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을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는 것을 좋아했다. 너무 가식적이라 조금 수정하자면 점프를 뛰거나 날탈(비행할 수 있는 탈것)을 타고 경치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 주차장을 찾아 헤멜 필요도 없고 북적이는 인파 속에서 내 시야의 반 정도만을 차지할 노을을 보기 위해 고생할 필요도 없이 유명 관광지만큼 아름다운 곳을 찾아서 둥둥 떠 있을 수 있었다. 물론 산들대는 바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신새벽에 진짜로 노을이 지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좋았다. 없는 것보다야 훨씬 낫다.
"저 여기 정말 좋아해요. 여기만 다른 곳보다 평화롭잖아요."
누군가 까만 용을 타고 허공에 8자를 그리며 말한다. 늘씬하고 예쁜 블러드엘프지만 사실은 어느 회사의 머리 벗겨진 부장님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이 간극을 아이들은 싫어하는 모양이지만 난 그게 좋다. 이런 상황이 아니면 내가 어느 회사 부장님과 경치에 대해 이야기할 일이 뭐 얼마나 많겠는가.
"네. 뭐 기다리고 계신 거예요?"
"샤요. 3년째 잡고 있어요."
극악의 확률로 탈것을 준다는 몬스터를 잡기 위해 3년째 와서 캠핑 중이라는 사람과 나는 기다리는 내내 수다를 떤다. 파티를 맺었다가, 친구추가도 하고, 현실 얘기도 잠깐씩 하다가 자식이 몇 살인지까지도 아는 사이가 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절절이 깨닫는다. 모니터 뒤에는 진짜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예시로 들기 위해 실제로 있는 일들을 조합해 보았지만, 나는 '게임'에 접속해서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을 늘 좋아하고 이처럼 흘러가는 상황을 항상 겪게 된다. 게임에서는 처음부터 그 사람의 외모와 사회경제적 위치를 알 수 없어서 그 사람의 내면에 집중하기가 쉽고 고민거리를 털어놓기도 쉽다. 많이 친해져서 현실에서 만나거나 몇 년씩 인연을 이어가기도 한다. 나 또한 그런 사람들이 있다.
게임 속에서도 캐릭터를 조종하는 것은 결국은 사람이기에, 이 사람들은 다시 게임 내의 일정한 구조의 사회를 이루고 때로는 고정적이거나 금세 모였다 사라지는 각각의 집단을 이룬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집단은 현실에서의 사회와 많이 닮아있고, 온갖 병폐들까지도 닮아 있다. 그러나 더욱 단순하게 그리고 가까이에서 파악할 수 있다.
이것은 내가 게임(정확히는 mmorpg)을 좋아하는 이유의 중요한 일부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 매주 이야기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