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비슷한 시간에 지하철로 출근을 하다보면 의도치 않게 계속 만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같은 공간에서지만 핸드폰을 보고 있기 때문에 사람을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은데요. 그 아주머니는 알아차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처음에는 이상하다 싶어 존재를 눈치 챘습니다. 내가 서서 다리를 들었다 놨다 운동을 하고 있으면 내 옆에서 꼭 무릎을 굽혔다 폈다 하고 있으니까요. 도대체 저게 무슨 운동일까 궁금증을 갖게 했지요. 하지만 각자 맞는 운동을 하는 것이려니 하고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몇번을 그렇게 마주치면서 아주머니를 신경쓰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요. 그렇게 무릎 굽히기 운동을 하면서 큰 소리로 통화를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주머니는 나와 나란히 서서 무릎 굽히기 운동을 하면서 아들과 전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거침없고 사납게 튀어나오는 한마디가 여느때와 비슷합니다.
"너 어디야. 너 학교 안가? 너 그럴거면 학교 그만둬. 택시 불렀어? 지금 가도 지각이야. 빨리 움직여. 어서 뛰어."
여기까지는 몇번 들었떤 멘트와 비슷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한마디가 더 붙었습니다.
"너 그럴거면 학교 그만둬. 자퇴해. 네가 학교 다닐 마음이 있기는 한거야? 갈거야? 나왔어? 그래 막말해서 미안해. 이만원? 그래 줄께. 지금 가면 삼만원주고 이따가 저녁에 잘 다녀오면 사만원 줄께. 칠만원주면 됐지? 어서 택시 타. 빨리 가달라고 해. "
갑자기 돈 이야기가 튀어나왔습니다. 나는 태연히 핸드폰을 보는 척 했지만 온통 관심이 그 통화내용에 쏠려있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아주머니는 내 옆에서서 큰 소리로 계속 통화를 이어나갔으니까요.
그 집 아들은 아침에 학교를 가지 않으려 하는 모양입니다. 가끔 빨리 택시를 타라,어디냐는 통화를 들어왔기에 알고 있던 바인데요. 오늘은 돈 이야기까지 등장했습니다. 학교에 잘 다녀오면 칠만원을 용돈으로 주겠다는 겁니다.
'저 아주머니는 도대체 어쩔 심산인거지? 저렇게 돈을 받고 학교에 가는 걸 배우면 나중에 직장 다닐때도 저렇게 하실 건가?'
의문이 들었습니다. 물론 당장 아이가 심한 사춘기?가 왔거나 문제가 생겨서 구슬리고 달랠 수 밖에 없는 상황인건 맞겠지요. 으름장을 놔봐도 화를 내도 움직이지 않는 아이라서 어쩌다보니 돈을 준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게 되었겠요. 그러는 중에 엄마입장에서 얼마나 애가타고 속이 상했을까 싶기도 했지만요. 결국은 저렇게 돈으로 아이를 움직이는게 아이에게 과연 도움이될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주머니의 통화를 들으며 그렇게나 신경이 쓰였던 것은 나 역시 아이를 키우며 이런 저런 고민들로 줄타기를 할때가 많기 때문일 거에요.당장 아이를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 나 또한 눈가리고 아웅식의 딜을 할 때가 있어서 내 모습이 빗대어 보였으니까요. 쉽사리 마음을 떠나보낼 수가 없었을 겁니다.
"너 학원 몇시까지 갈꺼야? 오늘도 학원 늦게 가지말고 서둘러서 가."
점점 학원에 가는 시간이 늦어지는 아이를 보며 내가 하던 말입니다. 아이가 하교 후에 바로 학원에 가는 것이 힘들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간식도 먹고 좀 쉬었다 가라고 여유를 주었지요. 자율학습식 학원이라 시간 조절이 가능했으니까요. 그런데 아이가 점점 쉬는 시간이 늘어나 마지노선인 6시를 자꾸 넘기기 시작했습니다.
