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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의 생각의 정원 Oct 05. 2023

흙수저 금수저

"당근"

핸드폰이 울립니다. 얼른 휴대폰을 집어듭니다. 내가 좋아하는, 그래서 늘 갖고싶은 장미허브가 알람에 떴습니다. 장미허브 외목대를 너무 사랑합니다. 꼭 저렇게 키워보고 싶어 화분을 몇 포트나 샀는지 모릅니다. 사서 죽이고 사서 죽이고를  반복하고 알았습니다. 차라리 외목대를 사서 키우는게 났다는 것을. 이번의 장미허브 외목대는 그다지 튼튼해 보이지 않습니다. 판매자가 무슨 물건을 파는지 살펴봤습니다. 나를 참새방앗간으로 만들어버리는 몬스테라도 판매중입니다. 제법 목대도 굻고 공중뿌리도 나왔습니다. 잎도 큰 걸 보니 욕심이 나는데요. 매너점수가 99점인 것이 나를 혹하게 합니다. 당근에서 매너점수가 저렇게 높은 경우는 믿고 거래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거니까요. 식물 두개를 사면 배달도 해준다하니 금상첨화입니다. 내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좋아하는 것들을 집앞에서 받을 수 있으니까요. 거래를 요청하고 판매자가 퇴근하고 배달해 주기까지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기다림은 지루하지만 행복합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저녁 아홉시가 넘어서 판매자가 도착했습니다. 몬스테라는 사진에서 본 것처럼 꽤 튼튼해보이고 잎도 큽니다. 장미허브는 하늘하늘 한 것이 여려보이는데요. 일단 배달을 받기 위해 두개를 주문했지만 장미허브는 부실해 보이네요. 새 집에 이사를 왔으니 분갈이를 해 주어야지요. 뿌리영양제와 해초 방지농약, 종합 영양제를 섞어 나만의 화분 레시피를 차립니다. 새로 산 배수가 잘되는 흙에 영양가득한 지렁이 배양토도 보탭니다. 내 삶은 최고의 럭셔리는 아닐지라도 내가 키우는 아이들은 최고로 키우고 싶습니다. 온갖 영양제를 준비했지요. 기존에 있던 화분을 뒤집었습니다. 

'이게 뭐야.'

당근에서 식물을 사다보면 온갖 뜨악한 광경을 보게 됩니다. 어느 화분은 분갈이를 위해 뒤집어보니 조개껍데기를 갈아서 심었습니다. 어떤 분은 길거리의 흙에 그냥 심어서 시궁창 냄새가 나기도 했지요. 이번 화분도 만만치 않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요상한 흙에 식물은 빵끈으로 묶었습니다. 어묵 꼬치 같은 것으로 고정을 해 두었구요. 지지대를 한 철사는 녹이 잔뜩 슬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가 깨끗할리 만무했지요. 장미허브 몸체는 갈색으로 이물질이 잔뜩 묻어있었습니다. 식물을 꺼냈더니 물기가 온 사방에 가득합니다. 그야말로 찝찝하기 이를데 없네요. 한톨이라도 기존 흙이 남을세라 열심히 털고 영양분 가득한 새 흙과 깨끗한 화분에 옮겨심어주었습니다. 기존의 화분과 흙은 모두 쓰레기통에 넣어버렸지요. 

"새 화분과 새 흙에서 건강하게 자라렴. 우리집에 온걸 환영해."

말은 했지만 잘 자랄지 모르겠어요. 햇볕도 물도 별로 신경쓰지 않고 강하게 자랐던 아이니까요. 우리집같은 온실 속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말이지요. 너무 과보호 하다가 혹시나 잘못되지는 않을지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흔히들 흙수저 금수저 라고들 하잖아요. 화분계의 에르메스 라고 남들못지 않게 신경써서 좋은 재료만 쓴다고 여기며 키우고 있는데요. 생각해보면 잘 모르겠습니다. 자연에 내팽개쳐두어도, 길가의 흙에 심어만 두어도 잘 자라는 녀석들도 있는데요. 나의 과잉보호가 식물들을 유약하게 하는 지도 모르니까요. 

그러면서 아이 생각이 나더군요. 금수저까지는 아니어도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을 최선을 다해 아이를 키웠습니다. 내가 받지 못했던 사랑을 듬뿍 주려 노력했구요. 나의 마음의 빈자리가 있었던 걸 메꾸려는 듯이 끊임없이 정성을 쏟아부었지요. 그런데 그게 아이엑 정말 좋은 걸까 싶어지는 기분이지요. 어쩌면 강하게 자유롭게 자란 아읻르이 더 튼튼하게 야무지게 자랄 수도 있는 거니까요. 아이들은 다른 집에서 살아보지 않아서 잘 모릅니다. 이 환경이 좋은건지 아늑한 건지 비교가 안되잖아요. 그래서 다 만족스러워하지는 않아요. 우리집은 왜 이렇지 불만을 갖기도 할텐데요. 부모인 나는 "네가 다른 집에 가봐야 우리 집의 아늑함을 알지."

라는 말만 되풀이합니다. 아이는 하나도 와닿지 않을텐데도요. 

어쩌면 흙수저도 금수저도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지금 나의 자리에서 내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을 주는 것, 그 안에서 아이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부모가할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이 아닐까 싶어집니다. 

깨끗하게 분갈이한 장미허브와 몬스테라는 과연 어떻게 자랄까요. 나의 욕심으로 아이들의 성질을 거스르면서 내가 하는 대로만 따라오라고 강요하지 않고 기다려줘야겠습니다.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건강한게 자랄때까지 응원해 주어야겠습니다. 그럼 어떤 환경에서든 다시 자리를 잡고 또 제 길대로 튼튼하게 자라나지 않을까 싶은데요. 참 알 수 없는 일이기에 어렵지만 다시 중심을 잡아보려합니다. 함께 살아내야 하니까요. 조금 더 건강하게 커 나가야 하니까요. 그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환경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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