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현의 생각의 정원 Oct 26. 2023

이쁜 털 미운 털

오랫만에 교육청에 파견나간 선생님과 대화창을 통해 인사를 했습니다.

"교육청에서 회의가 열렸어요.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라대요. 업무량이 많아서 힘들다고 의견을 말했거든요. 장학관이 중간에 시간 없다면서 말을 자르더라구요. 그 장학관 아시죠. 여기서 근무했던 그분이잖아요. 사람 말을 자를거면 왜 불렀나 싶었지요. 의견 듣고 반영하겠다더니 전혀 아니었어요. 선생님들 모두 화가 난채로 돌아왔죠. 차라리 회의를 안했으면 나았겠다 했어요. 다녀와서 기분만 상했다니까요."

"그분 답정녀잖아요. 자기 기준에 따라서 중요한 일과 아닌 걸 나누죠. 문제는 일 뿐만 아니라 사람도 나눈다는 거지요. 윗사람에게는 아주 부드럽게 대해요. 하지만 아랫사람말은 절대 듣지 않죠. 대화를 나누다보면 개무시 당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상하죠. 선생님들도 속상할만 하네요."

"그쵸. 얼굴만 봐도 딱  남의 말 안들어주게 생겼어요. 진짜 답정녀에요 그분. 교육청에 있는 분들 중에 멀쩡한 사람이 참 드물어요. 하긴 A장학사님은 그나마 낫네요."

대화 중에 A장학사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그 분은 완벽주의긴 한데요. 자기도 그만큼 열심히 하면서 우리에게 일을 주니까 사실 할말이 없어요. 안하면서 시키기만 하는건 아니니까요."

"맞아요. 그분은 학교에 교사로 있었을 때도 애들한테 진심이셨어요. 정성을 다해서 애들을 가르치셨죠. 그 부분은 진짜 리스팩이에요. 자신도 열심히 하면서 우리에게도 길을 알려주니까 할말이 없긴 하죠. 힘들긴 하지만 그게 맞잖아요. 분명히 배울 점이 있는 분은 맞아요."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뒷담화처럼 이사람 저사람 이야기를 하며 근황을 이어나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말하는 대상에 대한 우리 각자의 평가가 다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김치 하면 찌개라는 말이 술술 나오는 것처럼 한 사람 한사람에 대한 우리의 느낌이 꼭 같았지요. 우리가 같은 공간에서 근무를 하는 것도 아니고 매일 만나는 사이도 아닌데 참 신기했습니다. 

"그 분 진짜 괜찮지 않아요?"

"아니요. 겪어보세요. 전혀 아닙니다. 그분."

이렇게 대화를 이어나가는 경우도 가끔 있는데요. 때로는 반대의 경우도 생기죠.

"그 사람 진짜 아닌거 같애."

"아네요. 지나보면 괜찮으실 걸요."

둘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무르익다 보면 다른 시선과 느낌으로 다가오는 케이스입니다. 첫인상과 오래지내본 인상은 다른 경우도 간혹 있으니까요. 

"처음에 인상이 안 좋은게 훨씬 나아요. 그럼 기대치가 없잖아요. 정리 해야할 일이 있으면 그것도 만나자마자 해결해야 해요.정들면 정리하기 어렵거든요. 첫 인상이 세게 보이면 다음에 조금만 상식적으로 행동해도 다들 놀래요. 그러면서 굉장히 멀쩡한 사람으로 본다니까요. 나 처럼 첫인상이 둥글둥글해 보이면 사람들이 만만하게 봐요. 내가 그러란 적도 없는데 본인이 나에 대해 과한 기대치를 설정하고 혼자 실망하죠. 정말 그럴 줄 몰랐다면서 막말을 퍼붓는 사람도 있어요. 그럼 난 정말 황당해요. 난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한번도 말한 적이 없는 걸요."

사납고 강해보이는 내 첫인상을 부러워하며 옆 선생님이 내게 건넨 푸념입니다. 물론 첫 인상이 중요하긴 하지만 실상은 지내보면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평가는 달라집니다. 그리고 그 평가는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가장 큰 평가 기준이 되지요. 

