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이현옥의 중등필독신문 May 11. 2022
"엄마. 체육 시간에 모둠 줄넘기 준비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애들보고 내가 빨리 빨리 하라고 했어.
그랬더니 친구가 말만 하지 말고 아이디어를 내라고 하더라고?"
매번 집에서 거북이인 아이가 '빨리빨리'라는 말을 했다니 솔깃해졌다.
"그래? 우리 딸이 빨리 빨리라는 말을 했어?"
의아한 얼굴로 딸의 얼굴을 바라봤다.
"왜?"
"아니 집에서는 한번도 그런 적 없었어서. 신기해서"
딸아이는 그게 왜 신기하냐고 했다. 집에서는 자기가 제일 느리니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다고.
평소 학교에서 말을 잘 안하고 가만히 있는 모습이 많았던 딸아이라서 그런 말을 하는게 내심 놀라웠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가만히 있었다.
"오늘 아침에도 이동시간에 우리 회장하고 나하고 애들한테 빨리 빨리 이동하라고 했어"
'하~ 애들이 잔소리 하면 싫어할텐데. 회장도 아니면서 그런말 하면 화내고 니가 뭔데라고 하는 아이
있을텐데. 많이 깨지겠구나 우리딸. '
아무 말 없는 나를 보고 말을 이어간다.
"나 학교에서 말 안하고 있지 않아. 엄마한테 그말을 해야할거 같아서"
아직은 눈치 백단은 아니지만 그래도 엄마에게 학교 생활 잘하고 있다고 말은 하고 싶었나보다
평소 빨리빨리를 입에 달고 사는 나 때문에 느긋한 녀석이 저런 말을 친구들에게 하는 구나
친구들이 니가 뭔데 하면서 덤비면 마음 상할텐데 어쩌나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졌지만 굳이 내색하지 않는다.
아이는 내가 보지 않는 곳에서 여러번 깨지겠지
그리고 자라고 다듬어 지겠지
거기에 내가 더 많은 말을 보탤 필요는 없어보였다
안타깝고 아픈 마음은 그냥 내 일기장에 적어두고 나만 삭이는 걸로
아이의 아픔과 고민은 백번 이해하지만 내가 겪어줄수 있는게 아니므로.
그래도 이런 일상을 나눌수 있음에, 아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깨지고 자라고 단단해지고 있음에
감사해야지.
"그래. 네가 말을 안하고 있을 거란 생각은 안해. 잘하고 있어.딸"
무심한척 연기를 하며 대화를 마무리 했다.
'그래도 네 마음을 이야기해줘서 고마워. 아직은 완벽한 네 모습은 아니지만 하루 하루 깨지고 다듬어지고
단단해질 네 옆에서 엄마 하루 하루 옆에 있어줄게.'
아이에게 들리지 않는 다짐을 하며 슬그머니 눈을 책으로 돌린다.
의자에 앉아 숙제를 계속하는 아이의 등으로 형광등 불빛이 애잔하게 내려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