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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꽃 Oct 04. 2023

장어가 원래 이렇게 고소했던가?

오랜만에 아빠를 만났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추석 연휴 이틀을 시댁에서 보내고 요양병원으로 아빠를 보러 갔다. 그동안 병원생활이 힘드니 퇴원하고 집에서 예전처럼 지내고 싶다는 아빠의 말을 들어줄 수가 없어 한참을 면회 갈 생각조차 못했었다. 보지 못한 시간만큼 무겁게 쌓인 마음을 스스로 토닥이며 병원 로비 1층에서 아빠를 기다렸다.

내 마음과 달리 뭐가 그리 즐거운지 끊임없이 재잘거리는 아이들을 보며 눈치 없이 벌써부터 나올 것 같은 눈물을 몸부림치며 누르고 있었다. 휠체어를 타고 내려온 아빠에게 아이들이 달려가줬고 아빠 뒤에서 언제나처럼 휠체어를 밀어주는 남편이 이번에도 참 고마웠다. 




예약해 둔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찬찬히 아빠를 살펴봤다. 지난번에 봤을 때보다 더 안 좋아진 모습에 저녁은 이미 다 먹은 듯했다. 어차피 나는 평소 잘 먹지 않는 장어집으로 왔기에 이래저래 상관없었다. 오늘 식사는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메뉴로 골랐으니 아빠가 잘 드시면 그걸로 되었다. 부모가 자식 생각하는 마음은 늘 ing인 법. 아이들 챙겨주느라 바쁜 딸 접시에 아빠는 서툰 젓가락질로 장어 한 점을 힘들게 옮겨 담아줬다. 

마음과 달리 안 나오는 말이 못내 답답한지 내게 연신 장어를 입에 넣으라는 손짓을 한다. 

그렇게 아빠의 성화에 못 이겨 장어를 한입에 넣고 오물거리기 시작했다. 연하장애가 있는 아빠가 잘 씹고 있는지 살피는데 또 한 번 어찌나 눈물이 차오르던지 괜스레 입안에 넣은 장어만 수십 번째 씹어댔다. 차마 목이 메어 장어 한 점을 넘기기 힘들었던 건데 씹다 보니 고소한 맛이 느껴졌다. ‘장어가 원래 이렇게 고소했던가?’ 타이밍이 참 웃기지만 40년 만에 장어의 참맛을 느낀 순간이었다. 




외출시간이 다 되어 다시 아빠를 모시고 병원으로 돌아갔다. 결국 또 이렇게 제일 힘겨운 시간을 마주하고야 만다. 아빠는 아이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고(아픈 후로 아빠의 울음은 아이들처럼 진짜 엉엉 소리가 난다)나와 엄마는 다시 한번 눈물을 참아내느라 서로를 애써 외면한다. 그리고 여전히 나의 남편은 들썩이는 아빠를 태운 휠체어 뒤를 묵묵히 지킨다.

곧 또 오겠다는 인사를 뒤로하고 그렇게 우리는 다시 헤어졌다.




병동까지 아빠를 모셔다 드리러 간 남편을 기다리며 오랜만에 병원 내부를 찬찬히 살펴보며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아빠가 병동으로 올라간 후 참았던 눈물이 정말 폭포수처럼 터져버렸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눈물로 눈앞이 흐려졌지만 매일 이곳을 지나 재활치료를 받으러 다니는구나 생각하며 아빠가 숨 쉬고 있는 병원 안의 공기를 병원 안의 온도를 느껴봤다. 

다시 함께 일상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수없이 생각해 봤다. 한참을 우는 엄마가 안쓰러웠는지 사춘기 딸아이가 나를 안고 토닥거려 준다. 사춘기라 차갑디 차가워도 아픈 할아버지한테는 짜증 한번 안내는 녀석이 오늘은 참 고맙고 또 고맙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내내 울다 남편한테 물었다. 

“오빠, 원래 장어가 그렇게 고소한 맛이었어?”

남편이 그렇다고 친절히 대답해 준다. 




입 짧은 나는 임신했을 때도 딱히 먹고 싶은 음식이 없을 정도였기에 내게 장어는 외적으로도 썩 내키지 않는 음식 중 하나였다. 그런 내가 장어의 참맛을 알게 되다니 때론 힘든 일도 이렇게 가르침으로 다가오는구나 하는 괴짜 같은 생각을 해봤다.

그러면서 달님을 보며 한 가지 소원을 빌었다. 아픔도 이렇게 꼭꼭 씹어내면 견뎌내면 그 끝에 달콤함도 느낄 수 있게 해달라고. 부디 딱 한 번만 이뤄지게 해달라고 두 손 모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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