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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의 생각의 정원 Nov 09. 2023

민폐 아니고 친구

학교 전체 현장학습 계획을 보았습니다. 3학년 현장학습이 줄줄이 입니다. 3학년 기말고사가 끝나는 2학기가 되면 아이들 체험학습을 자주 나갑니다. 올해는 유독 교육청 지원이 많아 체험도 늘었습니다. 나 혼자서 현장학습에 참여하는 아이들을 모두 케어할 수는 없습니다. 3개 학년이 모두 우리반에 소속되어 있으니까요. 어쩔 수없이 학교 전체 현장학습때는 우리반 자체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1학년은 명동으로 2학년은 에버랜드로 3학년은 영화관으로 가는데 모두를 따라가서 지원하기 어려우니까요. 이번에도 그런 현장학습이 몇 번 있었고 우리끼지 즐겁게 다녀왔습니다. 통합교육이니 원반의 친구들과 함께가도 좋겠기에 아쉽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었지요. 그런데 이번에 새로 3학년만 명동에 가는 체험이 생겼습니다. 교육청에서 지원이 내려와 급하게 계획을 세웠다는데요. 이번에야말로 기회다 싶었지요. 학교에서 2교시 수업을 하고 밥을 먹고 출발한답니다. 지하철을 타고 명동에 가서 난타공연만 보고 돌아오면 됩니다. 다른 활동이 여러개 있으면 아이가 혼란스러울 수 있는데요. 심플했습니다. 이번에는 반 친구들과 오랫만에 체험활동을 함께 해도 좋겠다 싶었지요. 

 기현이에게 물어보기 전 어머님께 의견을 여쭈었습니다. 반 친구들과 하는 활동도 함께 하면 친해질 기회가 생길 것 같아 좋아보였거든요. 

"선생님. 이미 아이들이 모둠이 형성되었는데 우리 기현이가 끼어도 될까요?"

어머니는 조심스러웠습니다. 친구를 가장 갖고 싶어하지만 반에서 친구를 만드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지요. 이미 친해진 친구들 사이에서 기현이가 어색해하고 민폐끼칠까봐 걱정이 된 것입니다. 

"초등학교 때도 우리 아이랑 모둠 만들어서 체험학습 가는 일 있었거든요. 그러면 그땐 도와주는 아이들 뿐 아니라 부모님께도 동의를 받았어요. 그러면 친구 부모님들이 싫어하시는 경우가 종종 있었어요. 자기들끼리 특수학교에 가면 되지 왜 일반학교에 다녀서 괜히 민폐라구요. 상처받았지만 반 친구들이랑 배우는게 있다고 생각해서 억지로 보냈거든요. 근데 요즘은 기현이가 친구들 눈치를 많이 봐요. 그게 마음이 아픈대요. 괜히 가서 눈치보고 낄까말까 망설이는 것보다는 안보내는게 낫지 싶어요."

어머니의 상황과 심정이 이해가지 않는 바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친구들과의 활동을 통해 기현이도, 친구들도 배우는바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지요.

"어머님 말씀은 이해가 됩니다. 그럼 담임 선생님과 상의해볼께요. 아이들 역시 그 과정에서 배우는게 있을 테니까요. 나쁘게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어머니와 통화를 마치고 담임선생님을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내가 기현이 데리고 갈께요."

선생님은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셨습니다.

"다 친구들이랑 가는데 샘이 데리고 가시는건 아닌거 같구요. 어머니가 친구들에게 민폐라며 쉬게 하고 싶으시대요."

"그게 왜 민폐야. 그 애들도 그 과정에서 배우는게 있지. 어려운 친구를 도와준 경험이 얼마나 평생에 도움이 되겠어요."

선생님의 생각도 나와 같았습니다. 이렇게 기꺼이 아이 현장학습에 성의를 보여주시는 선생님이 고마울 따름이었지요. 

"우리반에 기현이 도우미 친구들있거든요. 두명인데 그 친구들에게 이야기해볼께요. 우리 애들 괜찮다고 할거 같은데요."

선생님은 걱정하지 말라며 교실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종례후 담임선생님에게서 메시지가 왔습니다. 

"조효신, 김현준 친구가 기꺼이 기현이 도와주기로 했어요. 염려말고 보내세요."

