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7시 뉴스입니다. 요즘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가 기승입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다시 거리두기를 강화할 예정입니다. 거리두기 단계 강화에 따라 전국의 모든 학교는 원격 수업을 시작할 계획입니다.”
‘뭐야? 또 원격 수업 하는 거야?’
거리두기를 강화할 거라는 예상 그대로입니다. 요즘에는 일부러 거리두기 강화하기 전 정부의 계획을 살짝 흘리나 봅니다. 네이버 공문이라는 말이 떠도는 것처럼 인턴넷에서 나온 기사 그대로 발표를 하고 있네요.
“유준아. 너 다음 주부터 원격수업한다니까 내일 가서 사물함에 있는 교과서 모두 가져 와”
“뭐? 또 원격? 아이씨 애들하고 이제 겨우 친해질까 말까 하는데. 학교 가는 게 좋은데 왜~~애.”
처음엔 컨텐츠만 보기도 바빴습니다. 아무리 산후조리 할 때도 한 손에 아이, 한 손에 스마트폰을 보던 엄마였어도 아이에게는 절대 금지였던 부분입니다. 아이가 한 살때부터 어플로 사진 찍고 동영상으로 편집한 자기 모습 보는 것에 익숙했어도 이건 아닙니다. 종이로 된 학습지 보여주려고 밀크티네 아이스크림이네 절대 가입 안했습니다. 무조건 종이로 공부해야한다고 믿었습니다. 아이 눈도 안 좋아지고 머리도 발달 안 한다고 해서 보고 싶은 텔레비전도 아이 잘 때만 봤습니다. 아이 앞에서 한 줄 읽고 돌아서면 다시 그 줄 읽고 있는 책 읽느라 얼마나 진땀을 뺐게요. 엄마가 책 읽어야 아이가 책 읽는다고 해서 읽고 또 읽었습니다. 아이가 책에 재미붙이라고 동화책은 또 얼마나 읽어줬게요. 이제 어른 책 읽으면 너무 길고 지루해서 덮어버릴 정도로요. 얼마나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하루 아침에 공부를 죄다 동영상만 보며 하다니요. 어디서 만들어서 한꺼번에 돌린 것 같은 화질과 내용의 동영상을 보고 또 봐야 했습니다. 동영상은 보다가 멈추기 일쑤였습니다. 30분도 넘는 올림픽의 영웅들이라는 체육 동영상을 처음부터 다 돌려봤는데 수행률이 0%, 오류가 났습니다. 다시 처음부터 동영상을 다시 봐야 합니다. 기진맥진해서 다시 동영상을 틀고 있으면 전화벨이 울립니다.
“어머니 유준이 컨텐츠 진도가 너무 조금 나갔네요. 두 시 안에 꼭 접속해서 들을 수 있도록 해 주세요.”
담임 선생님 얼굴 한번 못 봤지만 전화는 열심히 진짜 받았습니다. 중학생들은 선생님이랑 이렇게 자주 전화해 본 것은 처음이라며 독촉 전화 오기 전에 배속으로 수업을 듣는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집 초등들은 빨리 감기도 안되는 영상을 주구장창 보아야 했습니다. 하루 아침에 새학기의 설레임을 빼앗겨 버린 아이들이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서 수업 ppt와 영상만 봤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한두시 넘는 것은 예삿일입니다. 처음 접하는 원격 수업이다 보니 오류가 날 때도 많았습니다. ‘로그인이 안 된다. 접속이 끊어졌다. 동영상이 렉 걸렸다’며 아이들이 수시로 불러댔습니다. 차라리 아이 옆에 앉아서 컨텐츠를 같이 보는게 마음 편할 정도였습니다. 반나절을 아이와 함께 모니터 보느라 눈이 빠질 것 같지만 잠시 앉아 있지도 못합니다. 아이 점심을 차려야 하니까요. 그래도 아이가 아프면 안되니까 이해했습니다. 아니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컨텐츠만 넘기다 넘기다가 한해가 다 지나갔습니다. ‘내년에는 다르겠지. 설마 전염병이 2년까지 가겠어.’ 언제나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습니다.

“ 자 아침조회 시작할게요. 모두 바른 자세로 앉으세요.”
