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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의 생각의 정원 Oct 25. 2023

괜찮아.

똑똑!

이른 아침 교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경쾌합니다.

밝고 짧은 리듬인걸 보니 하진이가 왔나보네요.

몇일 동안 아파서 학교를 쉬었던지라 오랫만의 학교가 더 신난 모양입니다.

"안녕하세요."

밝게 인사하며 교실로 들어섭니다.

오자마자 노래를 흥얼거리며 몸이 들썩거립니다.

교실에서도 신나게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었나봐요. 기분이 한껏 들떴습니다.

하진이는 원반 교실에서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고 수업시간에도 발표하겠다고 손을 번쩍 번쩍듭니다.

음악시간에는 어찌나 목소리가 큰지 선생님이 잠시 화음 조정을 위해 하진이의노래를 쉬게 할 정도이지요.

가끔 마음에 안들때는 욕을 시원하게 날려주어서 친구들이 당황하기도 하지만

하진이는 그정도로 개의치 않습니다. 즐겁게 자기 흥대로 교실생활을 즐깁니다.

우리 교실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하진이는 웃음과 유머를 주는 활력을 불러 일으키는 존재입니다.

노래만 흘러나오면 어찌나 현란한 동작으로 춤을 추는지 보는 사람마저 힘이 납니다 .

춤추는 감각이 뛰어나서 동작을 따라하는걸 보면 정말 나같은 몸치는 부러울 정도입니다.

웃을때 동그래지는 눈은 하진이를 더욱더 매력적으로 만들지요.

오늘도 하진이는 아주 기분 좋게 교실로 들어섰습니다.

"자. 오늘은 수학 공부를 해 봅시다. 계산 연습은 꾸준히 해야하니까요. "

세자리 더하기와 빼기를 연습하는 문장제 문제를 풀기 시작했어요.

이번 시간 수업 파트너인 진표와 함께 열심히 문제를 풀어나갑니다.

서로 문제의 유형과 난이도는 다르지만 자신만의 과제를 해 나가는게 익숙한 아이들은 제 문제분량을 해결합니다.

더하기 문제는 곧잘 풉니다. 올림이 있는 세자리 더하기도 거뜬하지요.

" 자 다음 문제. 준이가 549개 과일 중에서 318개를 땄습니다. 그럼 남아있는 과일은 몇개일까요?"

하진이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습니다.

자신만만하고 위풍당당하던 모습은 순간 사라졌습니다.

"하진아, 세로샘으로 문제 써서 풀어보자."

세로샘으로 문제를 연습지에 쓰긴 했는데요. 갑자기 자신을 잃은 모습닙니다.

9-8을 세로샘으로 다시 쓰더니 한참을 망설입니다.

"하진아. 9-8이 몇일까?"

하진이는 오랫동안 멈춰있더니 갑자기 통통하고 하얀 자신의 손가락을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손가락을 아홉개 펴더니 여덟개를 힘겹게 접었습니다.

그모습은 이제껏 보아오던 하진이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한껏 기가 죽어있는 얼굴이었지요.

"하진아. 더하기는 잘했잖아. 빼기가 어려워? 중학생인데 손가락으로 계산할 정도로?"

하진이는 내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하진이의 얼굴에서 장난끼가 사라진 잠시잠깐의 순간이었지요.

"하진아. 선생님 봐. 선생님 눈 봐봐."

그제서야 하진이는 살짝 눈을 들어 나를 바라봅니다.

"하진이 빼기 못하겠어? 중학생인데 손가락으로 계산하는거 될까 안될까?"

들리지 않을 정도로 하진이가 대답합니다.

"안돼요."

"하진아 안되는건 없어. 괜찮아. 모두다 잘할수는 없어.

하진이는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잖아. 말도 잘하고 인사도 잘하지. 더하기는 잘하지만 빼기는

어려울 수 있어. 사람은 다 그래. 다 잘할수는 없어."

하진이는 이게 무슨말인가 싶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습니다.

"어려울때는 손가락 써서 계산해도 돼. 그런데 남들이 볼까봐 부끄러우면 살짝 손을 아래로 내려서 계산해.

남들 잘 보이지 않게. 그러면 돼. "

하진이는 괜찮다는 말에 다시 에너지가 충전되었는지 빙그레 웃었습니다.

"알겠어요."

"자. 계산 문제 많이 풀었으니까 우리 놀이 하나 하자. 구구단 게임 어때?"

진표와 하진이는 재미없는 계산 문제공부가 끝났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며 반색했습니다.

"구구단을 외자. 구구단을 외자."

진표부터 문제를 냈습니다.

"9*1은?"

하진이가 대답합니다.

"9. 9*2"

"18. 9*3"

"27.9*4"

그렇게 둘은 주고 받으며 9단을 마쳤습니다. 다음은 2단입니다. 2곱하기1부터 2곱하기9까지

또 차례대로 주고받습니다.

이렇게 무해한 구구단 게임은 처음입니다. 서로 틀리면 가르쳐주며 한단 한단을 순서대로 완성해 가는 게임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곤란에 빠트리고 어렵게 할까 고민하는 세상에서

이렇게 아무 해없이 서로 즐겁게 나누는 아이들의 모습이 소중하고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나는 한단 한단을 완성할때마다 아이들에게 기립박수 수준의 큰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정말 멋지다.정말 대단해."

아이들이 구구단을 외우며 주고받는 게임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더군요.

"이번 시간엔 수학 세자리 올림과 내림이 있는 계산도 했고 구구단게임도 했어. 너무 공부를 많이했다.

선생님은 머리 아프다. 머리를 너무 많이 썼나봐. 우리 실컷 공부했으니 쉬는 시간엔 노래 한곡 들을까? 어때?"

"네 좋아요. 저는 나나나송 들을래요."

"저두요."

대답하는 하진이와 진표의 목소리가 교실을 쩌렁쩌렁 울렸습니다.

노래가 나오자 신이 나서 춤추는 하진이의 춤과 노래가 정말 신명나더군요.

하진이의 목소리는 굵고 자신있었으며 동작은 그 어떤 댄스보다도 힘있고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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