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는 왜 그렇게 우울해?"
우울의 끝을 달리고 있다는 언니에게 물었습니다. 비오고 사람도 만날 수 없는 주말이면 몸이 꺼져 침대 안으로 들어갈 것 같다는 언니였습니다. 나는 도무지 그 이유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 정도로 우울할 이유가 언니에게 존재하지 않았으니까요.
"자식에 대해서 너무 집착하고 있는거 아니야? 민준이가 재수 아니 삼수하는게 뭐가 문제가 돼. 요즘 애들 한번에 자기 진로 찾지 못해. 여러번 진로 바꾸는 거 드문 일 아니잖아. 민준이도 그럴수 있어. 스무살이 어떻게 자기가 잘하는걸 찾아. 언니 주변에 그런 학생 있었으면 아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을 거야. 한없이 너그럽게. 그런데 민준이한테는 그게 안되는 거잖아. 언니 욕심과 집착 때문에 스스로를 너무 힘들게 하는것 같은데. 이제 그만 손 놔. 그래야 개도 개 인생 스스로 헤쳐 나가지."
언니는 말이 없습니다. 알지만 안되는 건지 너무 아픈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한건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언니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파도 받아들인거 받아들여야 하니까요. 그런데 내가 둘째 언니에게 하는 이야기를 둘째 언니가 큰 언니에게 똑같이 합니다.
"우리 은진이가 우울해 하는 게 나는 너무 힘이 들어. 나는 밝고 긍정적인데 개는 왜 그런지 몰라. 나만 보면 힘들다 살기싫다 말하는데 나는 그 말이 너무 싫어. 계속 신경이 쓰여. 애가 기분 좋다고 하면 그날 하루가 종일 행복하다니까."
큰언니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둘째 언니가 훈수를 둡니다.
"그러니까 언니도 개한테 독립할 기회를 줘. 언제까지 싸고 돌려고 그래. 언니가 지금 은진이 감정 쓰레기통이 되는 거야. 그러니 힘들지. 독립시켜. 그래야 은진이도 홀로 서기를 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지. 지금 서른도 넘었는데 아직도 저러고 있으면 언제 독립을 시킬 거야. 그렇게 살면 언니 인생이 조금씩 좀먹게 될거야. 형부도 병걸린다니까. 스트레스 받아서. 퇴직한 부부가 함께 제주 한달살기라도 하면서 바람좀 쐬고 와. 애한테도 홀로서기할 기회를 주고."
하지만 큰언니 역시 말이 없습니다. 한참을 생각하더니
"한달살기 할 비용이 없어. 자신도 없고. 애는 나가래도 안나가고."
큰언니의 대답을 들으며 저 집안의 힘듦은 쉽게 해결되지 않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가 일단 자식이 너무 안쓰러워서 손을 놓을 마음이 없으니까요.
그런게 어디 언니들 집 뿐이겠습니까. 사춘기 아이가 있는 우리집도 마찬가지지요. 시험 기간을 맞아 딸아이가 스터디 카페에 간건 저녁 8시입니다. 중2녀석이 뭔가 해보려는게 대견해서 오랫만에 녀석이 좋아하는 회도 시켜주었습니다. 맛있게 식사를 하더니 공부하러 가겠다네요. 멋지다고 해주었는데요. 아니나다를까 돌아오는 시간에서 의견충돌이 생겼습니다. 한번 스터디카페에 가려면 적어도 세시간은 공부를 하겠다는게 아이의 주장인데요. 그러면 11시반이 넘습니다. 안그래도 스터디카페 건물에 성범죄자가 살고 있다고 해서 가지말라고 그렇게 일렀건만 많고 많은 카페 중 유독 그곳을 좋아합니다. 11시가 넘어 남편이 데리러 갔는데요. 아이가 차를 타지 않더랍니다. 카페에는 아직 자기 또래의 친구들이 많이 남아 공부를 하고 있다는데요. 11시넘어 자기 기준으로 너무 이른 시간에 집으로 오라고 하면서 데리러까지 오다니 너무 과잉보호라는 겁니다.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른다며 화를 내보지만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아빠 차를 뿌리치며 스스로 걷는데요. 집으로 돌아온 아빠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습니다. 지금 상태로 이야기하면 아이한테 무한정 화를 쏟아부을 것 같다며 나에게 키를 돌리는데요. 이미 몇번이나 부딪힌 이야기입니다. 나도 아이 고집을 꺾기가 어렵습니다. 혼자서 해보고 싶다네요. 위험해도 안 좋아도 스스로 해보겠다는데요. 우리가 걱정이 많은걸까요. 아직 중2고 세상도 모르는 녀석이 함부로 까부는 꼴을 보고 있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것또한 어쩌면 우리 잘못일까요. 어서 손을 놔주라는 아이를 꼭 잡고 있으니까요.
이대로 손을 잡고 있다가는 언니들처럼 스물이 되도 서른이 되도 손을 못 놓을 거 같아 두렵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은 손 놓기에 시간이 빠르다고 생각이 되는건. 아이가 미덥지 못한 건 언니들도 마찬가지겠지요.
"나도 이제 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볼꺼야. 아이에게만 집착하지 않을래. 내가 영어를 그렇게 좋아했다는게 문득 생각났어. 영어 책을 사서 외우는 걸 보고 우리 민준이가 나에게 다가오더라. 신기하게 나를 보더니 기분 좋게 응원하더라고. 내가 자기에게 인상 찌푸리지 않고 웃으며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좋았나봐. 진작에 이렇게 할껄."
몇일 후 둘째 언니에게서 밝은 목소리가 전화가 왔습니다. 언니의 변화를 들으며 나도 생각합니다. 지금 아이가 놓으라는 손을 한번, 두번 살짝씩 놓아보아야겠다구요. 내 불안과 집착 때문에 아이 손을 계속 잡고 있으면서 힘들다고 하는 일을 이제 그만해야겠습니다. 그것이 나도 아이도 건강하게 성장하는 길이 아닐까 싶은데요. 잘 할 수 있을까요. 아이 손을 놓을 생각에 마음이 벌써 긴장되는건 내가 아직은 집착과 욕심을 다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