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아픈 손가락


예전에 엄마가 아파서 우리 집에 오셨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나에게는 7-8개월 난 아기가 있었어요.

아기가 넘어질 세라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던 시절이었는데요.

허리 수술까지 한 엄마가 와서 함께 병간호를 해야하니 죽을 맛이었지요.

밤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비몽사몽 헤매이고 있을 때 안그래도 아침 잠이 많은 나를

깨운 것은 항상 엄마였습니다.

"배고픈데 뭐 먹을 거 안줘? 그리고 강서방 회사 가는데 밥 차려줘야지. 계속 자면 어떻게 해. 너 남편한테 너무 못한다. 그러면 안돼."

엄마가 늘 잔소리로 아침을 깨웠어요. 아침밥보다 잠이 더 귀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남편은 평생 아침을 먹지 않는 사람이었구요. 엄마의 잔소리가 달가울리가 없었지요.

"엄마가 찾아서 먹어 좀. "

처음엔 어찌 어찌 정성을 다해보려 했지만 퉁명스러운 대답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엄마가 어느날 답답하다며 잠깐 밖에 나갔다 오더니 한참 만에 돌아왔습니다.

엄마 손에는 아이스크림이 들려 있었지요.

"너 어릴때 이걸 그렇게 먹고 싶어했는데 못사줬어. 너 니 새끼 이쁘지. 나도 그랬어.

너네가 집에 있으면 마치 집에 금은보화가 있는 것처럼 걸음이 빨라졌어."

늘 무뚝뚝한 엄마였는데 엄마에게도 표현하지 못했던 사랑이 숨겨져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야. 너 엄마가 네 얘기 들어 준 적 있어?"

갑자기 큰언니가 전화를 해서 대뜸 물었습니다.

"아니. 없는데. 엄마는 언제나 넷째언니 말만 들었어. 언니만 머리 길게 해서 맨날 따주고 묶어주고 그랬지. 나랑 셋째 언니는 커트만 해 주고. 넷째 언니만 피아노 학원도 보내줬잖아. 나는 엄마가 하도 내 이야기를 안들어줘서 내 속마음 누구한테 말하는거 잘 못해. 지금까지도."

큰언니도 그랬답니다. 엄마아빠가 너무 혼을 많이 내서 늘 엄막 아빠가 미웠대요. 빨리 집을 떠나고 싶었답니다.

"근데 둘째는 엄마가 그렇게 공감을 잘해줬대. 내가 통화하다보니까 이해가 안되서 그래. 엄마는 나한테는 안그랬거든. 그래서 너한테는 어땠나 싶어서. 그럼 엄마는 자식마다 다르게 대한 거야?"

"응 맞아. 엄마는 성질 더러운 딸들 얘기만 들어주고 맞춰줬어. 우리처럼 순한 애들한테 오히려 화를 풀었어. 셋째언니는 지금도 그렇지만 엄청 착했잖아. 그런데 엄마가 엄청 혼냈어. 젓가락을 손가락 사이에 넣고 누르고 했다니까. 그야말로 고문이지. 자기가 감당할 수 없는 애에게는 잘하고 순한애한테 화풀고 그랬어. 강약약강이었다니까."

큰언니는 이해가 안된다고 했습니다.어쩌면 다 똑같은 자식인데 그럴수가 있느냐며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나는 어려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으니 셋째 언니에게 물었습니다. 언니 또한 엄마가 자식마다 다르게 대한게 맞다고 했습니다.

"논을 정리하면 상속세를 내야하니까. 아들에게 와서 농사를 짓게 하려고 해. 그러면 세금없이 승계를 할 수 있으니까."

딸들과 모여서 대화를 하던 중 아빠가 폭탄발언을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서울 살던 오빠가 갑자기 시골로 내려오겠다고 하는 이유가 뭔지 알것 같았습니다. 한마디로 농사를 짓고 아빠의 재산을 꿀꺽하겠다는 심산인게지요. 갑자기 짜증이 밀려들기 시작합니다.

"아빠 재산이니까 아빠가 어떻게 누구에게 주든지 그건 아빠 마음이죠. 인정해요. 그런데 만약 아빠가 오빠에게만 재산을 물려준다면 다시는 친정을 안 올수도 있어요. 아빠가 마음 속에 바라는 것이 아빠 돌아가시고 나서도 자식들끼리 우애좋게 지내는 거라면 생각을 잘 해보셔야 할 거에요. 나는 부모님 재산에 전혀 관심이 없어요. 두분이 다 쓰고 돌아가신다면 더 바랄게 없지요. 그렇지만 누구 한명에게만 물려준다면 마음이 상할 것 같아요. 아빠가 나중까지 생각한다면 현명한 판단을 하시는게 좋지요. 아빠도 그러셨잖아요. 외삼촌이 욕심부리니까 처갓집에 가기 싫으시다구요. 부모님 돌아가시면 형제밖에 안 남는데 그런 마음이 들면 너무 슬프잖아요. 우리에게 그런 마음이 생기지 않게 해주시는게 아빠의 마지막 선물 아닐까요."

화가 나고 답답한 마음을 꾹꾹 누르며 아빠에게 설명을 했습니다.

"아빠가 모두에게 똑같이는 아니더라도 한명 한명을 소중하게 생각해서 무언가를 나눠주고 싶은 마음이 아빠 현금 자산에 대해서는 있으시잖아요. 그건 아주 좋아요. 땅과 논에 대한 부분도 그 마음을 표현해 주셔야 어느 자식도 서운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아빠는 (뼈속까지 새겨져있는 남아선호사상을 버릴 수는 없었겠지만) 겉으로는 알겠다고 하셨습니다. 자기 마음가는 곳이 있는게 당연하겠지요. 더 어렵고 더 이쁜 자식이 따로 있는 마음 알겠어요. 하지만 적어도 어른이라면 그 마음을 누구라도 눈치채게 해서는 안되지요. 그건 자식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니까요. 마음 가는 자식. 어려운 자식이 있어도 똑같이 치우치지않고 대하려고 일신우일신 하는게 부모일 테지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식물을 키우면서 매번 실감합니다.

나에게 30종의 식물이 있지만 유독 정이 가고 예쁜 식물이 있습니다.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예쁜 꽃을 내준 제라늄이 그랬습니다.

작고 작은 화분에 재미있게 심어져 있는 식물을 선물로 받았을때는 귀여운 맛에 좋았는데요.

저기서 작은 꽃망울이 하나 둘 톡톡 튀어나오니 너무 대견하고 기특한 것이지요.

우리집에 온지 가장 최근인 식물인데도 불구하고 정이 가고 눈길이 머뭅니다.

다 같이 돌봐주고 손길을 주지만 내 마음이 그렇더라구요.

어쩌면 부모님도 마찬가지아닐까요.

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은 없지만 더 아픈 손가락은 있지 않을까 싶어지는데요.

서운하긴 해도 그 마음마저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내 마음이 제라늄에 한참 머물러 있다 가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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