"이쁨받는 것도, 미움사는 것도 다 제 행동에서 나와요. 이쁜 짓을 해야 이뻐하지요."

끝끝내 밉상짓을 못 놓는 사람을 보며 내뱉던 그 선생님의 한마디가 어쩌면 세상을 관통하는 진리인지도 모르겠어요. 



처음 제브리나를 보았을때 그 광내에 흠뻑 빠져들었습니다. 보드라운 실크질감이 어찌나 고급스런던지요. 이거 안살수가 없더라구요.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나면서 제브리나는 점점 이상해졌습니다. 잎이 말리기 시작하더니 누렇게 이곳 저곳 타들어갔습니다. 그렇게나 예쁘던 첫 모습이 있었기에 나는 너무 속이 상했습니다. 어떻게하면 제브리나를 원래대로 돌릴까 온갖 서치를 다했지요. 제브리나가 잎이 말리는 이유는 공기가 건조해서래요. 잎이 타들어가는 것도 마찬가지 원인이구요. 그래서 얼른 화장실로 데려갔어요. 습기가 많은 곳에 두고 비닐을 씌워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잎이 빵긋 펴졌어요. 다시금 반질 반질 윤기나는 매력을 뽐내더군요. 그런데 그 매력이 하루를 넘지 못했습니다. 다시 잎이 말리네요. 잎을 계속 비닐로 덮어두면 무슨 소용인가 싶었습니다. 그래서 가습기 아래로 자리를 잡았지요. 매일 거의 쉬지않고 가습기를 틀어주었습니다. 그러면 다시 입이 조금 펴지는가 싶은데요. 가습기를 끈 잠깐의 시간을 견디지못하고 다시 잎이 또르르 말립니다. 잎이 말리고 노랗게 타들어가는 제브리나를 볼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내가 식물을 잘 못 키운다는걸 인증이라도 하듯이 늘 상태 안좋은 모습이었으니까요. 과연 이 녀석을 계속 살리고자 가습기를 트는게 맞나 싶기도 했어요. 어차피 가습을 해줘도 처음의 상큼한 모습으로 돌아갈 것 같지가 않았지요. 

언니랑 통화를 하다가 제브리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언니에게 한뿌리를 분양해 줬는데요. 언니네 제브리나도 상태가 똑같답니다. 

"제브리나는 영 안예뻐. 늘 잎이 저렇게 말려있어. 이런 저런 방법을 써봐도 별수가 없어.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화가 나. "

"나도 그래. 저걸 계속 키우는게 맞나 싶다니까.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으니 보면 화만 나는 거지. 제 이쁨은 자기 하기 나름이라는 데 저건 꼴보기 싫은 모습만 보이니 예쁠 수가 있나."

우리 둘은 똑같이 제브리나를 흉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었지만 싹수가 노란건 끝까지 노랗더라구요. 

"신기한게 사람 보는 눈은 늘 비슷비슷해요. 묘하게 쎄한 기운을 주는 사람을 보며 내가 오해했겠거니 생각하곤 했는데요. 이제는 안그래요. 묘한 느낌을 주는 이유가 있거든요. 시간이 지나면 그게 드러나더라구요. 나만 그렇게 본게 아니었구나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서 알수도 있구요. "

"그러게. 어쩜 선생님이랑 나랑 장학관이나 장학사나 바라보고 평가하는 게 이렇게 비슷할까요. 이래서 제 모습을 오래 감출수가 없다고 하나봐요."

나이가 들며 이유없이 미워하는 사람은 없다는 걸 알고 나서는 나역시 내 단도리를 더 하게 됩니다. 내자신에게서 이쁨이 뿜어져 나오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이 들수록 얼굴은 미워질지 몰라도 그 사람만의 훈훈한 분위기는 깊어지는 법이니까요. 내 이쁨을 나에게서 만들어가고 싶지요. 대단히 유명한 사람은 아니더라도, 세상이 놀랄만한 큰 성공은 못하더라도 괜찮아요. 나만이 풍기는 편안하고 훈훈한 사람냄새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매력적이고 예쁜 사람일 테니까요.

작가의 이전글 괜찮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