나는 얼른 이 기쁜 소식을 어머니께 전했습니다. 어머니도 친구들 너무 고맙다며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함께 보내보겠다며 말끝을 흐리셨지요. 초등학교 때 민폐취급 당했던 상처가 어머니 마음에 크게 자리잡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나 역시 이런 일에서 여러번 거절당하고 내 책임으로만 떠맡기는 선생님들 덕에 상처가 있었지요. 하지만 이해심 깊고 배려하는 선생님과 친구들 덕에 기현이가 잘 다녀올수 있게 되어 한숨을 놓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기현이랑 어제 밤에 이야기해봤는데요. 기현이가 가기 싫대요. 그날 학교 쉬는게 나을 거 같아요."

다음날 아침일찍 기현이 어머니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기현이가 아무래도 친구들이랑 가는게 불편한가봐요. 다음 스케줄 때문에 안간다고 하는데 여유있거든요. 눈치가 보이는가봐요."

지하철안에 한 남자가 들어섭니다. 남자는 터벅터벅 걸어오더니 지하철 노약자석과 휠체어 자리 앞에 철푸덕 앉습니다. 메고 있던 백팩도 내려두고 안방에서 앉듯 편하게 앉아요. 그리고 이어폰을 연결해 유튜브를 보기 시작합니다. 머리가 희끗하고 신체가 아파보이진 않는데요. 태연하게 그러고 앉아 출근을 하네요. 그 모습을 보는데 이상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습니다. 남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자기 편할 대로 할 수 있는 베포가 대단하다 싶었지요. 남보다 조금넓게 자리를 차지하고 오가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지만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유튜브 소리가 크게 들렸습니다. 영상을 보는데 이어폰 없이 크게 틀어두고 듣고 있는 사람이 있었던 거죠. 분명히 자리에 앉은 사람이 이어폰을 낀 것을 보았는데요. 자연스럽게 눈이 그 분에게 가더군요. 지하철에 저렇게 앉아 갈 정도의 사람이면 이런 민폐 행동을 하고도 남지 싶었나봐요. 하지만 여전히 그분은 이어폰을 하고 있었고 소리는 다른 이에게서 들렸습니다. 피해를 주지 않았는데도 민폐라고 오해하였던 거지요. 

우리 기현이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어려움이 있는 친구도 있고 잘난 친구도 있는 거잖아요. 어려운 친구는 도와주고 잘하는 친구에게선 도움을 받는 것이 자연스러운 겁니다. 하지만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거부하고 밀어내는 일이 참 많습니다. 그걸 민폐라고 여기고 거리를 두려고 하지요. 하지만 실제 기현이가 친구들에게 과연 어떤 민폐를 끼쳤을까요. 길을 잘 못찾는것, 말귀를 못 알아들어 대답이 느린 것 이외에 어떤 불편도 없었을 거에요. 순하고 순응적인 친구였습니다. 딱히 문제가 되거나 튀는 행동을 하지도 않거든요. 다만 한두번 더 챙겨주고 잘 따라오라고 말해주면 되는 건데요. 그게 얼마나 큰 민폐이길래 아이가 그토록 눈치를 보게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친구들에게 어려움을 주는 우리반 친구들도 있습니다. 그런 친구였다면 처음부터 제가 지원하지 친구들 도움을 기대하지도 않았을 거에요. 가능성이 있기에 말해본 것인데요. 친구가 기꺼이 함께가자 하는데도 움츠러든 기현이는 거부해버렸지요. 이 상황이 참 애석하고 딱했습니다. 마치 지하철 바닥에 앉아버린 아저씨가 이어폰을 끼고 조용히 가고 있었는데 크게 음악을 틀어놓은 것처럼 오해를 샀던 것같았죠. 민폐를 주지 않았는데도 오히려 눈치를 보게 되는 상황을 만들었으니까요. 한참을 생각해도 기현이의 마음의 움츠러듬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참 어려웠지요. 

"기현아. 친구들이랑 이번엔 꼭 같이 현장학습 가자. 네가 부담이 아니라 즐겁게 함께 갈 수 있다는 걸 친구들도 너도 느껴봤으면 좋겠어."

기현이에게 강하게 권해볼 생각입니다. 기현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아주 귀한 기회니까요. 상처가 사라질순 없겠지만 기현이가 조금 더 용기를 내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더불어 살아가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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