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입학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승현이 어머니에게서 문자가 왔습니다.
"선생님 통화 좀 할 수 있을까요?"
조심스럽지만 단호함이 느껴지는 문자였습니다. 수업이 끝난 후 나는 전화를 걸었습니다.
"선생님 제가 미술 선생님께 전화를 받았습니다. 수행평가 때문에요. "
원격으로 수업이 이루어진 기간의 수행평가였습니다. 학교에서 수행평가를 진행하지 못하니 집에서 그리기 과제를 내준 모양인데요. 미술 선생님께서 승현이 집에 전화를 거셨다네요.
"이거 승현이가 한거 맞냐고 물어보시더라구요. 우리 승현이가 지문과 안내를 다 이해하긴 어렵잖아요. 그래서 제가 함께 읽어주면서 하나 하나 그렸거든요. 그런데 미술 선생님께서 너무 잘했다는 거에요. 승현이가 혼자서 한게 맞느냐고 물어보셔서 제가 사정을 다 말씀드렸어요. 저도 이럴때마다 정말 곤란해요. 수행평가를 하긴 해야하는데 이름만 써서 낼수는 없잖아요. 제가 알려주면서 하다보니 도와주긴 했어요. 그랬던 선생님께서 어머니가 도와주시면 수행평가 기준 위반이라 셨거든요. 제가 당황스러워서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몰라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어머니가 설명해주고 안내해주는 것은 좋았는데 어머니의 손길이 많이 닿은 모양입니다. 그간의 수업에서 봤을때 승현이 혼자 한것으로 보기에는 과하게 잘한 것 같으니 미술 선생님도 난감하셨던 모양입니다. 어머니가 도와준거라면 제일 높은 점수는 줄수 없다는 거였어요. 미술 선생님과 통화를 해보니 선생님 말도 일리가 있었습니다. 다른 아이들과 같은 조건에서 스스로 해낸 과정을 평가하는것이 수행평가입니다. 그 과정에서 어머니가 도와주셔서 잘한 결과물로 높은 점수를 주면 다른 아이들과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입니다. 이름만 써서 성의없게 낼수는 없지 않느냐는 어머니와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습니다. 나는 중간에서 그야말로 난감했습니다. 내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 한쪽에게 내 주장을 관철 시킬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습니다. 엄연히 미술 시간에 일어난 일이니까요.
얼마전 담임 선생님이 아이의 생활기록부를 가지고 오셔서 고민을 토로하시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우리반 아이의 생활기록부에 모두 노력요함만 씌여있는데 이건 아니지 않느냐는 말씀이었습니다. 장애를 가지고 있는 우리 아이들은 그 상황에 맞게 평가 기준이 달라져야 하는거 아니냐는 말이었습니다.
능력의 시작점이 다른 아이들 사이에서 기준도 달라져야지 공평하지 않느냐는 선생님의 말씀이었는데요.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고 노력요함을 받는 우리반 아이들의 평가 체제에 문제가 있긴 하지요. 하지만 성적에 예민한 아이들 사이에서 (그나마 중학교는 성취도 비율이 없으니까 다행이지만 고등학교는 비율까지 정해져 있지요) 기준을 달리해서 우리아이의 수준에서 높은 수준이니 A를 달라고 하기는 어려웠습니다.그 때 선생님의 제안을 듣고 모든 선생님들에게 반 아이들에 비해 노력요함의 수준인 것은 맞으나 그 아이 수준에서는 우수할 수도 있음을 배려해 달라는 안내를 조심스레 드렸습니다. 선생님들의 반응도 제각각이었는데요. 반영해서 노력요함보다는 부드러운 표현을 쓰겠다는 선생님부터 기준을 다르게 할수는 없다는 분까지 답도 각양각생이었지요.
맞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조금 다른 기준이 적용되어야 하고 그 안에서 노력을 책정하는 것이요. 하지만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그것을 반영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특히 특수교육대상자로 상급학교 진학을 선배정 받는 우리 아이들이 성적에서 중위권을 차지하면 친구들이 불이익을 당할수도 있으니까요. 쉽지 않은 문제지요.
나는 어쩔수 없이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구구절절 설명을 드리고 마음을 위로해드렸습니다.
