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란은 나무 위에 붙어서 자랍니다. 이름 만큼이나 재미있는 모양을 하고 있는데요.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모습이 재미있어 박쥐란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겠지요. 덩어리같은 뿌리 줄기에서 두가지 잎이 모여서 나옵니다. 어릴때는 잔털이 있고 흙을 감싸 수분을 유지하며 자라는데요. 수분을 유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영양엽입니다. 영양엽은 박쥐란의 수분 증발을 막아주고 수분을 저장해두었다가 필요할 때 공급해주기도 합니다. 영양엽 자체가 시간이 지나면 갈색으로 변하면서 서서히 분해가 되며 박쥐란이 자라는데 도움을 줍니다. 이런 영양엽은 조심해서 다뤄야합니다. 영양엽을 함부로 만졌다가는 상처가 나기 쉽거든요. 박쥐란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만큼 귀하게 대해줘야 한답니다.
우리집 아이는 박쥐란을 닮았습니다. 고고하고 다른 식물들과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자신만의 형태와 특징을 가지고 있지요. 식물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질 못합니다. 따로 있으면 너무 예쁘고 탐스럽지만 혼자 거꾸로 매달려 있을 수 밖에 없는 박쥐란을 보면 우리 아이 생각이 납니다.
이번주는 연휴입니다. 중학생이라 하믄 연휴에 친구들과 만나서 시내구경을 가는것이 기본입니다. 아니 기본까지는 아닐지라도 내가 중학생때는 그랬습니다. 마음 속에 수줍음과 내성적인 면을 가진 나였지만 그럴수록 친구들과 더 어울리려고 했습니다. 그야말로 애를 썼지요. 학교가 끝나면 버스를 타고 친구들집에 놀러갔습니다. 농촌이었던 우리집과 달리 내 친구들 집은 어촌마을이었습니다. 우리집과 반대편 쪽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친구들집에 매일 놀러갔습니다. 친구들 집의 색다른 어촌 풍경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친구들 집에서 저녁까지 놀다가 버스를 타고 집에 가곤 했습니다. 버스도 자주 없는 동네에서 몇시간을 기다리고 갈아타고 집에 가는게 쉽지는 않았지만 친구집에 가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중학생 때를 생각하면 늘 친구집에 갔던 생각들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집 딸아이는 나와 다릅니다. 친구가 없습니다. 다정하게 이야기 나누는 절친이 한명도 없습니다. 물론 절친이 다 좋은것만은 아닌거 압니다. 매일 바뀌는게 절친인 것도 알구요. 왕따나 문제를 일으키는 친구관계가 절친인 것도 압니다. 무리로 어울려 다니는 친구들 만큼이나 어려운 것이 절친이지요. 이리저리 두루두루 잘 어울리는게 좋은 것인줄 알지만요. 우리 아이에게는 두루 잘 어울리는 친구도 없습니다. 필요에 따라 한두마디 이야기를 나눌 뿐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아이가 그런 상황을 그럭저럭 잘 견딘다는 것입니다. 혼자서 매점에 가서 간식을 사 먹거나 점심시간에 밥을 혼자 먹는 것도 자연스럽습니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 신기하고도 걱정스럽습니다. 친구가 제일 좋을 나이인데 친구가 없는 아이가 제일 걱정이지요.
연휴니 친구와 연락해서 만나려나 하는 기대도 접은지 오래입니다. 아이는 낮12시까지 잠을 자고는 일어나 천천히 밥을 먹습니다. 우리가 외출을 하려고 하면 같이 따라갈 때도 있고 혼자 집에 있기도 합니다. 오늘도 서울랜드에 가자고 했더니 너무 늦어서 싫답니다. 아침 일찍 가는게 놀이공원이라면서요. 아이가 우겨서 서울랜드에 못가고 결국 서울대공원에 갔습니다. 가서 동생하고 키득대는 꼴을 보니 속으로 한심하더군요. 서울대공원에 엄마와 함께 온 중학생은 찾아보기 힘들었거든요. 물론 매번 친구랑 약속만 잡아서 자식 키워봤자 외롭다고 투덜대는 옆집 엄마의 하소연에 비하며 나을지도 모르지만요. 가끔은 친구와 만나도 좋을텐데 그걸 못하니 아이의 사회성에 문제가 있는건가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이제 그만 부부끼리 고즈넉하게 우리 취향대로 놀러다니고 싶은데 아직도 아이 눈치 봐가며 함께 다녀야 하니 그것도 힘이 들지요. 아이들 비유 맞추기도 귀찮은데 자기들 취향만 고집하는 녀석들이 얄밉기도 하구요. 그렇다고 너는 친구도 없느냐고 몰아세우면 안그래도 그것때문에 상처가 있을 아이에게 소금을 뿌리는 것 같아 마음대로 하소연도 못합니다.
답답한 마음에 저녁에 바람을 쐬러 나왔습니다. 길을 걷다가 상점안을 들여다보니 분식집 안에서 중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떡볶이를 먹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데 순간 울컥해집니다. 중학생이면 저리 놀아야 하거늘 방구석에서 핸드폰만 부여잡고 세상을 간접경험하고 있는 딸아이 생각이 났거든요. 그만 마음이 휘청거렸습니다. 그런데 그 휘청거림 너머 한 목소리가 들리더군요.
'뭐 어때. 꼭 이래야한다 저래야한다는 정답이 어디있어.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자랄텐데.'
그래요. 분식집에서 떠들면서 친구 비위 맞추느라 눈치보며 애쓰고 있는 아이들 틈에서 행복해 보인건 나였습니다. 우리 아이는 그게 아니라네요. 적당히 학교에선 관계를 맺다가 집에선 혼자만 있어도 나쁘지 않은게 내 아이라며요. 그 아이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보듬어주는게 엄마여야 할텐데요. 나는 그러지 못했구나 싶었지요. 마치 잠깐 누군가 만졌을 뿐인데 상처입은 영양엽처럼요. 박쥐란은 튼튼하게 자라고 있는데 내 마음안의 상처받은 자아가 마치 아이가 상처받은 것처럼 감정적으로 오바하고 있었구나 싶어졌습니다.
영양엽은 영양엽의 역할만 해주면 됩니다. 수분을 지켜주고 필요하다고 요구할 때 갖고 있는 수분을 나눠주면 되는 거지요. 박쥐란이 제 모양대로 고고하게 자라듯이 아이 역시 제 모양 ,성질대로 자라날 것입니다. 잘 자라고 있는 아이를 괜히 내가 상처받았다고 동일시 여기며 안고 있으려고만 했었구나 싶었습니다.
떡볶이집에서 웃고있지만 뭔가 어색했던 중학교 아이는 나 하나면 족하지요. 그 곳에 끼지 못하고 있다고 루저도 생각하는 일은 그만둬야겠습니다. 아이는 아무리 방구석 스마트폰러라도 괜찮다잖아요. 내가 내 기준으로 이래라 저래라 할일이 아닌 것이지요.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이가 편안한 미소로 나를 맞이해 줍니다. 우리 딸 사랑해 하며 꼬옥 안아주었습니다. 아이의 조그맣고 따뜻한 심장이 콩닥콩닥 힘차게 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