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현아. 자리에 앉아. 수업하자."
승현이는 자리에 앉지 않은 채 얼굴을 잔뜩 찌푸립니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게 있는 모양인데요. 수업을 시작하려고 아무리 자리에 앉으라고 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의자와 책상 사이를 빙글빙글 돌며 어찌할 줄을 몰랐지요.
"왜그래. 마음에 안드는게 있어?"
책상위나 의자를 살펴보았지만 지난번과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무엇이 승현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지 알수가 없었습니다. 책상 주변을 몇바퀴 돌던 승현이는 갑자기 자기 머리를 내려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얼른 달려가 승현이의 손을 잡으며 말했습니다.
"승현아 나봐, 내 눈봐. 그만. 멈춰."
하지만 승현이는 계속해서 손에 힘을 주며 부르르 부르르 떨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나와 승현이의 실갱이를 지켜보며 공포스런 눈빛을 하고 있었지요. 가끔 있는 일이긴 하지만 승현이가 자신의 몸을 때리는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나 낯설고 두려운 일일 테니까요. 나는 아이들에게 설명할 틈도 없이 승현이를 말리는데 진이 다 빠졌습니다. 한참 극한의 감정을 발산했는지 승현이는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뒤로 물러나 멍하니 있는 승현이를 뒤로 한채 책상과 의자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자신이 익숙한 환경에 조금이라도 변화가 생기면 불안해하는 것이 자폐라는 장애를 가진 친구들의 특징입니다. 그 변화를 바로잡아 익숙하게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물론 조금씩 변화에 익숙해지도록 도와야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감정적으로 흥분하는 날은 실제적으로 차근차근 교육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제서야 나는 의자위에 떨어진 연필심을 보았습니다. 의자위에 떨어진 의자심이 거슬렸던 거네요. 얼른 털어내고 앉으라고 하니 그제서야 승현이는 자리에 앉습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마알간 표정을 하고 있네요. 잘생긴 얼굴 가득 안도의 빛이 돕니다. 나는 승현이와의 실랑이 덕에 수업할 힘도 잃었는데 말이지요.
"승현아. 연필심 싫었지. 그래도 때리는 건 안돼."
연필심과 안된다는 엑스 표시를 보여주며 설명을 했습니다. 시각적으로 예민한 자극을 가진 승현이라서 짧게,눈에 보이도록 설명을 해주는게 중요합니다.
승현이의 이런 행동이 벌써 몇번째인지 모르겠습니다. 승현이가 이런 행동을 할때 가장 미안한 것이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입니다. 그 친구들의 수업 시간이 방해받고 아이들이 공포스러운 기분을 느낀다는 것이 제일안쓰러웠습니다. 말은 안해도 마음으로 느끼고 있을 테니까요.
'어머니 오늘 승현이가 연필심 때문에 자해를 했습니다. 자해를 하는 횟수가 너무 늘어나니 한번쯤은 따끔하게 안된다는 것을 알려줘야 할 듯해요. 승현이도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고쳐나가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 하니까요."
십년도 안된 경력에 열의에 차있던 나는 승현이 어머니에게 알림장을 보냈습니다. 벌써 여러번 알림장에 쓰고 통화를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습니다.
"선생님이 너무 무섭게 해서 더 그런거 같아요. 집에서는 저런 행동 전혀 안하거든요. 선생님이 우리 승현이를 너무 차갑게 대하잖아요."
집에서는 아이가 불편할 정도로 환경을 바꾸지 않지만 학교는 수시로 공간과 구성원이 바뀝니다. 학교에서의 문제가 아니라 집안이 익숙해서라는 것을 어머니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마치 내가 문제였다는 식으로 나를 미워하고 대화하려고도 하지 않았지요.
"중학교에 입학했으니 이제 아이 손을 놓으세요. 더이상 어린 아이가 아니니까요. 혼자서 커나갈수 있도록 독립적으로 키우셔야 합니다."
입학 첫날 그 말을 했을 때부터였습니다. 어머니는 나를 냉혈안 대하듯 했습니다. 한번도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보지 않는다고 오해했습니다. 나는 매력적인 승현이가 참 좋았습니다. 자폐를 가진 친구들이 너무 좋아서 교생실습도 당시 유일한 정서장애학교로 다녀왔을 정도니까요. 내가 승현이이게 차갑게 대한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그런 적이 한번도 없어요.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이 설명하고 더 많이 보듬었다고 자부했는데요. 어머니는 첫날부터 내 인상과 말투가 차갑다고 나를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답답했지요. 실제 제3자의 눈으로 학교 생활을 지켜본다면 그 누구못지 않게 승현이를 챙기고 신경쓴다는 걸 아셨을 텐데 말이지요.
몇일 후 승현이는 교실에 와서 다시금 소리를 지르고 방방 뛰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이유인지 내가 파악하기도 전에 소리를 질러 알아볼 새도 없었지요. 아이들은 모두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바닥만 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승현이에게 다가가 눈을 보며 흥분을 가라앉히라고 말해주려고 했습니다. 그때 승현이가 내 팔목을 잡더니 확 꺾어 버렸습니다. 그러더니 흥분 해서 내 머리를 두꺼운 주먹으로 내리쳤습니다.
