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햇볕아래 동량의 물을 주고 같은 방식으로 바람을 씌워주었는데 결과가 다릅니다. 하나의 장미허브는 잎이 커지고 새잎이 다글다글 올라옵니다. 그런데 한나무는 토동 자라지를 않습니다. 왜 그런지 알수가 없습니다. 분명히 같은 장미허브인데요. 무엇이 문제인 걸까요.
처음 남편을 만났을때 출근 하기전 어머니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며 뽀뽀를 한다는게 너무 충격적이었습니다. 서른도 훌쩍 넘긴 노총각이 무에 그리 예쁘다고 어머니에게 그렇게 살갑게 굴었을까요. 그걸 다 받아주며 남편이 나가는 시간까지 마지막 한입이라도 더 먹이려 요구르트를 들고 남편을 따라갔다는 어머니의 일화는 나에게 너무나 낯선 풍경이었습니다. 언제나 막내아들 막내며느리 사랑한다며 -속마음은 그게 아니라 티가 나지만 - 한번도 사랑 표현에서 나를 빼놓지 않고 말씀하시는 풍경도 낯설었지요. 우리집은 전혀 다른 분위기였으니까요. 엄마에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본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노년기에 접어 들어 겨우 한두번 할까말까 하는 말이었지요. 젊을 때의 엄마는 늘 바빴습니다. 일하느라 바빴고 집에 오면 지쳐 있었지요. 따스한 엄마의 밥상을 기다리기보다는 한번이라도 밥상 차리는걸 더 도와야했습니다. 내가뭘로 점심을 먹었는지 엄마는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장에서 돌아오는 엄마의 두 손을 기대에 찬 눈으로 바라봤지만 매번 빈손이었습니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엄마는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남편은 행복하고 나는 불행했던 것은 아닙니다. 남편은 잘 챙겨주고 따스한 말을 잘 해주긴 했지만 말뿐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실제로 말을 행동으로 옮기는 경우는 없었답니다. 그래서 늘 허울 좋은 말은 잘 했지만 남편을 위해서 부모님이 나서서 행동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답니다. 너무 잘 쟁겨주는 엄마 덕분에 남편은 독립심이 많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챙겨주지 않으면 밥한끼 혼자 먹는 법이 없었지요. 우리집은 달랐지요. 따스하게 오가는 말은 없었지만 말도다 행동이 빨랐습니다. 자라는 과정에서 외롭기는 했지만 독립적이었지요. 책임감도 강해서 맡은 일은 끝까지 해내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말을 먼저 내뱉기 보다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으로 성장했지요. 남편과 나의 이런 특성은 아이들에게 똑같이 아니 다르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진 부모 사이에서 자란 두 아이는 마치 다른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처럼 같은 듯 달랐습니다.
첫째딸아이는 굉장히 독립적인 걸 좋아합니다. 혼자서 자신의 인생을 결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서 간섭하는 것을 싫어해요. 하지만 생황에 있어서는 독립적이지 못합니다. 밥을 혼자 차려먹지 않습니다. 먹을 것을 챙겨 놓아도 꺼내서 먹을 줄을 모르지요. 이상향은 높지만 행동은 하지 않는 아빠를 꼭 빼닮았습니다. 둘째 아이는 어떻게요. 누가 자신의 일에 간섭하는 것을 정말 싫어합니다. 아무리 부모라 해도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는 것을 거부하지요. 그런만큼 책임감도 강하고 자신의 일도 잘해냅니다. 다정다감한 말을 잘 하면서도 행동도 뒤따르지요. 우리 부부의 좋은 점을 꺼내서 닮은듯보입니다. 같은 환경에서 자랐지만 전혀 다른 것처럼 보입니다.
모르겠어요. 겉으로 보이는 크기나 성향이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못하니까요. 크고 튼실해 보이는 장미허브를 두촉으로 나눠서 분갈이를 해주려고 했거든요. 화분에서 꺼내보니 뿌리가 그다지 튼튼하지 않았습니다. 간간히 썩은 뿌리들이 잘라셔서 시들어 있더군요. 지난번에 작고 단단한 장미허브를 분갈이 할때와는 전혀 달랐어요. 잎이 작고 잘 자라지 않아서 부실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뿌리가 튼실하더라구요. 그래요. 누가 알겠어요. 뿌리 속이 누가 더 튼튼한지는 뿌리를 캐보기 전에는 알지 못하지요. 다만 내가 가진 기질을 그대로 물려받아 썩은 뿌리를 갖지 않도록 나 자신을 먼저 단련해야 할 텐데요. 그게 참 쉽지가 않습니다. 어떤 영향소가 아이에게 어떻게 영향을 줄지 모르기 때문이죠. 어렵든 어쨌든 뿌리도 잎도 모두 튼튼하게 영향을 받았으면 좋겠는데요. 나는 과연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 걸까요. 아이의 겉모습으로는 알수 없기에 고개가 갸우뚱 해지는 순간이 너무나 많습니다.
엄마가 아니 부모가 그래서 힘이 든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