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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꽃 Oct 14. 2023

트라우마

갑자기 아파트 단지에 구급차 엠블런스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아 창밖을 내다보니 우리 라인 앞에 구급차가 한 대도 아니고 두 대나와 있는 게 아닌가. 구급대원들이 들것과 필요물품들을 챙겨 급하게 출입구로 향했다. 이어 경찰차 두 대와 소방차까지 도착했다. 관리실에서 특별히 방송한 것도 없는데 무슨 일인지 여간 궁금한 게 아니었다. 앞동에 살 때는 고층이라 몰랐는데 이번에 이사 온 집(대각선 동)은 저층이다 보니 창문만 열면 바깥 상황들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다시 밖을 내다보니 사람들이 저마다 우리 라인 고층방향을 주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 형사차량 한 대가 더 들어왔다.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게 분명하구나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나란히 주차된 경찰차 3대를 보니 가슴이 답답해지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내 일 인양 불편해진 감정을 붙잡고 있는데 같은 동 아는 엄마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우리 라인 고층에서 부부싸움이 나서 아주머니가 다쳐 실려갔다는 소식이었다.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직도 경찰차는 주차장에 그대로였고 경찰로 보이는 한분이 카메라를 챙겨 서둘러 다시 라인 현관으로 들어갔다.

집에 들어와 아들 책가방을 정리하고 있는데 지인(언니)에게서 불금 보내라는 따뜻한 안부톡이 울린다. 요즘 내 마음을 참 잘 알아주고 챙겨주는 언니에게 오늘 아파트가 시끄러웠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이상하게도 경찰차를 보는데 내 일처럼 불안한 마음에 사로잡혀 힘들었다는 이야기도 함께 말이다.



“트라우마가 널 계속 괴롭히는 것 같아.”

“보통 트라우마가 아니니 그렇지, 그래도 조금씩 잊혀갈 거야.”

“네 건강을 위해서 그렇게 해야 되고...”

그랬다. 아파트 단지 앞의 경찰차를 보고 난 그날이, 그 맘충집이 떠올랐던 거다.

그날이라 함은 내가 같은 아파트에서 같은 아파트 다른 동으로 이사 올 수밖에 없었던 일이 발생했던 날이다. 브런치 첫 글(굿바이 층간소음 맘충)에 자세히 쓴 적도 있다. 요약하면 6년을 별일 없이 잘 살던 중 윗집에 이사 온 층간소음 맘충. 이사 온 날부터 거의 매일 자정을 넘어서까지 시끄러워 참다 딱 한번 경비실을 통해 자제를 부탁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갑자기 일면식도 없는 우리 딸(당시3학년)이 학교에서 자기 딸(당시 1학년)을 5차례나 밀었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것도 학교가 아닌 학부모를 통해 내게 전달을 한 것이다. 기막힌 상황을 견디며 그 맘충과 첫 통화를 하는데 웬걸 돌봄시 간에 그러한 일이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돌봄은 우리 딸은 해당학년도 아니고 지금껏 단 한 번도 해본 적도 없다고 했지만 오로지 자기 딸말이 맞다고만 우겨댔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는 걸 참고 최대한 침착하게 혹시라도 있을 접점을 다 찾아보고 확인했지만 접점은 없었다. 그리고 그 당시 우리 아이 담임선생님께서 그 아이를 찾아가 사진들을 다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나 확실히 안다던 우리 딸 얼굴은 끝내 찾지도 못했다. 내가 이 모든 과정을 다 밝혀내는 동안 그 맘충은 무엇하나 알아보기는커녕 이 사실을 전달하려 통화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내게 너 나보다 나이 어리지 않냐, 너 정신병자냐, 너희 가족은 거짓말을 밥 먹듯 하냐, 나는 내 딸말만 믿는다, 누구든 내 딸 건드리면 피를 볼 줄 알아라 등의 쓰레기만 쏟아낼 뿐이었다.


우린 학교 교장 교감 담임선생님께 모든 상황을 알리고 난 그 상황들마다 녹음해 둔 통화내역도 잘 정리해 두었다. 그 뒤로도 그 맘충은 사과는커녕 계속 층간소음을 일으켰고 경찰차가 출동하는 그날 일까지 일으켰다.

그날도 일부러 사람들을 불러대 자정까지 쿵쿵대고 더 뛰라는 소리를 계속해댔다. 그 소리는 조용한 시간 천장을 타고 고스란히 전해졌다. 경비실을 통해 컴플레인을 해도 막무가내였고 결국 만취되어 행패를 부리는 맘충 때문에 경찰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바지 지퍼는 다 내려간 채 횡설수설 만취상태로 자기에게 잘하라며 꼬부라진 발음으로 소리쳤고 오히려 그 집 일행들이 그 여자에게 그만하라고 말리기까지 할 정도였다.

자기 화를 다스리지 못하고 온 집안의 물건을 부수는 소리로 온 라인이 울릴 정도였고 일부러 쿵쿵 뛰어대다가 갑자기 울기까지 해대는 소동이 이어졌다.




지금껏 그 맘충과 통화하던 내용을 녹음한 것처럼 그날의 상황도 동영상으로 남겼어야 하는데 바지 지퍼가 다 내려가 우리 집 현관문을 발로 차며 행패부리던 모습을 나는 차마 나가서 마주하질 못했었다. 어릴 적 술에 취해 고성을 치던 아빠의 모습이 늘 무서웠던 나는 커서도 그런 모습을 대하는 게 무서웠던 것 같다. 그래서 현관문을 열면 곤히 자고 있는 아이들이 있는 곳까지 미친 여자가 쳐들어올 것 같아 문 앞을 사수하고 있는 게 내 최선이었다. 더 이상 그런 오물과는 가까이 살 수 없다 판단해 이사를 결심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결코 좋은 영향을 줄 수 없기에 이기고 지고의 싸움이 아니라 애초 똥은 더러워서 피하는 것이었다.




왜 세상은 뻔뻔한 가해자가 얼굴을 더 잘 들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아이들 등굣길마다 마주치는 그 맘충 딸을 볼 때마다 속에서 해결되지 않는 무언가가 끓어올라 마음 다스리기가 쉽지 않다. 난 이렇게 트라우마가 생겼는데 어찌 저렇게 고개를 곱게 들고 다닐 수 있는지... 비웃어버리고 싶은데 그 길로 가는 방법을 아직은 잘 모르겠다.




오늘 한 달을 기다린 드라마 연인 파트 2 첫회를 보는데

주인공 장현이 영랑에게 하는 대사가 가슴에 와닿았다.

“미친놈한테 한 대 맞았다고 맞은 자리가 더러워졌다고 할 거냐?”

“정신 제대로 박힌 놈은 그런 일로 너를 싫어하지 않는다.”

나와 내 딸은 단 한 번도 그 맘충과 그 딸을 만났을 때 눈을 피한 적 없다.

그런데 그 집 두 모녀는 단 한 번도 우리 눈을 제대로 쳐다본 적이 없다.

밖에선 우리 눈을 제대로 마주하지도 못하면서 오로지 집구석에서만 행패를 부린 것이다.

그러니 이제 트라우마는 그 집에 던져주자.

남에게 피해를 주고 사과하지도 못하는 트라우마로 돌려주자. 그리고 왜 이제와서 집을  왜 내놓았는지

진심으로 궁금하다.


-사진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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