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살기가 싫어요. 저는 아무데도 쓸모가 없는 사람이에요."
우울증을 앓고 있는 서영이가 오늘도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로 우리 교실로 들어섭니다.
"반에서 애들이 저를 안 끼워주요. 내가 다가가면 뒤로 피하는 거 같아요. 그래서 너무 슬퍼요."
아이 눈에 눈물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나는 그 눈물에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내 앞에서 너무나 많은 눈물을 흘렸고 그 눈물이 거짓이었던 적이 너무 많았거든요.
아이는 내가 받아주자 내 앞에서는 한껏 슬픈척을 하지만 교실에 가서는 다릅니다.
친구들에게 어떻게든 눈길을 받아보고자 세상 착한 척을 하지요.
하지만 그 모습이 연기인 것이 드러나서 일까요. 아이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받아주는 친구는 없습니다.
아주 어렸을때부터 그랬다고 해요.
서영이는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유독 강했던 아이래요. 하지만 서영이의 야누스 같은 변신술에 친구들은 놀랐고 거리를 둘수 밖에 없었대요. 장소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서영이를 믿어주는 친구는 만날 수가 없었답니다. 그러면서 서영이의 연기는 나날이 더 심해져 간 것이지요.
부모님과 상담을 하고 아이의 감정을 받아주고 지지해 주시라고 몇번이나 부탁을 드렸지만 그게 잘 안됐습니다. 부모님은 이랬다저랬다 하는 서영이를 받아주기는 커녕 화를 냈습니다. 가끔은 욱하고 사랑의 매를 들기도 했다는데요. 그렇게 강하게 맞받아칠 수록 서영이의 우울감은 깊어져만 갔습니다. 그누구도 변하지 않고 자신을 믿어주고 곁에 있어주리란 믿음이 영 생기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서영이는 점점 자신이 그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과 실제 모습 사이에서 힘들어했습니다. 그리고 교사인 나에게도 자주 시험을 했습니다. 과연 이 사람이 믿을 만한 사람인지, 자신의 변화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지 180도 달라지는 모습으로 나를 검증하려 했습니다. 교사이고 어른인 나도 사람인지라 서영이의 감정변화를 받아주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룻밤 자고나면 힘들어도 다시 받아주어야 하는게 교사라는 생각에 힘을 냈지요. 나 역시 서영이처럼 우울의 늪에 빠지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중심이 되고 싶어하는 서영이,그럼에도 주변인이 될 수 밖에 없다고 느끼는 서영이를 위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서영아. 우리 같이 나를 칭찬하기 해보면 어떨까. 하루에 세가지씩 나를 칭찬하는 문장을 써보자. 아니면 기분좋았던 일이나 감사한 일을 써도 좋아. 그런게 없는 날은 책에서 읽은 기분 좋은 구절을 써보는 거지. 선생님에게도 이게 필요한거 같아서 해보려고 하는데 서영이 어때. 같이 해볼래?"
서영이가 한참을 생각하더니 좋다고 합니다. 그날부터 우리는 감사칭찬일기를 매일 매일 작성하기로 했습니다. 기분 좋지 않은 일이 있어도 그것에 집중하지 않고 즐거운 기억을 찾아 정리해보았지요. 물론 서영이의 기분이 금새 좋아지지는 않았습니다. 서영이는 여전히 우울했고반 친구들과 지내는 것을 힘들어 했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변화를 느낀 것은 나먼저였습니다. 힘들다고만 생각했던 학교 생활에서 그나마 숨쉴수 있는 공간을 찾아낼 것이 감사일기였습니다.
'새로 친구들이 입학하고 새학기가 되면 아이들과 예쁜 일기장을 사야겠다. 그리고 매일 한문장이라도 좋으니 칭찬과 감사일기를 써야지. 아이들이 자신감을 갖고 자신을 사랑하는데 도움이 될거야. 내가 지금 이렇게 도움을 받는 것처럼.'
서영이는 처므의 의지와 달리 일기를 쓰다말다했습니다. 그러면서 힘들어하는 나날도 많아졌지요. 그럼에도 이것이 분명 서영이에게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해서 나는 끝까지 칭찬감사일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 저 목표가 생겼어요. 저 대학형 전공과에 입학할 거에요. 거기서 호텔경영 배우고 싶어요."
서영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한참이 지난 후 보낸 문자입니다. 서영이는 고등학교 특수학급에서 친한 친구를 사귀어서 이제는 외롭지 않다며 행복한 소식도 전해주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그때의 감사일기가 서영이의 마음에 얼마나 닿았는지요. 서영이가 이렇듯 마음을 잡고 자신을 사랑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앞으로 나에게 올 아이들에게 도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한 꼭지를 분명히 만들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지치지 않고 꾸준히 내가 특수교육에서 필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포기하지 않고 해나가는 이유입니다. 지금 당장 드러나는 변화를 주지 않더라도 언젠가 아이 인생에서 조그마한 점이라도 영향을 줄거라고 믿습니다. 부디 그 영향력이 선하고 긍정적이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