"승현아 안돼. 때리면 안돼."
나는 아픔보다도 아이들 앞에서 맞는 모습을 보인게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이들에게 불만이 있으면 교사를 때려도 된다는 식으로 보일까봐서요. 오늘은 승현이가 타인에게 폭력을 가했고 잘못했기 때문에 조퇴를 하는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변화를 싫어하는 승현이에게는 그것만큼 큰 벌이 없을 테니까요. 선생님을 때렸으므로 학교에 있을 수 없다고 확실히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야 승현이의 폭력을 막을 수 있을 테니까요.
승현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말하자 어머니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너가 얼마나 배웠어. 너가 내 아이에 대해 뭘 안다고 잘난체야. 너 대학나왔지. 나도 대학 나왔어. 나는 우리 아들에 대해 알고 싶어서 대학원도 다니거든. 내가 우리 아들에 대해서 더 잘알아. 뭘안다고 건방지게 굴어. 너는 처음부터 너무 쌀쌀맞고 차가웠어. 너가 우리 아들에 대한 사랑이 있긴 해? 오늘 조퇴는 절대 못시켜.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마."
자기 할말만 하고 전화를 끊더군요. 나는 지금 내 앞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망연자실 하기만 했습니다. 나를 때리고 소리를 지르던 승현이는 그새 기운이 빠져선지 다시금 평온을 되찾았구요. 수업을 위해 내려오는 중간에 거슬리는 상황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나와 아이들만 덩그러니 어색한 침묵 가운데 남아있게 되었지요.
그날 어머니는 화에 못이겨선지 하교 시간에 나를 찾아왔습니다. 한참동안 전화에서 퍼붓던 폭언들을 다시 퍼부어대더군요. 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무엇이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싶었지요. 나는 분명히 승현이를 위해서 한 대처였는데요. 왜 어머니는 나를 이렇게 오해하는 걸까 서럽고 서운했습니다.
방방뛰며 소리를 지르는 어머니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왜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순간 아련한 마음이 들더군요. 아마 나도 자식을 둔 엄마였기 때문일까요. 자신의 학벌을 자랑할 만큼 어머니는 아들의 장애가 알고 싶었던 거구나 싶었지요. 계속 공부하고 공부해도 알수 없는 아들의 행동 때문에 화가 난 것이었어요. 그걸 더 따뜻하게 대해주고 감싸주지 않는 내가 너무 야속했던 겁니다.
'내가 저 어머니의 무너지는 가슴을 알기나 할까. 한 순간이라도 그 입장이 되지 못했는데 그걸 이해할 수 있을까. 얼마나 매일 매일 무너지고 아팠을까?'
중증 장애인인 조카의 가족으로 살면서 장애에 대해 느꼈던 회의와 함께 울분이 이해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매일 달라지는 아이의 발달을 보며 매일 뒤쳐지는 기분을 느꼈을 새언니의 아픔을 처음으로 이해했습니다. 나는 내자식이 남들보다 조금만 발달이 늦어도 속상한데 승현이 어머니는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억장이 무너질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더군요.
흥분하며 열변을 통하는 어머니의 손을 나도 모르게 덥석 잡았습니다.
"어머니 죄송해요.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저는 특수교사라서 우리 아이를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오만했어요. 한순간이라도 어머니 입장이 되보지 않은 제가 어떻게 어머니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어요. 어머니의 아픔을 제가 몰랐어요. 이제부터 더 승현이를 따뜻하게 대할께요. 죄송해요."
어머니는 순간 눈물을 쏟으셨습니다. 나의 진심에 그간의 아픔과 상처를 위로 받은 것처럼 어머니는 한참을 그렇게 서글프게 우셨지요.
"선생님. 선생님 덕분에 우리 승현이 학교 잘 마칠 수 있었어요. 정말 감사해요."
그뒤로 승현이 어머니의 태도는 180도 달라졌습니다. 나에게 너무나 친절하고 호의적이었지요. 처음부터 내가 어쩌면 차가운 사람이 아니었단 걸, 아이들의 독립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그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는 걸 이해하신 것 같았지요.
달라진 것은 어머니뿐만은 아니었습니다.
그 후로 나는 내가 맡고 있는 모든 아이들의 어머니를 존경합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몇만번 가슴을 쓸어내리고 아파했을 어머니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알수는 없지만 그래도 알아보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머니들이 조금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하더라도 생각합니다.
'이유가 있겠지. 그 깊고 깊은 마음을 내가 어찌 다 알겠어.'
올해도 나에게 귀하디 귀한 네명의 아이들이 있습니다. 정말 많은 가능성을 가진 아이들이지요. 그리고 그 뒤엔 그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더 잘 키우고자 고군분투하는 어머니들이 계십니다. 아이들 생일이 되면 나는 늘 어머니들께 말합니다.
"어머니. 정말 심성이 착하고 순하고 아름다운 아이를 잘 키워주셨습니다. 정말 애쓰셨어요.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으로 아이가 반듯하게 정말 잘 자랐습니다.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를 제게 보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세상의 모든 아이는 소중하고 엄마의 사랑과 정성으로 크고 있다는 사실은 언제나 진리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