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이현옥의 중등필독신문 Feb 14. 2023
아이를 키우려면 한 마을이 온전히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동네는 커녕 그 누구의 도움도 받기 쉽지 않았다.
아이가 아플때 잠깐이라도 맡길 그 누군가의 손조차 얻기가 어려웠다.
돈으로 해결하거나 어렵사리 친척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그 어떤 도움도 받을수가 없었다.
시부모님에게 잠시 아이를 맡기는 것 조차 부담스러웠다.
한번 맡기면 언젠가 한번 시부모님이 힘들때 도와 주어야 하는게 인지상정이니까 말이다.
내 자식은 내가 키운다는 생각으로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았다.
맞벌이를 하면서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다는 것은 때로는 눈물나게 힘든 일이었다.
아이가 아프다는 말만 들어도 머리가 온통 하얘지는 기분이었다.
또 직장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더불어 누구를 위해서 직장일을 해나가는 것인지 자괴감이 들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이제 조금씩 그 압박에서겨우 벗어나기 시작했다.
아이가 아프면 혼자서 병원이든 약국이든 다녀올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말이다.
직장에서 바로 뛰쳐 나올수는 없어도 아이에게 병원에 가서 수액정도는 맡고 나의 퇴근을 기다리라고 할 여유정도는 생겼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아이가 크니 또 다른 유형의 동네가 필요했다.
아이를 잘 키우려면 동네가 중요하단다. 학군에 맞춰서 이사하는 이야기구나 생각하겠지만 그게 아니다.
학군이 아니라 아이에게 롤모델이 될 만한 어른이 필요하단다. 아이가 실제 또래에게서 배우는 그 무엇보다
부모가 아닌 잘 자란 어른에게서 받는 영향력이 크다는 말이었다. 동네에서 모범이 될 만한 아이와 말이 통할 어른이 필요한 거였다.
이건 아이가 아플때 잠시 손을 빌리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문제였다.
어디서 갑자기 동네를 만나나 고민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탁구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동네에 새로 생긴 탁구장을 찾아갔다.
어른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탁구를 치고 있었다.
우리 네 가족이 들어서자 삐쭉대는 우리를 모두 반갑게 맞아주었다.
자신들이 치고 있던 탁구대를 내어주며 우리를 맞이했다.
넉넉한 인상의 관장님은 어서오라며 작은 꼬마들의 등장을 반가워했다. 우리는 그렇게 작은 동네를 만났다.
탁구장은 그간에 다녔던 운동시설들과는 조금 달랐다.
배드민턴을 치러가도 자기들끼리 서로 자리를 선점하고 뜨내기 우리를 배척했었는데 아니었다.
수영장에서도 당구장에서도 느끼지 못하는 묘한 분위기가 있었다.
다른 운동과 다르게 탁구장은 혼자 오는 경우가 많았다. 상대방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운동이었다.
게다가 야외 공간이 아니라 한정된 실내공간. 그 안에서 한 공동체라는 의식이 생길수 밖에 없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예의를 지키고 초보자가 오면 서로를 끌어주었다.
물론 우리가 갔던 탁구장이 운 좋게도 그런 공동체 의식이 더 강한 곳이었는지도 모른다.
암튼 우리 아이들은 그곳에서 어른다운 어른들의 동네를 만났다.
수줍어 하는 아이들을 데려다가 같이 탁구를 쳐주고 너나할것없이 자세를 알려주었다.
물론 모든 초보자에게 열려있는게 운동 동호회였지만
새로 생긴 탁구장에서 1호 10대를 맞이하는 어른들의 눈빛은 살갑고 살가웠다.
아이들은 탁구장만 가면 음료수를 얻어먹고 용돈을 타가지고 왔다.
특히 관장님은 뻘쭘해 하는 아이에게 짝지어 운동할 회원을 연결해 주었고
그 게임에서 아이들은 어른들의 배려와 나눔을 배워갔다.
새로운 동네였다. 아이들을 믿고 맡기고 끌어줄 수 있는 새로운 동네.
우리는 그 안에서 따뜻함과 평온을 느꼈고 아이는 그안에서 자라났다.
아이를 키우는데 한마을이 필요하다고 한다.
바쁘디 바쁜 현대사회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내 살기 바쁜 하루에 누군가와 무언가를 나누는 일이 쉬운건 아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누군가와 무엇을 나누고 싶은 세상이라면
내가 먼저 동네의 문을 두드려야 할 것이다.
누군가는 기꺼이 내어줄 아이의 동네가 되어줄 것이다.
아직은 이렇게 살만한 세상이니까.
책으로 만나는 아이들 이야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