"필요하면 반 친구들도 엄마들이 도와주면 될꺼 아니에요. 강남은 수행평가 대신 해주는 학원도 있다면서요."
어머니의 대답은 속상함이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너무 많이 잘 해주셔서 높은 점수를 받게 된 것이 미술 선생님께는 어려운 상황일 수 밖에 없음을 몇번이나 안내하고 이해를 구했지요. 아이의 수행평가 성적보다는 그 과정에서 아이가 배우고 스스로 해볼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가졌다면 좋았겠다는 나의 바램은 한발 물러세웠습니다. 아직은 신입생. 어머니도 아이도 나의 교육철학과 방법에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요.
"어머니 승현이가 마을버스에서 내려서 길찾기를 정말 잘했거든요. 그 상황에 집중하다 그만 교통카드를 잃어버렸어요. 집에서 한번 더 찾아주세요."
승현이 어머니와 통화를 했습니다. 교통카드를 잃어버리고 안절부절 못하는 승현이가 짠하고 안쓰러웠습니다. 물건을 잃어버리면 스트레스 받을 수 밖에 없으니까요. 어쩔수 없었다 싶으면서도 속상했지요. 이제 곧 졸업을 앞두고 있는 승현이는 그래도 상황을 빠르게 받아들였습니다.
"승현아. 선생님이 천원 빌려줄게. 다음부터는 카드 관리 잘하자. 대신 길찾기를 잘했으니까 너무 속상해는 마."
승현이를 보내고 어머니와 통화를 했지요.
"아이고 녀석. 길에 떨어트린 모양이네요. 괜찮아요.이번 일을 계기로 자기 물건관리하는게 왜 중요한지 배웠을 테니까요."
늠름해진 승현이만큼 품이 넓어진 어머니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괜히 번거로울 어머니의 상황에 미안스러웠지만 어머니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그러셨잖아요. 실수하는게 배울수 있는 기회라구요. 예전에는 승현이가 실수하고 남들보다 못하는게 속상하기만 했거든요. 채울게 너무 많아서 아득했었구요. 선새님과 3년간 지내면서 승현이가 할수 있는 것들을 인정하고 채워나가기 시작하니 참 좋아요. 선생님께서 매번 부족한 우리 승현이를 칭찬해주시고 인정해주시니까요. 오늘 승현이도 속상하지만 물건 관리하는 걸 배웠을 거에요. 너무 감사해요. "
다음날 승현이는 편지와 레모나를 예쁜 선물상자에 담아 왔습니다. 편지안에는 깨끗한 천원짜리 하나와 승현이의 메시지가 들어있었습니다.
"선생님 차비하라고 천원 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차비가 없었으면 집에 못올뻔했습니다.
교통카드 잃어버려서 속상했습니다.
다음부터는 잘 가지고 다니겠습니다."
삐뚤빼뚤한 승현이의 편지가 참 포근했습니다.
학교 축제때마다 마음 한켠이 서글퍼집니다.
1학년때 우리반 아이 친구로 봤던 아이들이 3학년이 되어 훌쩍 커버린 모습을 보면
그렇습니다. 굉장히 많이 성장한 친구에 비해 여전히 그대로 인것 같은 우리 아이의 모습에
마음이 짠합니다. 열심히 매일 가르친다고는 했는데 그 변화가 크지 않으니 나 조차 만족할 수 없어 그럽니다. 그래도 다시 마음을 다잡고 남들 100변할때 1변하는 것에 감사하자 하는데요. 승현이의 편지를 보며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승현이도 잘 컸고 어머니도 많이 달라지셨구나.'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승현이와 어머니의 성장을 보며 3년간 나의 노력이 맹탕에 물붓기는 아니었다 싶어 찔끔 눈물이 납니다.
"그래 누구나 다 실수해. 괜찮아. 승현아."
내가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해주는 괜찮다는 말을 건네며 승현이를 바라봤습니다. 오늘따라 승현이가 훌쩍더 커보여 절로 미소가 번집니다. 느리게 아주 느리게 성장하는 아이지만 그래도 분명히 변화하고 있음을 느끼며 다시 또 오늘하루를 시작해봅니다.