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원고 교정을 하다가 막혀버렸습니다. 공저자로 책을 함께 집필한 언니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너무 바빠 메시지를 화장실에 가서야 한꺼번에 확인한다는 언니였는데요. 급박한 나의 문자에 바로 전화를 걸었더군요.
"뭐가 문젠데?"
"내가 어느 출판사에 원고를 투고했다가 피드백을 받았거든.근데 그 출판사의 피드백이 다 맞는 말만 있는 거야. 소제목이 너무 주제만을 드러낸다. 흥미를 끌 수 있는 제목으로 바꿔라 그러대. 맞는 말이잖아. 주제 제목을 설명없이 써놓기만 하니 이해가 안된대. 재미있고 유쾌한, 한번에 알 수 있는 상황으로 서술하라는 거야. 또 맞는 말이지.그래서 그렇게 고쳤어. "
"그러네. 출판사가 다 맞는 말을 했네."
언니가 맞장구를 쳤습니다.
"마지막으로 출판사가 지적한게 어투에 관해서야. 구어체로만 표현이 되니 지겨울 수 있다더라. 그래서 ~습니다. 체로 바꾸는게 좋겠다고 하더라."
"그럴 수 있지. 아무래도 ~습니다로 표현하면 전문가의 어투같은 기분이 드니까. 신뢰가 가잖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서 한참 교정을 본거야. 그런데 퇴근하다가 글쓰기에 대한 책을 읽었거든. 거기에 입말로 쓰는 글이 좋다. 글은 쉽게 쓰라고 되어있더라. 읽어보면서 막히지 않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내 글이 그랬었거든. 근데 ~습니다. 체로 쓰니가 글이 딱딱해진거야. 이게 맞는건가 순간 판단이 흐려진거지. 언니는 어떻게 생각해."
언니에게 교정전과 교정후의 원고를 보내놓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몇줄을 따라 읽어보던 언니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구어체가 많으면 집중이 안되는건 맞아. 그런데 그게 네 문체의 특징이잖아.너만의 개성이야. 그래서 네 글이 한 번 잡으면 쭉쭉 끝까지 다 읽히는 거거든. 말하는거 같으니까. 그런데 ~습니다. 체로 바뀌면 너만의 문체가 사라져. 나는 원래 네 글이 더 좋은 걸."
언니의 말을 들어보니 진짜 그랬습니다. 다시 입말로 읽어보니 보다 전문적이고 안정적으로는 보였지만 쭉쭉 읽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다로 끝나는 순간 어렵다 싶고 책도 놓고싶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맞네. 괜히 엄한 말 듣고 글 고쳤다가 내 개성을 싸그리 없애버릴뻔 했어."
예전에 교육자료 발표를 지역대표로 나간 기억이 났습니다. 나는 발표를 빌게이츠처럼 하고 싶었습니다. 키워드로 궁금증을 일으키고 자세한 내용은 내가 정리해서 강의 중에 설명하고 싶었지요. 그때 준비를 하면서 혹시몰라 대회에서 상을 여러번 탄 선생님께 문의를 했는데요. 선생님은 토씨하나 빼놓지 않고 발표자료에 넣으라고 하셨습니다.딱딱해지고 꽉찬 자료를 보면서 답답하긴 했지만 그게 정석이라고 하니 함께 고쳤는데요. 결국 내 발표는 차별점 없는 밋밋한 발표가 되어버렸지요. 그때가 가끔 생각나면 '안고치고 내 주관대로 밀어붙였다면 어쩌면 더 좋지 않았을까.'싶은 후회가 들기도 했었지요. 그때 생각이 나면서 아차 싶었습니다.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은 글이 정말 잘 읽힌다고 합니다. 글밥이 많은데도 어쨌든 끝까지 읽게 된다고 해요. 투고했다가 여러번 퇴짜를 맞아 또다시 수정중인 나의 첫번째 소설마저 그랬습니다. 개연성도 없고 너무 자극적인데 끝까지는 읽힌대요. 이게 뭔가 싶으면서도 끝까지 읽겓된답니다. 그것이 나의 문체와 글의 힘일텐데요. 나는 전문가라는 사람의 어설픈 조언 따라 하다가 또 다시 나의 개성을 잃을 뻔 한것이지요.
춤을 배울 때 새로운 회원이 한명 왔었습니다. 오십대였지만 길게 늘어트린 생머리가 참예쁜 언니회원이었는데요. 생긋 웃는 미소가 정말 매력적이었습니다. 춤 동작도 세련된대다 몸에 흥이 가득해서 춤을 출때마다 쳐다보게 하는 마력이 있었지요. 춤출때마다 몰래몰래 쳐다보곤 했는데요. 춤이 끝나고 헬스하러 간 날 그 회원님이 나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춤추면서 어떻게 그렇게 예쁘게 웃어요. 미소가 참예뻐, 앞에서 웃으며 춤추는게 예뻤어요."
몸치인 내가 그나마 선생님의 흥 덕분에 어찌어찌 흔들어대고는 있었어요. 선생님이 방긋방긋 웃으며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며 나도 살짝 살짝 미소가 머금어졌는데요. 그 모습에 칭찬을 해준 것입니다.
그 날부터 가끔 헬스장에서 만날때마다 예쁜 언니 회원을 늘 나에게 반갑게 인사를 해주었습니다. 조그만 거라도 기분 좋은 장점을 찾아 얘기해 주는 모습에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았지요. 나 뿐 아니라 회원들을 보며 행복한 미소를 건네게 말을 걸고 살갑게 대하는 모습이 참 멋졌습니다. 어쩌면 저렇게 붙임성이 좋을까 놀랍기도 했구요. 세상에 태어나서 단 한번도 상처를 받아보지 않은 사람처럼 밝게 사람을 대하는 모습이 존경스러울 정도였지요.
'내 안에도 저렇게 따뜻하고 오지랖 넓은 인싸 모습이 있었는데.'
나는 예쁜 언니 회원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잃어버린 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그 언니였습니다. 나는 언제부터 얼마나 상처를 받았다고 인간관계에서 웅크러지고 나를 드러내지 못했나 싶은 생각이 들자 조금 서러워졌지요.
'나는 나만의 빛깔과 장점이 있어. 더이상 부끄러워하지도 숨기지도 말자. 내가 가진 본연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고 가치로운지 너무 오래 잊고 살았어.'
나는 오늘도 글을 쓰고 고칩니다. 유홍준처럼 해박한 지식도 정여울처럼 고민이 가득한 성찰도, 유시민처럼 지식을 연결해 표현하는 힘도 없습니다. 무식하지만 솔직하고 경박하지만 쉬운 글을 씁니다. 그리고 그런 내 글을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나만의 색깔과 자태로도 충분히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하루하루 살면서 더 깊이있게 느끼고 있으니까요.
"됐어. 오늘 하루도 나답게 잘 썼어."
나이가 들면서 내가 나를 더 이해하게 되면서 나를 더 사랑할 수 있게 된것 같아 눈가의 잔 주름이 오늘은 덜 속상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