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사회생활

새벽 4시 한국 대 브라질의 축구 경기가 열리는 날이다. 사람들은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잰 걸음으로 집으로 향한다. 혹시나가 역시나가 될지도 모른다는 약간의 희망이 섞여 있다. 빡빡한 하루에 그것만이라도 희망을 갖고 싶은지도 몰랐다. 우리 집에서 가장 들뜬 것은 아이들이다. 중학교 1학년과 초등학교 5학년 두 아이는 매일 축구 얘기에 열광했다. 친구들이 곁들인 축구 관람평을 보태며 평가에 혈안이 되어 있다. 평소 축구를 좋아하는 남편까지 합세해서 셋이 모이면 줄곧 축구 얘기로 열을 올린다. 오늘 마지막 축구 월드컵 예선이 있는 날인지라 아이들은 더 흥분되어 있었다. 일찍 숙제를 마치고 잠을 자겠다고 한다. 열에 들떠서 블라블라 하는 소리가 귓전에서 윙윙거린다. 저녁 10시가 되니 녀석들이 숙제를 마쳤다는 야호 소리가 들린다.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잠자리에 들기까지 한다. 매일 12시에 자던 녀석들이다. 나도 덩달아 일찍 잘 수 있어서 좋았다. 어스름 달빛이 달큰하게 느껴졌다.

잠결에 거실에서 쿵쾅쿵쾅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경기가 시작하려나보다. 새벽에 한번도 일어난 적이 없는 아이들이었다. 아침에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던 아이들이 스스로 일어난 것이다. 화장실도 갈겸 부스스 일어났다.

“안 졸려?”

거실의 아이들을 돌아다보며 물었다.

“졸리다니 말도 안 되지. 엄마도 같이 보자. 아. 너무 떨려.”

아들 녀석이 눈에 불을 켜고 말했다. 친구들이 선수 한명한명에 대해서 했던 신변잡기 일화를 누나에게 열심히 털어놓고 있었다. 하지만 누나도 바빴다. 스마트폰을 뚫어지게 보느라 무슨 말이 하는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친구들이 벌써 카톡으로 야단이 난 모양이다. 어떤 선수가 멋지다는 둥 오늘의 점수를 예상해 보는 둥 바쁠 것이었다. 아이는 킥킥 거리며 화면에서 두 눈을 뗄 줄 몰랐다.

“나는 잘란다. 재미있게 봐라.”

함께 키득거릴 친구도 들어두었던 신변잡기도 없는 나는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쌔근쌔근 잠든 남편 곁에 누워 다시 잠을 청할 뿐이었다. 아이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에 남편이 잠에서 깨어났다.

“시작하나 봐?”

“응, 당신 안 봐?”

“나 내일 출근해야잖아. 지금 축구 보면 너무 피곤해. 저것들은 어려서 좋겠다.”

남편은 뒤척임을 정리하고 다시 눈을 붙였다.

‘그러게. 너희들은 사회생활을 해야 하니 열심히 보거라. 잘 보일 사람도 함께 떠들면서 나눌 친구도 없는 우리는 자야겠다.’

아이들의 환호성 소리를 들으며 잠자리에 누웠다. 뒤척뒤척 잠이 오지 않는 새벽이 지나가고 있었다. 안방 문 사이로 중계방송 불빛이 무심하게 새어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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