그래도 2년 차라고 컨텐츠 수업은 끝났습니다. 8시 40분이면 아이들은 티셔츠만 챙겨입고 컴퓨터 앞에 앉습니다. 아빠 재택근무, 아이 둘 실시간 수업을 하다 보니 방 하나하나에 한명씩 들어가 앉습니다. 컨텐츠 수업 듣느라 부랴부랴 아이마다 노트북을 한 대씩 사줬는데 이제 그걸로도 안 됩니다. 아이 방방에 책상도 들여줘야 하고 조명도 마련해줘야 합니다. 한방에 한 명씩 들어가 각자 실시간 수업을 시작합니다. 한번은 늦게 출근해도 되는 날이 있어 아이 수업을 잠깐 엿보려했습니다. 초등학교 수업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아이들은 태도가 어떤지 궁금했거든요. 6학년 딸 아이는 아예 자기 방에 들어오지 못하게 해서 실패했습니다. 아이들 있는데 제 모습이 조금이라도 비칠까봐 잠깐만 방에 들어가도 마이크도 화면도 꺼버립니다. 도대체 같은 반에 어떤 아이들이 있는지 얼굴도 알지 못하겠습니다. 4학년 아들 곁에 앉아 아들 수업을 지켜봤습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은 참 친절합니다.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우후죽순 떠들고 이야기 하지만 절대 화를 내지 않습니다. 저도 실시간 수업 할 때 그러니까 그 마음은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너무 산만하고 우후죽순이라 화를 낼 법도 한데 끝까지 귀엽고 상큼한 말투입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은 아무나 하는게 아닌가보다 생각했습니다. 저는 우리 아이 하나만 보는데도 자주 목소리가 커지고 화가 나는데요. 직업이라서 그럴까 싶은 생각이 잠시 스칩니다. 아들은 제가 옆에 있어서인지 잔뜩 긴장한 눈치입니다. 힐끗 힐끗 저를 신경쓰며 발표를 합니다. 아무래도 집에서 엄마와 둘이 있는 사이 벌어지는 공개수업이 어색하기도 하겠지요. 그 불편한 마음 십분 이해가 됩니다. 초등학교 40분 수업은 금새 끝납니다. 교과서를 화면으로 비추고 설명하는 형식이 대부분입니다. 아이들이 줌 화면을 보면서 내내 몸을 꼬지만 해결방법은 없습니다. 재미있게 게임식으로 수업을 진행하려해도 모둠수업을 하려해도 아이들이 너무 흥분하면 분위기를 겉잡을 수 없을게 분명하니까요. 한시간 지켜보니 더이상 보고 있을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별 재미는 없겠네.’ 생각하며 출근했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재미도 없고 피드백도 없는 이런 수업을 언제까지 참아낼수 있을까 걱정스럽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아이도 저도 학교 갈 날만 손꼽아 기다립니다.

드디어 학교에 갑니다. 아이는 아주 신이 났습니다.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도 불편할 줄 모릅니다. 그저 학교에 간다는 사실이 못내 신이 난 모양입니다. 일주일에 겨우 3번 가는데도 말입니다. 여전히 2번은 실시간을 해야 하는게 힘들지만 이 3일 때문에 일주일을 버팁니다. 학교에서 돌아와서는 체육시간에 있었던 일을 신이 나서 이야기합니다. 마스크를 쓰고 모둠으로 나눠서 이어 달리기도 하고 농구도 한다고 했습니다. 달리기할 때는 마스크를 끼고 달리느라 너무 숨이 찼지만 너무 재미있었다고 합니다. 학교가 그냥 그냥 그랬는데 이렇게 재미있는 공간이었나 싶다고 합니다. 거의 2년이 되도록 먹지 못한 학교 급식이 너무 맛있다고 했습니다. 마스크를 쓰고도 애들은 서로 장난도 치고 즐겁게 놀이도 했습니다. 매일 매일 학교 가는 게 힘들지만 좋다고 했습니다.
너무 당연한 줄 알았던 일상이 하루 아침에 무너졌습니다. 생명 같은 아이들이 코로나에 걸릴까 매일 매일 전전긍긍했습니다. 학교에 가지 못하고 매일 세끼를 집에서 해 먹이며 하루 하루 버텼습니다. 좀 더 나은 날이 오겠지. 조금만 참으면 더 나은 날이 오겠지 하다가 2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코로나에 지치면서도 ‘아이가 초등학생이라 그나마 다행이다. 중학생이라 다행이다. 아직 고3이 아니라 다행이다. 고3이지만 뉴스에 나온 아이처럼 죽진 않아서 다행이다.’하며 하루 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이 한치 앞도 어두운 막막한 안개같은 날들이 언제 끝날까요. 언제 우리 아이가 마스크 없이 환하게 친구 손을 잡고 운동장에서 실컷 뛰어 놀고 키득거리며 간식을 나눠먹을 수 있을까요. 아이들보다 더 답답한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오늘도 등교하는 날이라며 신나게 학교로 출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