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 중국인 cher와의 모델 놀이
베트남 중남부 여행을 오기 전부터 냐짱은 나에게 할 게 없는 도시였다.
구미가 당기는 볼거리도 먹거리도 즐길거리도 없는 중남부 일주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인 여행에 예의상 끼워 넣은 해안 도시.
설상가상으로 전 날 내린 폭우로 인해 냐짱의 바다는 황해 그 자체로 변해있었다. 황톳빛 바다의 냐짱에서 여행거리를 잃은 채 나의 기분은 점점 더 가라앉고 있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뒹굴거리며 도무지 하고 싶은 게 떠오르지 않는 이 도시에서 뭘 해야 시간이 안 아까울까 생각하던 중 같은 방을 쓰는 중국인 cher가 말을 걸어왔다.
cher는 세계여행을 하며 사진을 찍고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 여행한 나라들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는데 예사롭지 않은 의상과 포즈가 마치 패션잡지의 화보를 연상케 했다. 이 친구는 과연 정체가 뭘까 생각하며 흥미롭게 사진을 구경하는데 cher가 "너도 오늘 나랑 같이 사진 찍어볼래?" 하며 침대 옆에 쌓아놓은 짐더미를 뒤져 옷 하나를 가져왔다.
그 옷을 보는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옷은 옷이라고 부르기도 어색한 마치 어린이 뮤지컬에 등장할 것 같은 인어공주 옷 딱 그거였다.
"으응...? 이걸 입고 사진을 찍자고?!"
"그럼~! 너무 예쁘지 않아? 너에게도 아주 잘 어울릴 거야!"
cher는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신나서 옷을 챙기고 순식간에 나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막상 밖으로 나오니 인어옷에 대한 거부감보다 심심한 냐짱에서 새롭게 할 일이 생긴 설렘이 더 커졌다.
'살면서 언제 인어옷을 입고 사진을 찍어 보겠어! 이것도 다 재미있는 경험이지!' 하며 cher를 따라 도착한 곳은 시내의 한 고급 호텔. cher는 마치 이곳에 묵고 있는 투숙객인 듯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호텔의 고층에 위치한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수영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cher는 나에게 시범을 보여주겠다며 먼저 인어옷으로 갈아입고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무려 수백 장의 사진을 찍었다.(과장이 아니라 진짜 수백 장을 찍었다!)
마르지 않는 샘처럼 새로운 포즈를 취하는 cher의 사진을 찍으며 점점 같이 온 걸 후회해 갈 때쯤 cher가 이제 내 차례라며 인어옷을 벗어주었다. 난생처음 비늘 꼬리를 입고 뚝딱뚝딱 어색한 걸음으로 걸어 나왔다. 그런 나를 보고 cher는 옷매무새를 다듬어주며 프로 포토그래퍼가 되어 다양한 포즈와 시선을 직접 코칭했다. 한치의 부끄러움도 없이 진지한 cher 덕분에 나도 금세 어색함을 덜어내고 낯 두껍게 포즈를 취하며 인어 사진을 즐겼다.
열심히 인어 꼬리를 휘날리며 내 사진 또한 몇백 장을 찍은 후 드디어 결과물을 확인하는 순간 폭소가 터져 나왔다. 내가 이렇게 뻔뻔했었나?
냐짱 황해 앞에서 인어가 되어 시선처리를 하는 내 모습이 정말 웃겼다.
혼자 온 여행객에게는 재미없는 도시였던 냐짱에서 평생 기억에 남을 추억과 사진을 남겨준 cher와의 인연은 냐짱의 황톳빛 바다와 푸른 바다색 인어옷이 대비되며 선명한 기억을 남겼다.
cher는 지금 또 어디를 여행하며 어떤 사진을 찍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