주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내 인생의 스트라이크를 위해 작은 다짐 하나를 해보기로 했다.
조금만 가벼워보자고. 어깨에 올려놓고 가슴에 담아놓은 무거운 것들을 이젠 조금 내려놓자고. 그러면서 즐거움도 찾고 웃는 날이 좀 더 많아지면 내 인생의 스트라이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