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입니다. 여름 내내 무더위를 잘 견뎌낸 푸릇푸릇한 식물들이 왕성하게 자랐습니다. 이제 곧 겨울이 오고 식물에게 혹한기가 다가올텐데요. 너무 많은 잎을 갖고 있으면 아이들이 힘들수 있습니다.그래서 가을에는 가지치기를 해줍니다. 고무나무도 한켠에 길게 자란 녀석을 잘랐습니다. 한달여를 물꽂이를 해두었다가 흙에 심었지요. 다른 잎들이 모체에서 잘 자라지만 녀석은 아직 얼음 상태입니다. 아무래도 혼자 살아내기가 만만치 않은 모양입니다. 저렇게 한동안 아무 변화도 없습니다. 죽었다면 시들시들 했을텐데 그건 아닌가 봅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뿌리를 내느라 애를 쓰고 있는 모양인데요.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따뜻한 햇빛을 쐬어주고 간간히 물과 바람을 보충해 주는 것 뿐입니다. 부디 제 홀로 독립하여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는데요. 한참을 변화없는 녀석을 힘껏 응원해 봅니다.
얼마전 한 대학 커뮤니티에 사진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 학사관련 문의는 학부모님이 아닌 본인이 직접 해주세요.
스스로의 힘을 믿습니다."
나는 이 사진을 여러번 다시 보았습니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볼 법한 내용인데요.
이게 대학교에서 올려놓은 글이라니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언니에게 물어보니 자신도 조카 대학에 전화를 했다가 혼쭐이 났더랍니다.
미리 학사력을 알아두고 싶어서 사무실에 전화를 했더니 직원이 그러더랍니다.
"이런건 학생이 알아서 챙겨야지요."
민망해진 언니는 학생이 알아서 하지만 부모인 내가 미리 알아두고 싶어서 전화를 했는데 그게 문제가 되냐고 했다대요. 문제가 되진 않지만 이런 일이 너무 흔하다 보니 일이 진행이 안된다는 거였습니다. 학사에 대한 질문과 각종 민원에 시달리느라 자기 일을 못하는 직원의 하소연이 한동안 이어졌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언니는 스스로 저 안내판에 있는 부모가 자신이라며 웃더군요. 평소에 아이를 그렇게 과잉보호하는 스타일도 아니었는데요. 아이는 한둘인데다 부모의 온갖 관심이 아이에게 쏠리니 시간 많고 관심 많은 부모가 먼저 전화해서 알아보게 되더라는 고백이 이어졌습니다.그러게요. 나는 지금 아이가 초등학생이니까 혹은 중학생 이니까 챙겨주는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어쩌면 지금 챙겨주고 있는 이 일을 아이가 대학생이 되도 계속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살짝 두려워졌습니다. 요즘은 군부모라고 한다죠. 군대간 아들 커뮤니티에 사진이 올라오면 왜 내 아들은 이렇게 작게 찍혔나고 항의를 하는 부모들이 있다고 합니다. 군대 뿐인가요. 서른이 넘어서 결혼도 하지 않은 자녀가 외출한 엄마에게 전화해서 과일 먹고 싶은데 와서 과일 좀 깎아달라는 부탁이 낯설지 않은 시대입니다.
아이들을 기르는 최대 목표는 독립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경제적 정신적인 독립을 포함하여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인내하는 삶을 살때까지 부모는 곁에서 도와주는 건데요. 언젠가부터 그 독립의 시기가 너무 길어집니다. 한아이가 태어나면 부모외에도 외가와 친가의 조부모까지 모두 그 아이 하나 키우는데 관심을 쏟습니다. 그러니 아이도 스스로 해볼 기회도 줄어들고 부담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지요. 그렇게 누군가의 도움만을 받고 자란 아이는 절대 홀로 설 수 없을 것입니다.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서면서 아이 손놓기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아침에 일어나지 않아도 깨우거나 전화하지 않고 출근합니다. 그러다 아이가 몇번 지각을 했습니다. 섬세한 남편은 내가 그러지 말라는데도 몇번이나 아이를 전화로 깨웠습니다. 내가 너무 무심하다며 남편은 아직 더 돌봐야 한다고 하는데요. 아빠가 아침에 차려놓은 밥상을 그냥 두고 나가는 아이, 배가 고파도 누가 차려주기 전에는 음식을 차려먹지 않는 아이를 보며 나는 더이상은 안되겠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아들. 냉장고에 닭갈비 사둔거 있는데 그거 좀 볶아줄래."
일을 하다가 아들에게 부탁했습니다. 공부를 하던 아들은 얼른 일어나 부억으로 갔습니다. 몇일 전 처음으로 라면 두개를 다른 냄비에 각각 끓여본 아들은 용기가 생긴 모양입니다. 한참을 지지고 볶는 소리와 냄새가 나더니 맛있게 익어가는 닭갈비 향이 온집안을 감싸더군요. 아들은 입고 있던 잠옷에 닭갈비 양념이 다 튀었다고 투덜대면서도 아주 만족스러워 보였습니다.
"엄마가 하기 귀찮아서 나 시킨거죠?"
"네가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런거야. 이제 너도 가스불에서 요리하는거 연습해야지.
6학년이면 할 수 있어."
아이는 맛있게 익은 닭갈비를 학원 다녀온 누나에게 자신있게 내밀었습니다.
둘이 저녁을 먹는 모습을 바라보니 요리한 아들의 어깨가 한참이나 치솟아 있는 것 같았습니다. 누나가 맛있다고 말해줄수록 더더욱 그 어깨는 치솟아오르겠지요.
고무나무 아이는 아직도 얼음입니다. 지난번에 분양한 언니네 고무나무는 벌써 새 잎을 여섯개나 냈다하니 나도 마음이 급해집니다. 혹시 뿌리가 썩은 것은 아닐까 걱정도 되는데요. 당장 뽑아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잎이 뿌른걸 보면 죽은 건 아니니까요. 어떻게든 어떤 방식으로든 스스로 자라려고 엄청 애쓰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자신의 속도에 맞게 새잎을 내어주겠지요. 행여 새잎을 내어주지 못하더라고 스스로 살기위해서 노력했던 그 시간이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아이가 살아내는 아이의 시간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화려한 결과를 내지는 못하더라도 스스로의 노력으로 홀로 설수 있음을 충분히 뿌듯해 하는 아이였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하루하루 지내다보면 언젠가 부모에게서 홀로 서서 자신만의 인생을 살 수 있을 테니까요. 오늘 서툴고 불안하지만 아직 흔들리는 아이의 손을 놓는 연습을 하고 있는 이유랍니다. 먼 훗날 홀로 성성하게 자신의 자태를 드러낼 아이의 인생을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