학원선생님과의 면담 날. 잘 큰 청년인 학원선생님은 나의 이런 모습을 정확하게 읽어주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아이를 배려해서 학교 끝나고 쉬는 시간을 주신 점 이해합니다. 그래서 아이가 학원에서 제일 늦은 시간에 등원을 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점점 시간이 늦어지는 겁니다. 자신을 배려해서 한 행동인데 그것은 누리고 자신의 의무는 다 하지 않는다면 배려나 권리를 주장할 수 없음을 배워야겠지요. 하교 후에 바로 등원하도록 조정하는게 어떨까요."
선생님의 말을 들으니 옳다구나 싶었습니다. 내가 아이를 얼마나 잘못 키우고 있었는지 순간 절감했습니다.
"네 맞네요. 저는 아이가 조금이라도 힘들면 그게 안쓰러워서 제가 어떻게든 편하게 만들어주려고만 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키우다가는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는 아이로 키울 것 같아요. 권리만 주장하고 의무는 다하지 않음녀서 어려움이 올때 나에게 의존하는 어른으로 키우면 안되지요. "
아이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했습니다. 아이는 당장은 바로 학원에 가는 것이 싫었지만 자신의 행동이 있으니 받아들이는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모르지요. 몇일 있으면 또 다시 학원가는 시간이 늘어지게 될지도요. 그때마다 내가 마음을 독하게 먹고 다시 아이를 이끌어야겠지요.
"너는 너의 할일을 하는거야. 어렵더라도 해내야해.학원 선생님에게 공부는 어렵고 세상일이 다 어려워서 싫다고 했다며. 왜 너는 어려운 일만 해야 하는 거냐며 따져 물었다며. 슬프지만 인생이 그래. 어려움을 이겨내야 하는 과정이야. 지금 너는 어려운 일들을 겪어가면서 맷집을 키워가는 중이지. 그 어려움을 피해선 안된단다."
언제까지나 내가 아이의 어려움을 커버해 줄 수 없다면 되도록 빨리 아이가 어려움과 맞닥뜨려서 이겨낼 수 있도록 하는게 내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육아가 되겠지요.
겨울이 오고 있습니다. 겨울이 오면 잘 자라던 식물들이 바짝 움츠러듭니다. 열대 기후에 자라던 관엽식물들은 더 하지요. 추위를 이겨낼 힘이 약한 식물들은 새잎을 내기보다 지금 갖고 있는 자신의 잎들을 지켜내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그럴때 식집사인 나는 그 추위를 겪어내는 식물을 곁에서 지켜보며 최대한 덜 춥도록 살펴주어야 합니다. 물이 마르지 않도록 가습기도 틀어주고요 식물등으로 햇살대신 빛도 제공해주지요. 그러면서 가끔 창문을 열어 겨울 찬바람으로 환기도 시켜줍니다. 식물들에게 직접 차가운 바람이 닿지는 않더라도 신선한 공기를 쐴 수있게 해줘야 하거든요. 그래야 식물들이 겨울에도 죽지 않으면서 추위를 이겨내는 강한 식물로 커나갈 수 있으니까요. 그런 겨울에 식물이 새 잎을 내주지 않는다고 떼쓰거나 무리하게 영양제를 주어서 자랄 것을 강요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 추운 겨울을 한껏 움츠러들면서 아껴둔 기운으로 봄에 새싹을 올릴 수 있습니다. 아니면 약해져서 뿌리가 점점 썩어들어가겠지요.
아이를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일겁니다. 내가해줄수 있는 것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뿐이죠. 그 환경에서 제 힘껏 자라는 것은 아이의 몫입니다. 내가 대신 자라줄 수는 없겠지요. 그러니 아이가 조금 움츠러든다고 해도 흔들린다고 내가 더 아파서 모든 조치를 먼저 취하지 않아야겠습니다. 그것이 부모로서 내가 아이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란 걸 순간순간 잊지 않아야 겠어요. 내가 먼저 나서서 아이의 추위를 감싸기 위해 옷을 덮어주고 꽁꽁 싸매고 있다가 아이를 유약하게 만들지 않겠습니다. 그게 진정 아이를 위한 일이 아님을 꼭 기억해야 겠어요. 내가 생각하는 최선과 아이에게 필요한 최선이 다르다는 것을 잊지 않는 현명한 부모가 되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